세계일보

검색

"역대정권 누수는 집권 2년차부터"… '마의 2년차' 풍경 [박태훈의 스토리 뉴스]

입력 : 2018-12-01 08:00:00 수정 : 2018-11-30 10:36:2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정윤회 문건· 노무현 서거· 옷로비· 성수대교 봉괴 등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은 이재명 경기지사 논란, 김종천 청와대 전 의전수석비서관 음주운전, 지지율 하락 등으로 골치가 아프다. 일부에선 이를 '레임덕의 시작'으로 보고 있지만 레임덕 상태로 보기에 이르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뭔가 조짐이 좋지 않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역대 정권마다 집권 2년차 때 안좋은 일이 생겨 잘 넘기지 못했을 경우 조기 레임덕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마의 집권 2년차’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으며 무난히 넘기지 못할 경우 '2말3초(집권 2년차말~3년차)' 때 조기 레임덕 현상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2년차...세월호부터 정권 몰락 예고한 정윤회문건

박근혜 정권 2년차(2014년 3월~2015년 2월)땐 엄청난 일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로 위기관리 능력과 국민에 대한 신뢰를 의심받았다. 

결정타는 2014년 11월28일 세계일보가 특종보도한 '정윤회 문건'. 세계일보는 아무런 직책이 없는 정윤회씨의 국정개입이 사실로 드러났다며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 따르면 정윤회씨는 이재만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 정호성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대통령비서실 제2부속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 등 청와대 내부 인사 6명, 청와대 외부 인사 4명 등과 서울 강남권 중식당과 일식집 등에서 만나 청와대 내부 동향과 박근혜 정부 동향을 논의했다.

세계일보는 이후 정윤회 문건에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라는 구절이 적시돼 있었다"는 사실도 알렸다. 최순실은 서열1위라는 소문에 걸맞게 박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 내리고 옥살이까지 하게 만들었다.

◆이명박 2년차, 노무현· 김대중 서거와 이건희 사면

이명박 집권 2년차(2009년 3월~2010년 2월)에도 정권에 큰 부담을 안긴 대형사건들이 터져 나왔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권 차원의 캐내기 수사에 반발, 몸을 던졌다. 그해 8월 18일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잇따라 서거하면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민심은 싸늘하게 돌아섰다는 평가다.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12월31일 배임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특별사면했다. 사상 처음으로 단 1명만을 위해 특별사면을 단행해 많은 뒷말을 남겼다. 이 전 대통령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힘을 보태 달라라는 뜻에서 사면을 단행했다"고 말했지만 이 일로 정권 신뢰도에 금이 간 것은 사실이었다.

◆노무현 2년차, 행정수도 위헌· 고건 총리와 갈등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2년차(2004년 3월~2005년 2월) 때도 많은 일이 있었다. 2004년 봄을 뒤흔든 탄핵사태와 탄핵재판,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위헌 결정, 고건 총리와의 갈등설 등이 그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한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하지 못했다. 다행히 탄핵소추안 가결로 지지층 결집하고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뒤 탄핵재판에서 승리해 다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반면 행정수도 위헌 결정과 고건 총리와 불협화음은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려 했지만 반대 진영이 두고두고 딴지를 걸 수 있는 명분이 됐다.

◆김대중 2년차, 옷로비 사건으로 사상 첫 특별검사제까지 도입

김대중 정권 2년차 때인 1999년을 들섞거린 스캔들은 '옷 로비 의혹 사건'이다. 1999년 5월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 부인이 외화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로부터 1998년 말 고급 옷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검찰이 같은 해 6월 2일 "이형자의 '실패한 로비'였다"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국회 청문회에 이어 사상 처음 특별검사제도까지 도입됐다. 특검은 실패한 로비였다고 결론과 함께 청와대 친인척과 고위층 비리를 전담하는 사직동팀이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고 발표했다.

◆김영삼 2년차, 이회창 경질· 김일성 사망· 성수대교 붕괴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집권초기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그런 YS도 집권 2년차였던 1994년 4월22일 이회창 국무총리를 전격 경질하면서 지지도에 균열을 가져왔다. 1993년 12월 임명된 이 총리가 책임총리 모습을 보이려 하는 등 YS와 갈등양상을 보이자 바꿔 버렸다.

YS는 그해 김일성과 역사적인 남북 첫 정상회담을 위해 노력, 성사단계에 왔지만 7월8일 김일성 사망으로 계획이 틀어졌고, 1994년 10월21일엔 성수대교 붕괴라는 초대형 악재까지 만나 이후 급작스런 내림막길을 걸었다.

◆노태우 2년차, 전교조 탄생· 임수경 방북

직선제로 출범한 노태우 정권은 민주화와 5공 청산 요구에 시달렸다. 집권 2년차였던 1989년 5월 28일엔 윤영규 교사를 초대 위원장으로 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가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해 6월말 임종석 전대협 의장은 한국외대 임수경을 전대협 대표로 평양으로 보내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를 전후해 공안정국이 조성됐지만 노태우 정권은 불안한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2년차 말인 1990년 1월22일 3당합당 카드까지 꺼내 들었지만 힘은 김영삼쪽으로 조금씩 쏠리기 시작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여자)이이들 미연 '순백의 여신'
  • 전소니 '따뜻한 미소'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