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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칼럼] 결혼은 결혼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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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11 23:00:57 수정 : 2018-11-11 23: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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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한번 핑계로 동화 같은 식 / 부모들 ‘최고 비싼 예식’ 공들여 / 육아 등 현실 고단함 빠져 있어 / 청년들 ‘결혼 불신’ 되레 부채질 며칠 전 한 결혼식에서 돌아와 생각하기 시작한다. 결혼이란 뭘까. 살아오면서 수천 번도 더한 질문을 또 던진다.

시인 김수영은 그의 산문에서 “모든 언어는 과오다. 나는 시 속의 모든 과오인 언어를 사랑한다. 언어는 최고의 상상이다. 그리고 시간의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잠정적인 과오다. 수정될 과오. 그래서 최고의 상상인 언어가 일시적인 언어가 되어도 만족할 줄 안다”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김 시인의 말을 조금 바꿔서 ‘언어’라는 어휘 대신 ‘결혼’이라는 어휘를 넣으면 어떨까 잠시 생각한다. “모든 결혼은 과오다. 그러나 최고의 상상이다.” 또는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모든 사랑 속의 언어는 과오다. 그러나 그것은 최고의 상상이다”라고. 최고의 상상인 결혼, 최고의 상상인 사랑.
강은교 동아대 명예 교수 시인

그러나 과오 때문에 실은 이 세상은 흘러간다. 모든 인생이 과오이며 실패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세상은 지금도 쉴 새 없이 건설되고 있으며, 실패는 최고의 상상이 되어 현재가 최고의 삶의 때라고 입을 모아 말하게 한다. 철학자로부터 역사학자, 시인, 소시민, 서민에 이르기까지 그 점에 도달하는 데는 같다. 현재의 최고성은 결혼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 가치의식의 심층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심층의 모습이란 결혼을 결혼식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얼마나 비싼 결혼식을 나는 나의 자녀에게 해줄 수 있는가 하는.

내가 최근 본 결혼식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비싼’ 결혼식이라는 생각이 일반 결혼식장의 웨딩홀과는 다른 그 방을 들어서는 순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천장에서는 은은한 조명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으며, 어두컴컴했으며,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하객이 있는 자리의 조명은 전부 꺼졌다. 서양식 드레스를 곱게 입은 신부는 옛 성(城)의 대리석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공주처럼 계단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으며, 서양식 예복을 차려입은 신랑은 왕자처럼 계단 앞에 가슴을 내밀고 서 있었다. 주례는 없었다. 결혼식은 결혼의 이미지가 되고 있었다. 우리의 고단한 삶의 최고의 상상이 살고 있는 동화적 이미지가. 하긴 거의 모든 결혼식이 그러리라만. 일생에 단 한 번 있다는 핑계에 얹혀 동화가 되고 있으리라만.

그런데 그 이미지들이 오늘 곳곳에서 찢어지고 있다. 찢어진 이미지들이 오늘의 지붕에 얹혀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다. 일생에 한 번 왕자와 공주가 되어 모든 명작 동화의 끝부분에서처럼 잘살 것임이 분명한 동화가. 그러나 오늘의 결혼식이 쓰는 그 동화엔 ‘출산’의 고통이라든가 육아의 고단함과 막막함은 빠져 있다.

곳곳에서 그 찢어진 깃발을 본다. 그때쯤 요즘의 많은 젊은이는 깨닫는다. 그리고 결혼은 안 해도 좋아, 멋진 연애만 할래, 혼자 사는 게 얼마나 편한데 하고 중얼거린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잘 꾸며진 사무실에 깨끗이 세차한 차를 타고 도착하는 그 즐거움. 그 즐거움을 굳이 버릴 것인가. 취직 못한 젊은이들은 더욱 그 동화(童話)의식에 깊이 침윤돼 있다. 언젠가 깨끗한, 세련되고 비싼 사무실의 카펫을 밟을 생각을 하면서. 그런 젊은이들에게서 어찌 고통의 출산을, 고단한 육아를, 가시투성이인 길 위에 서 있기를 바랄 것인가.

그러므로 오늘의 이 시점에서 어찌 보면 저출산은 당연하다.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 ‘결혼식이 결혼’인 가치관은 젊은이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세대에게서 가르쳐 온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어른들이 가르쳐 온 대로 젊은이들이 사는 결과가 만든 것이라는 점을.

이에 기성세대의 정신 밑바닥에 자리 잡은, ‘결혼식이 결혼인 가치의식’이 변한다면, 그래서 불법 부동산 거래를 해서라도 고급 아파트를, 비싼 혼수를 마련하려는 전시적인 경쟁의 몸부림에서 기성세대가 벗어난다면 저출산 문제는 스스로 해결되지 않을까. 그 길 위에서 육아의 고단함은 더 이상 고단함이 되지 않으리라. 젊은이들은 부모세대의 가치의식에 휩싸이지 않은 채, 삶이라는 가시밭길을 최고의 상상을 꿈꾸며 행복하게 걸어갈 것이다. 결혼식이 결코 결혼이 아닌 사랑의 가시밭길을.

강은교 동아대 명예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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