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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칼럼] 동절기로 들어가는 北·美 비핵화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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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18 21:49:44 수정 : 2018-11-18 21: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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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기존 입장 내세우며 시각차 / 연말·내부정리에 대외 문제 느슨 / 美 연두교서 발표 전까지 ‘동면기’ / 2차 회담 전 장외 샅바싸움 전망 계절과 북·미 비핵화 협상이 상관관계가 있을까. 입동을 지나 본격적인 겨울철로 들어가면서 때마침 북·미 관계 1라운드가 끝나는 종소리가 울렸기 때문에 든 의문이다. 지난 3월 초 정의용 특사의 방북으로 시작된 평양과 워싱턴 간 비핵화 협상은 초여름 싱가포르 회담으로 절정에 달했고, 가을 들어 지는 낙엽처럼 시들해졌다. 과거 6·15 공동선언 등 남북한 회담은 한반도에 민족주의가 고조되는 8·15 전후에 왕성했다가 찬바람과 함께 가라앉았다. 분명 계절과 남북한 접촉은 통계학적으로 상관관계가 유의미하다.

북·미 간 협상도 남북관계 수준은 아니지만 확실히 계절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11월 마지막 주 추수감사절을 지나 크리스마스 등 연말연시 휴가 등으로, 북한 역시 12월은 한 해를 마감하고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를 준비하는 등 내부 정리 등으로 양측 모두 대외문제에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첨예하게 대립된 이해관계도 시기적으로 소강상태가 있다. 물론 체제의 존망이 달린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계절이 무슨 변수냐고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필자는 과거 대북 협상과 미국 체류 경험 등에서 협상이 계절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고 확신한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비핵화 협상에 계절적 요인을 거론하는 것은 북·미 관계가 서서히 동절기 국면에 진입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의도다. 지난 금요일, 6·12 싱가포르 회담 이후로는 정확하게 5개월 하고 4일 만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북한군 전술무기 시험지도 뉴스가 노동신문에 보도됐다. 김 위원장이 군비 증강 현장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지난해 11월 29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급 화성-15형 발사를 기준으로 하면 1년 만이다. 미국 중간선거 이후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연기된 상태에서 계속되는 미국의 핵무기와 시설에 대한 신고 요구를 외교 협상으로 무력화시키는 대책이 한계에 왔다는 것이 평양의 판단이다. ‘선 제재 완화 및 종전선언’의 카드를 내민 북한과 ‘선 핵·미사일 리스트 제출’을 주장하는 미국 간에 조율이 돌파구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동절기에 들어서고 있다. 아세안 싱가포르 정상회의에 참석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기존의 목록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북한이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계획을 공개해야 한다고 유화적인 톤의 발언을 함으로써 내년 초로 예상되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이 기선잡기에 나서고 있다.

평양 수뇌부는 미국과의 협상이 올해에 획기적인 진전을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2단계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북한 외무성은 하원의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협상에 견제구를 던지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강공 전략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삭간몰 미사일 기지 발표 등은 좌시하기 어려운 압박 공세라는 것이다. 결국 판을 뒤집지는 않지만 결기를 보여주는 메시지 발송이 필수적이라는 정무적인 결정에 따라 오버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군인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는 사진을 노동신문에 전격 실었다. 싱가포르 회담의 구름 위를 걷는 듯 한 황홀한 착각은 신의주 무기시험장의 차가운 현실에 직면했다.

지난 6개월간 꿈같이 지내온 북·미 지도자 간의 밀월은 이제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물론 워싱턴과 평양 어느 누구도 포커판을 엎을 수는 없다. 판을 깬 책임을 질 수밖에 없고, 여전히 상대와 ‘주고받기’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득이다. 그러나 상대의 압박과 제재에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수위를 조절하는 저강도 메시지는 필요하다. 특히 정상과 정상이 직접 담판하는 형태의 초유의 북·미 협상에서 정상들은 고상한 원론적 담론으로, 실무자는 상대를 압박하는 배드캅의 역할 분담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결국 내년 1월 20일 미국의 연두교서가 발표되는 시점까지 북·미 간의 관계는 불가피하게 동면기로 들어설 것이다. 양측이 심리전을 통해 상대의 약점을 공개하고 군사적 행동의 예고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내년도 2라운드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장외 샅바싸움이 치열한 겨울을 지나게 될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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