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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저를 키웠죠”… 끊임없이 새로움 찾는 ‘현대판 노마드’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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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24 03:00:00 수정 : 2018-11-25 13: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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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겸 고려대 구로병원 건강증진센터장

요즘 이상적인 삶의 형태로 ‘덕업일치’가 회자한다. 덕업일치는 덕후로 일과 일치된다는 말이다. 덕후는 일본어 오다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로, 어떤 분야에 몰두하는 전문가 이상의 열정을 지닌 이를 가리킨다. 스스로 빠져 재밌게 하던 일을 직업으로 만들어 성공한 경우를 말한다.

병리학자인 김한겸 교수는 국내 미라연구의 권위자이면서 글로벌 나눔 전도사로 불린다. 검도 7단으로 한국 최고의 의사 검객이기도 하다. 요즘은 인체의 병든 조직에서 예술작품을 포착해내는 현미경 사진작가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노마드(Nomad)의 삶을 추구하는 그는 “평생동안 한 분야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탐험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상윤 기자

고려대 구로병원 병리학 교실 김한겸(63)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정반대 즉, 이른바 ‘업덕일치’의 전형이라 해도 될 듯하다. 장삼이사에게 ‘업’은 참고 견디며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이다. ‘밥벌이’ 그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김 교수도 젊은 시절 한때 병리의사란 직업이 힘들 때가 있었다. 외향적인 성격의 그에게 온종일 수술로 제거된 조직 세포를 현미경으로 보면서 진단을 하는 일이 갑갑하기 짝이 없었다. 틀에 박힌 일상이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그 일을 재미로 만들게 한 기막힌 아이템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현미경 사진이다. 인체의 병든 조직에서 예술 작품을 발견하는 일에 매료돼 현미경 사진작가로서 새 길을 개척하고 있다.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이뿐이 아니다. 국내 최고의 미라 전문학자, 의사 검객, 글로벌 의료자원봉사가 등 수도 없이 많다. 벌인 일이 많다 보니 프로필이 A4 용지 두 장을 훌쩍 넘는다. 튀는 의인(醫人)으로 통한다.


21일 고려대 구로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김 교수는 건강증진센터장을 맡고 있다.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미소를 지으며 기자를 맞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벌이는 일은 많으나 제대로 하는 것 없다”면서도 “여태껏 한 분야에 머물지 않고 호기심을 갖고 끊임없이 제 인생의 밭을 갈아왔을 뿐”이라고 했다. 그의 어린 시절이 궁금했다. “서울 토박이입니다. 논밭에 둘러싸인 제기동에 살았어요. 친구들과 골목길에서 놀면서도 골목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제기동역 철로를 쭉 따라가다 보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가 궁금했어요. 호기심이 많고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배 타는 의사, 선의(船醫)가 꿈이었어요.”

색동우산 (colorful umbrella)
뇌하수체 부위에 생긴 종양에서 생성된 결정체들이다. 나이테 모양이 뚜렷하게 관찰돼 마치 나무를 잘라놓은 모습이다. 특수염색을 한 뒤 편광현미경으로 관찰하니 마치 색동우산을 보는 듯 하다. 김한겸 교수 제공

그런데 그의 말대로 어찌하다 보니 어느 날 다른 길인 병리의사가 됐다. 온종일 앉아서 검사하고 연구하는 일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데다 무엇보다 이른바 ‘내근’이라 갑갑했다. 일에서 무언가 재미를 찾아야겠다고 늘 생각했다. 더구나 병리를 평생의 업으로 해야 한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의 전기를 맞게 된다. 1990년 중반 미국에서 온 병리의사가 강의 말미에 암세포 사진을 보여주는데 암세포가 웃는 형상이 있었다. 그때 김 교수는 ‘바로 저것!’이라고 무릎을 쳤다. 매일 현미경으로 세포 속을 들여다보는 그에게 딱 맞는 재미라 생각했다. 이때부터 현미경으로 보이는 미세(微細)세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불꽃 (Flames)
한가지 사물을 보더라도 대하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고 해석된다. 아마도 인지능력의 차이 일 수도 있고, 경험의 차이 일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보다 더 복잡미묘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어제 좋았다고 오늘도 좋으라는 법이 없고, 어제 나빴다고 오늘도 나쁘란 법이나 원칙이 없다. 그저 지금에 만족하고 현재에 충실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한겸 교수 제공

“출근해서 현미경 속에 들여다볼 때마다 설렜어요. 추상적인 모양이 떠오르고, 재밌는 그림이 나타났어요. 어느 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얼굴이 들어왔어요. 자궁경부염증으로 자궁경부샘이 점액을 분비하는 중이었어요. 작품 제목을 ‘가라오케’로 했어요. 현미경으로 눈을 옮길 때마다 세포 속 작은 세상이 수시로 말을 걸어왔어요. 요산 결정체에는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을, 대장용종은 메두사의 풍성한 뱀머리 카락을, 기관지 점액은 여인의 우아한 춤사위 그대로였어요. ”

그는 10여년간 미세한 조직과 세포 속에서 시공을 넘나드는 무수한 풍경을 작품화했다. 그 결과, 2016년에는 바이오 현미경사진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그간의 세포 탐미와 기록이 담긴 개인전 ‘Nomad in a small world展’을 열었다. 그간 전혀 보지 못한 색다른 사진전은 관객의 호기심과 감탄을 자아냈다. 전시회 수익금은 전액 호스피스재단에 기부했다. 요즘은 SNS를 통해 수시로 세포 작품들에 해설을 붙여 공개한다.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학술사진으로서 현미경 사진은 많지만 하나의 완성된 감상할 수 있는 예술작품으로 일반인에게 선보이기는 그가 처음이다. 지루한 ‘업’에 대한 돌파구로 현미경 사진 덕후가 된 덕에 일의 즐거움도 되찾고, 예술가로서의 희열도 얻게 됐다.


