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새내기가 주로 배우는 것은 교양과목이다. 우리나라에는 교양을 전공보다 낮은 단계로 보는 풍조가 역력하다. 그러나 나의 전공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교양일 따름이다. 교양은 전공과 함께 교육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으며, 교양도 전공처럼 평생 씨름해야 하는 영역이다. 풍부한 교양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만사가 더욱 즐겁고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송성수 부산대 교수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 |
우리나라에서는 잡스가 얘기한 교양이 인문학으로 와전돼 소개됐다. 물론 인문학이 교양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교양=인문학’이란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교양의 기원은 중세 대학의 ‘자유 칠과(seven liberal arts)’에서 찾을 수 있다. 자유 칠과는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할 교양과목이었다. 흥미롭게도 자유 칠과는 문법, 수사, 논리, 산수, 기하, 천문, 음악 등으로 구성됐다. 인문학과 함께 과학에 관한 과목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교양과목의 구체적인 목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교양과목의 기본적인 구성이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인문학 교양도 부족하지만 과학 교양은 더욱 부족해 보인다. 우리의 대화에는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으로 떠들썩한 상황에서도 빅데이터,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등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별로 없다. 지금이 ‘과학의 시대’라고 말로만 떠들 뿐 이에 상응하는 과학 교양이 활성화돼 있지 않은 것이다.
교양 교육이나 과학 교육에 오랫동안 종사해 온 사람은 교양과학에 대한 꿈이 있다. 꿈의 차원을 넘어 현실에서 교양과학을 구현하고 있는 대학도 있다. 한양대가 교양필수로 삼고 있는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과기철)’은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적·역사적·사회적 접근을 포괄하고 있다. 경희대는 ‘인간의 가치 탐색(인가탐)’과 ‘우리가 사는 세계(우사세)’에 이어 ‘빅뱅에서 문명까지(빅문)’를 교양필수 중 중핵 교과로 운영하고 있는데, 각각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 편에 해당하는 교양과목이다. ‘과기철’이나 ‘빅문’과 같은 교양과학은 과학을 중심 주제로 삼으면서도 인문학적 이해를 곁들인 특징을 띠고 있다. 이른바 ‘과학 인문학’ 혹은 ‘과학기술 인문학’인 셈이다.
과학 인문학의 원로 송상용 선생은 이미 1971년에 “교양으로서의 과학 교육은 과학사를 위주로 하고 과학철학과 현대과학을 중점적으로 포함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크게 공감이 가는 혜안이 아닐 수 없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나라의 대학이 교양과학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교양과학을 통해 우리는 과학의 이모저모를 음미하면서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이나 반대를 넘어설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교양과학은 이공계와 인문사회계 모두에게 필요하며, 사실상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교양과학에 대한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교양과학에 우리 공동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송성수 부산대 교수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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