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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고시원 화재로 소중한 목숨 잃어야하나? [김현주의 일상 톡톡]

입력 : 2018-11-15 06:00:00 수정 : 2018-11-14 11: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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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서민의 최후 주거지' 고시원 화재방지 대책 매우 취약
고시원은 약 40년 전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을 위한 공부와 숙식 공간이었으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집 없는 서민들의 값싼 주거지로 변모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시원은 비좁은 복도를 끼고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벌집 쪽방' 구조인데다, 영세 규모 업주들이 방재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화재에 근본적으로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증금 없이 저렴한 월세만 내면 되는 생활공간이어서 일용직 노동자, 저임금 직장인, 노점상 등이 고시원을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통계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다중이용업소에서 발생한 화재 3035건 중 252건이 고시원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그만큼 고시원 화재가 적지 않다는 방증입니다.

소방당국이 일련의 화재 사건 등을 계기로 전국 1만2700여 곳에 달하는 고시원을 대상으로 전면적인 안전점검을 다시 벌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종로 고시원 화재처럼 노후 건물에서 영업하는 고시원은 정밀한 현장점검을 통해 동일한 참사가 재발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국가안전대진단 대상에 허점이 없는지도 다시 살펴야 합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큰 화재와 인명피해도 평소 안전점검을 소홀히 한 데서 비롯됐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될 것입니다.

마치 미로 같은 좁은 공간에 많은 거주자가 사는 고시원에서 최근 잇따라 화재가 발생했다.

고시원은 일반적으로 약 5㎡(1.5평)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좁은 복도를 끼고 있어 화재에 매우 취약한 구조다. 탈출로가 협소해 초기진화에 실패하면 인명피해가 많은 대형화재로 번질 가능성도 크다.

소방청의 '최근 5년간 다중이용업소 화재 현황'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다중이용업소 화재 3035건 가운데 252건(8.3%)이 고시원에서 발생했다.

지난 9일 오전 5시경 서울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인근 한 고시원에 불이나 7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지난달 21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의 한 고시원에서는 거주자가 방에서 담배를 피우다 잠이 들어 불이 났다. 다행히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불은 금방 꺼졌다.

같은달 13일 새벽 부산 부산진구의 한 고시원에서도 불이 나 17명이 대피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소방 추산 200만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지난 6월8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고시원에서도 화재가 발생해 1명이 병원에 이송되고 6명이 대피했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불은 10여분 만에 진화됐다.

2월27일 오후에도 경기도 파주시의 한 고시원에서 불이 나 1명이 병원에 이송되고, 18분 만에 꺼졌다.

고시원에서는 방화 사건도 종종 일어난다.

올해 6월1일 오후 부산 중구의 한 고시원에서 거주자가 자신의 방에 휘발유를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질렀다. 다른 거주자들이 즉시 대피해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지난 2008년 10월20일에는 서울 강남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서 거주자가 자신의 침대에 불을 내고 흉기를 휘둘러 6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공동생활을 하는 고시원은 화재 위험성도 아파트나 다세대주택 등의 다른 거주지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건물주가 임대수익을 높이기 위해 방을 증설하는 '방 쪼개기'는 화재 위험성을 더욱 높이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수도권과 광역시에서 적발된 원룸•고시원 불법 방 쪼개기는 최근 5년간 한 해 평균 1892건에 달했다.

김 의원은 "방 쪼개기는 환기시설과 대피로를 축소하고 내벽을 내화구조가 아닌 석고보드로 마감해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환기시설, 대피로 축소…내벽 내화구조 아닌 석고보드로 마감해 화재에 취약

이번 종로 고시원 화재가 전기난로에서 처음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날씨가 추워지는 시기 전기난로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화재정보센터에 따르면 전기난로·스토브에서 비롯된 화재는 수년째 매년 2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2014∼2015년에는 각각 161건이던 전기난로·스토브 화재는 2016년 214건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219건을 기록했다. 올해는 현재까지 201건을 기록해 이미 200건을 넘어섰다.