“현미경을 통해 정상에서 비정상, 즉 질병을 찾는 게 제 일이었어요. 그런데 현미경 사진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됐죠. 세포 안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요. 하루가 후딱 갑니다. 재미이자 아트입니다. ”

그는 국내 최고의 미라연구 권위자이기도 하다. 2002년 9월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파평리 윤씨 종중묘지에서 발견된 파평윤씨 미라 부검을 지휘한 이가 그다. 당시 파평윤씨 미라는 사내아이를 품고 있었다. 그녀 이전까지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도 출산 중 사망한 미라는 발견된 적이 없다. 세계 최초의 임신부 미라임을 그가 이끄는 부검팀이 입증했다. 2016년 의정부에서 발견한 미라에선 폐의 기생충을 찾아냈다. 미라의 폐에서 기생충이 발견된 사례도 처음이다. 지금까지 부검하고 연구한 국내 미라는 12구에 이른다. 지금도 미라가 발견되면 그에게 요청이 온다. 고병리학계에선 벌써 그의 정년 후 미라 연구 공백을 걱정하고 있다. 그가 차지하는 위상이 그만큼 크다.

김 교수는 글로벌 의료봉사가로도 유명하다. 2005년 몽골 고고학계에서 그에게 미라 분석을 의뢰했던 것이 인연이 돼 해외의료봉사에 뛰어들게 됐다. 당시 몽골의 열악한 의료환경을 눈으로 본 그는 대한병리학회 이사장이 된 2007년부터 동료 의사들과 ‘몽골 의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해마다 두 차례 몽골을 방문해 현지 의사들을 교육했다. 몽골 병리학 의사들에게 학회를 만들게 했다. 몽골 여성에게 가장 많은 자궁경부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도록 이론과 실습을 겸비한 교육에 집중했다. 10년을 이렇게 하니 현미경으로 암을 진단할 수 있는 의사가 5명도 채 안 됐던 몽골엔 이제 100명이 넘는 의사들이 자국 환자들의 암을 진단할 수 있게 됐다. 

“1970년대의 열악한 우리나라 의료환경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파견한 외국 의사들이 한국에 와서 자궁경부암 진단 기법 등을 전수한 적이 있어요. 그 덕에 우리 의료가 크게 발전했어요. ‘받은 은혜를 갚는다’는 생각으로 몽골 의료 봉사를 해왔습니다. ” 그간의 지원으로 몽골의 의료가 어느 정도 자립이 가능해진 요즘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를 오가며 그곳 의료진 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고대생들에겐 봉사하는 교수로 이미 유명하다. 학생처장 시절인 2008년 그가 조직한 고대사회봉사단은 10년 동안 900여명의 봉사단원을 배출했다. 그의 지도로 봉사자로서의 소양과 리더십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졸업후에도 각 분야에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공교롭게도 인터뷰에 동행한 본지 사진부 후배 하상윤 기자 역시 사회봉사단의 2기로 그의 제자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사무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맞절을 했다. 김 교수가 검도에서 도입한 고대봉사단원만의 인사법이라고 했다.

그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검도다. 중학교 2학년 때 입문한 검도는 공인 7단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의사 검객이 바로 그다. 1977년 고대 의대 최초로 검도회를 만들어 40년간 최강의 검도회로 자리 잡게 했다. 2000년 한국의사검도회도, 전국의대생검도대회도 그가 만들었다. 병리의사의 일이나 사진작가, 봉사활동 등 수많은 일을 ‘겁 없이’ 할 수 있는 비결도 검도에 있다. “검도는 날아오는 칼날을 피하면 안 됩니다. 긴장하며 정면으로 응시하고 언제 날아올지도 모르는 칼을 막으며 상대의 허를 찔러야 합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앞에 밀려오는 도전과 시련을 피하지 않고 ‘즐겁게 맞이하자’는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그는 정년을 하면 마다가스카르에서 봉사하며 인생 2막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그곳에서 의료센터를 만들어 아프리카 전역의 병리의사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요즘도 틈틈이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체력. 주특기인 검도를 수련하는 것 외에도 수시로 목동 집에서 병원까지 4Km가 넘는 거리를 운동 삼아 출퇴근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서 요즘 일이 바빠졌다고 했다. 여행사진 작가이기도 한 그에게 학교 측이 2020년 달력에 들어갈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앞으로 부지런히 출사를 다녀야 한다고 했다. “도대체 못 하는 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 흔치 않은 인터뷰이다. 한 분야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아다니는, 현대판 노마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가 분명했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김한겸 교수는
△1955년 서울 출생△경동고 졸업(1974)△고려대 의과대 졸업(1980)△고려대 의학석사·박사(1981∼1989)△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법의과장(1985∼1987)△고대 구로병원 병리과장(2000∼2008)△대한병리학회 이사장(2007∼2008)△고려대 학생처장(2008∼2011)
△한국교수검사회 회장·검도 7단(2012∼2015)△한국자원봉사대상 안행부장관 표창 수상(2013)△대한극지의학회 회장(2014∼2016)△대한세포병리학회 지도의회 의장(2015∼2016)△한국도핑방지위원회 위원장(2012~2015)△대한병리학회 회장(2017)△현미경 사진전 ‘Nomad in a small world 展’(2017)△몽골, 마다가스카르, 우간다, 캄보디아 등 10여개국 글로벌 의료·교육 봉사활동(2008∼현재)△고대구로병원 건강증진센터 소장 겸 호스피스회장(2016∼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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