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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티아고 길’… 박해의 역사 속으로 [서울 순례길을 걷다]

입력 : 2018-11-19 03:00:00 수정 : 2018-11-18 23: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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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한강순례길 / 맛집즐비 마포 음식거리 출발점 / 절두산·양화진 이어지는 4㎞ 길 / 천주교인들 머리 벤 절두산 성지 / 신념 지킨 순교에 저절로 엄숙 / 외국인 선교사 잠든 양화진 묘원 / 한국 사랑했던 마음 되새겨져 서울 한강순례길은 오롯이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한강순례길은 마포음식문화거리에서 출발해 한강순례길 특화구간과 절두산 순교성지를 지나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까지 4㎞ 구간에 조성됐다.

서울시는 총 44.1㎞의 서울순례길을 산티아고 순례길 같은 세계적인 도보 관광명소로 만들 계획이다. 서울순례길 일부 순례지와 인근 관광명소를 연결해 북촌·서소문·한강순례길 3개 도보 관광지는 새로운 걷기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코스는 3∼4.5㎞로 2∼3시간이면 천주교 박해·순교 역사와 서울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3개 코스는 하루 두 차례에 걸쳐 서울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걸을 수 있다. ‘해설이 있는 서울순례길’은 서울도보관광 홈페이지(korean.visitseoul.net/walking-tour)에서 사전예약 후 참가할 수 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해설이 제공되고 참가비는 무료다. 각 지점에 비치된 스탬프를 찍어 코스 완주를 인증할 수 있다. 

17일 오후 마포음식문화거리를 찾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순례길을 찾는 순례자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 줄 음식점이 줄지어 있었다. 서울지하철 마포역 1번출구로 나오면 바로 음식문화거리와 연결된다. 마포의 대표 음식인 마포갈비는 물론 보쌈, 칼국수 등 서울의 이름난 맛집이 순례자를 맞는다.

늦가을 오후 한강은 저물어 가는 햇볕을 받아 더욱 빛났다. 밤섬의 가을풍경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철새들이 물 위를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일상의 잡념을 떨쳐 버렸다. 한강변에 조성된 한강순례길 특화구간은 흙길로 시작됐다. 콘크리트와 보도블록에 익숙한 발길이 유난히 편했다. 흙길이 끝나는 시점에는 자갈돌이 바닥에 깔려 있다.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놓고 맨발로 걷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강변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절두산이 들어온다. 절두산 순교성지는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겼다. 노란 낙엽이 떨어져 밟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절두산순교성지에서는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누에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잠두봉이라 불렸던 곳이다. 중국 사신들이 꼭 들렸을 정도로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곳은 가슴아픈 역사의 장소다.

1866년 2월 프랑스 극동함대사령관 로즈 일행이 조선의 천주교 탄압을 문제 삼아 군함을 이끌고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에 정박했다. 흥선대원군은 오랑캐에 의해 더럽혀진 양화진을 천주교인들의 피로 씻어내야 한다는 명목으로 잠두봉에서 천주교인의 목을 베었다. 이후 잠두봉은 머리가 잘린 곳이라는 의미의 ‘절두산’으로 불리게 됐다. 절두산 절벽은 천주교인들의 목이 아래로 굴러떨어져 ‘피의 절벽’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순교성지답게 절두산 성지 내 곳곳에서는 머리를 숙이고 두손을 모아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엄숙한 성지 내에서는 신념과 가치를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실천한 선인들의 담대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한강순례길에 있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을 찾은 대학생들이 묘원을 둘러보며 선교사들을 추모하고 있다.

성지 내에는 병인 순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67년 기념성당과 박물관이 세워졌다. 성당 지하실에는 순교성인 27위와 무명 순교자 1위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절두산 성지를 찾아 순교자들을 위해 경의를 표한 곳이기도 하다. 절두산 성지 일대는 1997년 11월 국가사적 제399호로 지정되었다.

절두산 성지를 뒤로하고 5분쯤 내려가자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묘원이 나왔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복음화와 근대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선교사와 가족의 묘지가 있는 곳이다. 미국과 영국 등 15개 국가 출신의 선교사와 가족 417명이 잠들어 있는 곳은 평온했다. 손녀의 손을 잡고 묘비 앞에 앉아 기도를 하는 할아버지, 딸아이를 데리고 산책 나온 외국인 부부, 성지 순례를 나온 대학생 등이 묘원을 거닐며 낯선 이국에서 잠든 이들을 추모했다. 한국을 사랑해 죽어서도 영원한 안식처로 양화진을 택한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인생의 의미를 생각했다.

글·사진=박연직 선임기자 repo2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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