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7월 정전협정 당시 남북과 유엔군사령부는 백령도와 연평도, 대청도, 소청도, 우도 등 서북도서를 6.25 전쟁 전 대한민국 정부가 관할했던 것을 감안, 유엔군사령관의 군사통제에 두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해상 군사분계선은 북한과 유엔사의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미완의 과제로 남겨졌다. 이에 마크 클라크 당시 유엔군사령관은 같은해 8월30일 서해와 동해에 북방한계선(NLL)을 설정했다.
서해 해상 적대행위 금지구역(완충수역) 합의 시행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면 망향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장재도의 포진지가 닫혀 있다. 연평도=연합뉴스 |
◆서북도서 무력충돌, 한반도 위기국면 부채질
서북도서와 서해 NLL은 남북 모두 물러서지 않는 ‘강 대 강 대치’를 지속했던 곳이다. 해주항이 막히면서 해운에 차질을 빚고 있는 북한은 NLL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우리측으로서는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을 드나드는 항로가 NLL 이남에 있고, 서북도서는 수도권과 인접해 있어 ‘사수’가 불가피했다. 서북도서와 서해 NLL에서의 남북 충돌이 한반도 위기국면마다 등장했던 이유다.
1973년 북한은 NLL 무력화를 목표로 도발을 시작했다. 2000년대까지는 제1연평해전(1999년), 제2연평해전(2002년)과 대청해전(2009년)처럼 북한 함정이 NLL을 넘어와 우리 해군과 교전하는 해상 무력충돌이 자주 발생했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의 공격으로 연평도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
남북은 서북도서와 황해도 일대에 첨단 장비를 집중 배치, 이 일대를 ‘한반도의 화약고’로 만들었다. 북한은 연평도에서 6∼11㎞ 떨어진 장재도와 무도, 황해도 해안에 122/240㎜ 방사포와 130/76㎜ 해안포, 신형 고속정과 지대함미사일, 무인기 등을 배치했다. 우리 군도 이에 맞서 천무 다연장로켓, 군단급 무인기(UAV), AH-1S 공격헬기, 스파이크 미사일 등을 서북도서에 투입했다. 함포와 미사일을 탑재한 유도탄고속함을 대량 건조, 연안방어작전을 강화했다. ‘선(先)조치 후(後)보고’ ‘원점타격’ 등 무력충돌 대응수칙도 강경해졌다. 비무장지대(DMZ)보다 서북도서에서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긴장 ‘해빙’ 시작…평화정착까지 ‘가시밭길’
판문점선언 후속으로 9월19일 평양정상회담에서 채택된 9.19 군사합의서는 우발적 충돌 방지를 넘어서 항구적 평화 구축을 위한 조치들을 담았다는 평가다. 군사합의서는 서해 덕적도~초도 수역에서 포사격과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하고 해안포 포문 폐쇄 및 함포 포구덮개 설치 등을 명시, 적대행위 중지를 통한 우발적 충돌 가능성을 차단해 서북도서를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중점을 뒀다. 또한 군사적 긴장상태가 지속되어 남북이 자유롭게 접근하지 못했던 공간을 공동으로 활용하기 위한 군사적 보장 대책 마련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평가다.
서해상 적대행위 금지구역(완충수역)에 관한 9.19 남북군사합의가 시행된 첫날인 1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 인근 해안에서 기동훈련중인 고속정의 포신에 덮개가 씌워져 있다. 연평도=연합뉴스 |
서해 NLL에서의 무력충돌 위험은 크게 낮아졌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남북은 군사공동위원회가 구성되면 서해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 설정을 논의할 방침이다.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을 만들려면 기준선 설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측은 NLL을 기준으로 평화수역과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이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NLL 이남에 자체적으로 만든 경비계선을 강조할 경우 남북간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북한의 NLL 인정여부를 둘러싼 남남 갈등으로 번질 우려도 있다.
해주 항로 개방도 문제다. 해주항을 출입하는 북한 민간선박들은 NLL 이북 해역으로 우회 통항한다. 이로 인해 항해 거리와 시간이 늘어나 적지 않은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주항 개발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이 해주 항로 개방을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하지만 해주 항로를 개방할 경우 NLL 무력화 논란이 발생할 수 있어 양측간 갈등이 예상된다.
해군 유도탄고속함과 참수리고속정들이 서북도서 방어의 일환으로 기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해군 제공 |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서해에서 발생 가능한 위협에 대한 대비태세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며 “북한이 도발을 감행한다면 자위권 차원에서 강력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서북도서 방어를 맡고 있는 해병대도 지난 9월 6일 연평도에서 북한군 기습을 가정, 전차와 박격포 등을 동원한 근해사격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K-9 비사격훈련을 포함한 대응 훈련을 늘려 전력공백 우려를 불식시킨다는 방침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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