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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국산 전투기 개발’ 야심…잇따른 악재로 좌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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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11 06:00:00 수정 : 2018-11-11 09: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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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중인 한국형전투기(KF-X) 상상도. 2021년 시제기가 나올 예정이다. KAI 제공
‘국산 전투기.’ 국방 분야에서 이 단어만큼 달콤한 말은 찾아보기 힘들다. 현대 전쟁의 승패가 하늘을 장악할 수 있는 힘이 있는가에 달려있는 만큼 첨단 전투기를 확보하는 것은 각국 군대의 핵심 과제다.

그 중에서도 전투기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운용하는 것은 국방 분야의 ‘로망’으로 꼽힌다. 자주국방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인데다 첨단 기술 축적과 항공우주산업 생태계 구축 등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대한 개발비와 생산비용, 기술적 장벽 등으로 전투기 개발 능력을 보유한 국가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도 인도네시아와 함께 2026년까지 한국형전투기(KF-X)를 공동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연구개발에 한창이다. 하지만 개발비 분담과 기술이전 규모를 둘러싼 인도네시아와의 재협상, 무장 장착 준비 지연 등 악재가 겹치면서 당초 개발계획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KAI가 개발중인 KF-X는 내부무장창을 갖추지 않아 스텔스 성능이 제한된다. 방위사업청 제공
◆3년간 허송세월한 미국제 무장 통합

현재 KF-X 개발 과정에서 핵심은 무장 통합이다. 항공무장은 대부분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항공기와 무장 통합에 필요한 기술자료를 외국에서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미국제 무장 장착 관련 기술자료 이전이 3년 전부터 난항을 겪었다는데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9일 방위사업청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2월 한미 정부는 안보협력위원회(SCC)를 열어 미국제 무장 기술자료 수출 문제를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 미국측은 “KF-X 시제기가 없어 미국제 무장 기술자료 수출승인 검토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미 양측은 2016년 3월 실무회의를 갖고 미국측이 △크기나 무게 등이 포함된 물리적 기술자료 △무장-항공기 통합 관련 정보가 담긴 기능적 기술자료 △시험용 탄과 지원장비 등을 단계적으로 제공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우리 정부는 같은해 7월과 2017년 1~2월 한미 방산기술전략협력체(DTSCG)와 SCC 등을 통해 KF-X 무장 통합에 대한 미국측의 협조를 거듭 요청, 2016년 11월~2017년 12월에 걸쳐 미국제 무장의 물리적 기술자료에 대한 미국 정부 수출승인 절차를 완료했다.
KF-X에 장착될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입증시제품을 점검하는 연구원들. 방위사업청 제공
하지만 미 국방부 안보협력국(DSCA)은 지난 2월 우리측에 서한을 보내 “KF-X 시제기가 없어 기능적 기술자료 수출승인을 불가하다”며 “다만 한국측이 (KF-X) 상세설계 기준 설정 시 제공 가능한 기술자료의 수출승인을 검토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KF-X 개발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상세설계에 들어간 시점은 지난 7월. 사실상 거부였다.

한미 양측은 지난 5~7월 방산기술협력위원회(DTICC), 한미 통합국방협의체(KIDD), SCC를 잇따라 열어 KF-X 상세설계 기준에 준해 기술자료를 확보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지난 8월 한미 정부와 방산업체 등이 참여한 실무회의에서 KF-X 상세설계에 필요한 기술자료를 선별, 미국 정부 보증에 의한 대외군사판매(FMS) 방식 대신 상업구매로 우선 추진키로 합의했다.

상업구매 방식을 택해도 미국 정부의 승인 등 관련 절차가 필요한 만큼 실제 기술자료 획득에는 시간이 걸린다. 방사청은 독일제 IRIS-T 단거리 공대공미사일, 영국제 미티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체계통합으로 개발 일정을 맞춘다는 입장이나, 2021년 출고될 KF-X 시제 1호기에 미국제 무장 통합이 완전히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2026년까지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등 국산 전자장비와 미국제, 유럽제, 국산 무장을 통합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5년. 사소한 결함이라도 발생하면 전체 개발 일정에 차질이 우려된다.

