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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아니다"·"담당자 없다"…부패공직자 미공개 백태 [심층기획]

입력 : 2018-11-25 19:06:45 수정 : 2018-11-25 22: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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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공개하지 않은 16개 부처 중 절반…힘 센 기관일수록 ‘쉬쉬’ / 미공개 이유 모르거나 “의무 없다” 해명 / 그나마 공개한 기관들도 사후관리 부실 / 대검 “권익위 권고일 뿐… 공개 않는다”/ 경찰청 “권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아”/ 음주운전·성범죄는 품위유지 손상 분류 / 부패에 포함 안돼 공개 근거 조차 없어
“남원 부사(南原府使) 박희중(朴熙中)이 관가의 미곡(米穀)과 여러 가지 물품을 대부분 자기 물건으로 만들었으니, 탐관오리로서 행정을 어지럽게 했을 뿐 아니라, 관리로 있는 곳에서 그 고을 관기에게 간음을 자행하였고, 또한 정조 배전 차사원(正朝陪箋差使員)으로 북경에 갔을 때 각가지 물건 5, 6바리[駄]를 먼저 실어 보낸 것이 증거가 뚜렷이 나타났는데도, 희중은 숨기고 자백하지 않사오니, 그의 직첩을 삭탈하고 체포하여 와서 심문하게 하소서.” (세종실록 31권, 세종 8년 1월23일)

기록의 나라, 조선이 남긴 조선왕조실록에서 청백리만큼이나 찾아보기 쉬운 기록이 탐관오리다. 조선은 실명과 부패행위를 낱낱이 남겨 기록으로 또 한 번 부패를 단죄했다. 박희중은 조선시대 왕의 명령을 관장하고 각종 중요 회의에 참석해 기록을 남기는 예문관 수장인 예문관직제학(정삼품 당하관)을 지낸 조선전기 문신이다. 오늘날 법령에 비춰 보면 박희중은 횡령, 뇌물공여, 성폭행 혐의로 기소돼 파직된 것이다.

부패공직자의 실명과 혐의까지 상세히 공개한 조선왕조실록과 달리 오늘날 상당수 정부부처는 소속 공무원의 부패행위를 간략하게조차 공개하기를 꺼리고 있다. 성범죄와 음주운전 등 품위 손상 사유로 징계받은 국가공무원이 전체 징계공무원의 절반을 넘지만, 관련 법령 미비로 현황조차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비공개 사유 물어봤더니… “당시 담당자 없어서 몰라” “공개의무 아니야”

25일 세계일보가 부패공직자 현황을 공개하지 않는 16개 정부부처의 미공개 사유를 확인한 결과 8곳이 미공개 이유를 모르거나 공개의무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부패공직자 현황 공개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 사항으로 반드시 준수해야 할 의무는 아니다. 권익위는 2015년 부패방지시책 평가의 지표에 부패공직자 현황 공개 여부를 반영하며 공개를 독려했지만 일부 기관은 의무사항이 아니라며 공개를 꺼렸다. 특히 징계 인원이 많고 힘이 센 기관일수록 부패공직자 정보를 일반에 알리지 않고 개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감사원과 대검찰청, 국세청, 보건복지부, 소방청은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최근 3년간 금품수수 건으로 24명이 징계를 받은 대검찰청은 “권익위 권고일 뿐이며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권익위 권고 사항이라고 반드시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며 “왜 미공개를 해왔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회의 요청이 오면 공개하지만 홈페이지 공개 여부는 다른 부처가 하는 걸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부처 중 징계받은 공무원 숫자가 가장 많은 경찰청은 “당시 왜 공개를 안 했는지 모른다”며 “해당 권고가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해명했다.
부패공직자 현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31개 정부부처 중 17곳은 현황을 새로운 것으로 고치지 않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병무청 식품의약품안전처 통일부 해양수산부 환경부는 2015년 이후, 교육부 산림청 여성가족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16년 이후로 현황을 업데이트하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법무부는 횡령이나 뇌물수수 금액을 가린 채 부패공직자 현황을 올렸다.

◆징계 공무원 중 절반 이상이 음주·성범죄 등 품위손상… 공개근거 없어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한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 부패공직자의 정보는 그나마 일부라도 공개되지만, 음주운전과 성범죄에 연루된 공직자의 정보는 일절 공개되고 있지 않다. 음주운전과 성범죄는 품위유지 손상에 해당하며 이는 부패공직자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주운전과 성범죄 처벌 기준이 강화하고 해당 인원도 늘어나자 예방 차원에서 품위유지 손상으로 징계를 받는 공직자의 현황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징계를 받은 국가공무원은 2344명이었다. 징계 유형별로는 품위손상이 1589명으로 가장 많았다. 복무규정 위반(286명), 직무 태만(105명), 금품수수(95명), 공금횡령(23명)이 그 뒤를 이었다. 품위손상으로 징계를 받은 국가공무원 비율은 2014년 50.3%, 2015년 55.5%, 2016년 67.4%, 지난해 67.9%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국민권익위 관계자는 “음주운전과 성범죄에 연루돼 징계를 받은 공무원 현황은 국회의 정보공개 요청이 아니면 공개할 근거가 없다”며 “공직기강 강화를 위해서라도 음주와 성범죄 현황을 공개하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장진희 서울시립대 반부패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청렴문화가 뿌리내리지 않고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며 “검찰과 경찰, 국세청 등 힘 있는 기관부터 부패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다른 기관들도 눈치 보지 않고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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