올해 발생한 201건은 모두 실화로 분류됐는데, 이 가운데 부주의에 의한 화재가 97건으로 가장 많았다. 전기적 요인으로 불이 난 사례도 60건 있었으나 부주의에 의한 화재와 비교하면 3분의 2에도 못 미친다.

2012년 10월에는 전북 정읍의 내장사에 놓인 전기난로에서 불꽃이 시작돼 대웅전이 전소됐다.

전문가들은 누전에 따른 사고가 아닌 한 전열기구에서 발생하는 화재는 모두 근처에 있는 가연성 물체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발생한다며 난로 가까운 곳에 물건을 두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화재가 발생한 고시원은 사실상 쪽방처럼 활용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최후의 주거지 중 하나"라며 "쪽방과 여관,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 비(非)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이 전국 37만 가구에 달하며, 이 가운데 15만 가구는 고시원에 거주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화재 사망자 306명 중 96명이 고시원, 쪽방 등 비주택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안정적인 집 없이 주택 아닌 곳을 거처로 삼는 이들이 취약한 안전대책 때문에 계속 희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존 건축물에도 화재 안전기준을 소급 적용해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집이 없어 불안정한 곳에 머무르는 이들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공급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전기난로·스토브 화재 매년 200건 이상 발생

최근 잇따른 화재로 기존 노후 건축물의 화재 안전에 대한 우려가 큰 가운데, 이르면 2020년부터 화재 위험이 큰 민간 건물에 대해 화재성능 보강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본격 추진된다.

국회와 국토부에 따르면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8월 말 대표발의한 건축법과 건축물관리법 개정안이 다음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이 법안은 화재에 취약한 건축물의 범위를 정하고서 해당 건축물의 화재안전 성능보강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형식은 의원입법이지만 국토부와 긴밀한 논의를 통해 마련된 법안이다.

화재안전 성능보강이란 마감재의 교체, 방화구획의 보완, 스프링클러 등 소화설비의 설치 등을 말한다. 지자체장은 보강대상 건축물에 대해 실태조사를 벌이고 건물주에 성능보강을 명령할 수 있다.

기존 건축물 중 화재위험 건물에 대한 수선을 의무화하는 다소 강력한 규제이기에, 정부는 내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한시적으로 성능보강에 대한 보조 및 융자 지원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4년간 총사업비는 국고와 지방비 각 96억원과 주택도시기금 1200억원 등 총 1490억원으로 정해졌다.

◆화재안전 성능보강 관련 법안 통과 탄력받을 듯

정부는 올해 7월부터 내년 12월까지 다중이용업소 등 55만4000개동에 대해 화재안전특별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 결과에 따라 구체적인 화재안전 성능보강 대상이 정해질 예정인데, 가연성 외장재를 사용하거나 스프링클러가 없는 등 화재에 취약한 것으로 분류된 다세대와 연립, 도시형생활주택 등 주거시설은 총 5만7494동이다.

내년 시범사업에서는 이들 건물 중 1500동을 추려내 각 4000만원까지 1.2%의 저(低)금리로 주택도시기금 융자를 해줄 예정이다.

이번 보강 사업은 의료시설이나 노유자시설 등 피난약자 이용시설과 고시원 등 다중이용업 건물 등을 대상으로 한다. 화재가 취약한 것으로 분류된 시설은 1431개동이다.

내년 시범사업에선 9억6000만원을 투입해 72개동에 지원하는 것이 정부 방안이었으나, 국회 상임위 예산심사 과정에서 38억4000만원으로 4배 가량 증액돼 지원 규모가 다소 유동적인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원은 "고시원 화재 참사가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더는 화재에 취약한 기존 건축물의 안전을 외면할 수 없다"며 "화재안전 성능 보강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법안 통과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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