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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우리 공동의 미래, 교양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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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21 21:25:34 수정 : 2018-11-21 21: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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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양과목, 전공보다 등한시/4차 산업혁명 시대 떠들썩하지만/과학 교양 활성화 안돼 관심 필요/기술·교양 결합 때 혁신도 가능 수능이 끝나고 본격적인 대입 시즌이 시작됐다. 우리나라 대입 제도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국민 모두가 한마디씩 거들 수 있을 정도로 뜨거운 이슈가 된다. 그러나 대학 입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에 있다. 우리나라 대학이 학생 선발에 기울이는 노력만큼 제대로 된 교육에 관심을 보인다면 세상은 더욱 좋아질 것임에 틀림없다.

대학 새내기가 주로 배우는 것은 교양과목이다. 우리나라에는 교양을 전공보다 낮은 단계로 보는 풍조가 역력하다. 그러나 나의 전공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교양일 따름이다. 교양은 전공과 함께 교육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으며, 교양도 전공처럼 평생 씨름해야 하는 영역이다. 풍부한 교양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만사가 더욱 즐겁고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송성수 부산대 교수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
교양의 중요성을 역설한 최근의 인물로는 스티브 잡스를 들 수 있다. 그는 2011년 3월 2일 아이패드 2를 처음 공개하면서 “애플이 아이패드와 같은 제품을 창조할 수 있는 이유는 기술과 교양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양쪽의 장점을 구현하기 위해 항상 고민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관점에서 가장 진보한 제품을 만들려면 직관적으로 사용하고 재미있어서 사용자에게 정말 적합해야 한다. 사용자가 제품에 다가갈 필요가 없이 제품이 사용자를 찾아가는 것이다. 아이패드와 같은 창조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기술과 교양의 결합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잡스가 얘기한 교양이 인문학으로 와전돼 소개됐다. 물론 인문학이 교양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교양=인문학’이란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교양의 기원은 중세 대학의 ‘자유 칠과(seven liberal arts)’에서 찾을 수 있다. 자유 칠과는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할 교양과목이었다. 흥미롭게도 자유 칠과는 문법, 수사, 논리, 산수, 기하, 천문, 음악 등으로 구성됐다. 인문학과 함께 과학에 관한 과목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교양과목의 구체적인 목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교양과목의 기본적인 구성이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인문학 교양도 부족하지만 과학 교양은 더욱 부족해 보인다. 우리의 대화에는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으로 떠들썩한 상황에서도 빅데이터,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등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별로 없다. 지금이 ‘과학의 시대’라고 말로만 떠들 뿐 이에 상응하는 과학 교양이 활성화돼 있지 않은 것이다.

교양 교육이나 과학 교육에 오랫동안 종사해 온 사람은 교양과학에 대한 꿈이 있다. 꿈의 차원을 넘어 현실에서 교양과학을 구현하고 있는 대학도 있다. 한양대가 교양필수로 삼고 있는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과기철)’은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적·역사적·사회적 접근을 포괄하고 있다. 경희대는 ‘인간의 가치 탐색(인가탐)’과 ‘우리가 사는 세계(우사세)’에 이어 ‘빅뱅에서 문명까지(빅문)’를 교양필수 중 중핵 교과로 운영하고 있는데, 각각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 편에 해당하는 교양과목이다. ‘과기철’이나 ‘빅문’과 같은 교양과학은 과학을 중심 주제로 삼으면서도 인문학적 이해를 곁들인 특징을 띠고 있다. 이른바 ‘과학 인문학’ 혹은 ‘과학기술 인문학’인 셈이다.

과학 인문학의 원로 송상용 선생은 이미 1971년에 “교양으로서의 과학 교육은 과학사를 위주로 하고 과학철학과 현대과학을 중점적으로 포함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크게 공감이 가는 혜안이 아닐 수 없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나라의 대학이 교양과학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교양과학을 통해 우리는 과학의 이모저모를 음미하면서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이나 반대를 넘어설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교양과학은 이공계와 인문사회계 모두에게 필요하며, 사실상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교양과학에 대한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교양과학에 우리 공동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송성수 부산대 교수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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