미국제 무장 통합 문제에 대해 미국측의 입장은 일관됐다. KF-X 시제기가 있어야 기술자료 제공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방위사업청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약 3년간 미국측과의 소득 없는 협상에 매달리면서 미국제 무장을 안정적으로 통합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허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공군 F-35A 1호기가 미극 텍사스주 포트워스 상공을 날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인도네시아 리스크, KF-X 발목 잡을 수도

미국제 무장 통합 문제가 봉합 국면에 접어들자 이번엔 ‘인도네시아 리스크’가 터졌다. 지난달 21일 위란토 인도네시아 정치법률안보조정장관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차세대 전투기(KF-X/IF-X) 개발 참여조건을 재협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2026년까지 KF-X/IF-X를 개발,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인도네시아는 전체 개발비(8조5000억원)의 20%인 1조7000억원을 투자하는 대신 시제기 1대와 각종 기술 자료를 이전받은 뒤 차세대 전투기 50대를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사업 분담금 등 2380억원을 한국 정부에 지급하지 않아 중도하차 우려가 제기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KF-X/IF-X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대신 재협상을 통해 자국의 사업비 부담을 줄이고 기술이전 항목을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덜 주고 더 받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측이 인도네시아에 쥐어줄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KF-X/IF-X 개발 계약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인도네시아 정부 간에 체결됐다. KF-X 개발업체 선정과정에서 KAI와 대한항공은 경쟁적으로 인도네시아에 러브콜을 보냈다. 그 결과 인도네시아는 좋은 조건을 보장받았다. 재협상을 한다 해도 우리측에 손해만 있을 뿐, 이익이 될 가능성은 낮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우리측이 이전할 기술이 많지 않다.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에 미국 기술을 이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도네시아도 국영 업체인 PTDI가 항공기를 개발, 제작한 경험이 있어 기초적 수준의 기술자료 이전은 거부할 공산이 크다.

재정적 측면에서의 리스크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인도네시아가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그 공백은 KAI가 메워야 한다. KAI는 미 공군 훈련기(APT) 사업수주 실패와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사고 등의 여파로 군용 항공기 수주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는 상황이다. 반면 인도네시아가 내야 할 분담금을 떠안게 되면 지출 규모는 증가한다. 재협상이 이뤄지더라도 국책 은행의 인도네시아 융자 등 정책적 지원이 없으면 KAI의 부담은 더 늘어난다. 
중국 공군 J-20 스텔스 전투기는 엔진 등 핵심 구성품의 신뢰성 문제로 양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위키피디아
현대 전투기는 구성품 성능이 고도화되면서 개발비, 생산비, 정비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고가의 무기다. 세계 각국의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이 난항을 겪는 이유다. 중국이 1990년대부터 1500억 위안(약 25조원)을 투입해 J-20 스텔스 전투기에 탑재할 WS-15 제트엔진을 개발하고 있으나 여전히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2030년 국산 F-2 전투기를 퇴역시키고 차세대 전투기를 도입하려 하지만 천문학적인 개발비, 생산비로 독자 개발 대신 미국 록히드마틴 F-22 스텔스 전투기를 개량하는 방식의 공동개발을 저울질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보다 재정적, 기술적 여건이 열악한 우리나라 입장에서 전투기 개발에 성공하려면 효율적인 프로그램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KF-X 시제기가 등장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사업 구조를 흔드는 일이 일어나는 등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 벨기에가 F-16 전투기를 F-35A로 대체하기로 결정하는 등 F-35A를 채택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반면 내부무장창도 없는 KF-X가 전술적으로, 산업적으로 얼마나 큰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개발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KF-X 회의론을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정부와 KAI의 대응이 주목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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