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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보육시설 늘리고 지역특성 맞는 돌봄 체계 만들어야” [빅데이터로 ‘돌봄’을 말하다]

입력 : 2018-11-01 19:30:50 수정 : 2018-11-01 19: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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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돌봄정책,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 서울 어린이집 현원·대기아동 수 1대 1 / 구도심, 수요보다 공급 많아 미달 사태 / 농어촌 시설 부족 차량타고 장거리 통원 / 전문가 “돌보미, 도서산간 가정 방문 꺼려 / 獨처럼 자신 집에서 돌보게 할 필요 있어 / 구도심, 공공시설서 함께 돌보는 것 좋아” / 성평등 관점 결여된 저출산 대책 안 돼 / 경력단절·독박육아·임금차별이 야기한 / 출산기피현상 대처할 제도적 장치 시급
“국공립은 바라지도 않아요. 민간이든 가정이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은데 제가 전업주부라서 그런지 차례가 오질 않네요.”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A씨는 지난해부터 3살 된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려 했지만 대기순번이 좀처럼 줄지 않았다. 한 자릿수에 진입했다가도 1순위 자격 아동이 중간에 들어올 때마다 순위가 밀렸다. 2017년 말 기준 영등포구의 어린이집 현원(1만517명)과 대기아동 수(1만454명, 중복 제거)가 엇비슷했다. 국공립뿐만 아니라 민간·가정 등 모든 유형의 어린이집에 아동이 줄을 섰지만 2명 중 1명은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지역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건 아니다. 대도시라 해도 인구가 줄고 있는 구도심에는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아동 수를 채우지 못한 어린이집이 많다. 농어촌 지역에서는 아이들이 차량을 타고 오랜 시간 산 넘고 물 건너 보육시설을 찾아가기도 한다.

세계일보가 전국 시군구 인구통계와 각 부처의 돌봄 자료를 토대로 클러스터링 분석을 한 결과 대한민국 아이들은 4개의 ‘돌봄 권역’에 살고 있었다.

<세계일보 10월29일자 1·4·5면 참고>

1그룹은 인구 규모는 제법 크지만 경제 수준과 여성취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소도시’였고 2그룹은 인구 규모와 여성취업률이 가장 높은 ‘대도시’, 3그룹은 ‘농어촌’, 4그룹은 인구가 감소 중인 ‘대도시 구도심’이었다. 지역별로 특성이 다른 만큼 각 지역 여건에 맞는 돌봄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권역별 지원 방안과 향후 저출산 대책에 담겨야 할 방향을 7명의 전문가에게 물었다.

◆보육 공공성 강화 시급

1일 세계일보가 실시한 전문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육시설의 공공성 강화’가 그룹 1∼4에서 가장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로 동일하게 꼽혔다. 그룹별 순위는 전문가 7명이 각 그룹에 제시된 1∼6위 방안에 순위를 표시하면 높은 순위일수록 고점(1∼6점)을 부여한 뒤 산출했다.

보육시설 공공성 강화는 중소도시(1그룹)가 39점으로 가장 높았고 대도시(2그룹)는 34점, 농어촌(3그룹)과 대도시 구도심(4그룹)은 각각 29점이었다. 대도시 점수가 중소도시보다 낮은 건 직장 내 일가정양립문화 확산과 초등돌봄교실 강화로 인해 점수가 분산된 결과로 보인다. 신윤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도시 지역은 민간어린이집이 난립하며 어린이집의 질적 저하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대도시일수록 공공 어린이집 확충과 함께 직장 내 일가정양립문화의 정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양적으로도 도시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수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현장의 목소리와 일치한 지적이었다.

서울시 한 구의 담당자는 “민간과 가정 어린이집은 신규 설립을 제한하고 국공립을 신설하며 어린이집 수를 늘려가고 있다”며 “다만 올해 들어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 어린이집을 마련할 부지 시세와 감정평가액의 차이가 너무 커 공간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서울 내 어린이집 현원과 입소대기 아동 수는 각각 23만4867명, 23만3405명(중복 제거)으로, 모든 아이를 수용하려면 지금보다 시설을 2배로 늘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농어촌 맞춤 돌봄정책 필요

전문가들의 의견이 비슷하게 나타난 도시와 달리 농어촌에 대해서는 비교적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보육의 공공성 강화에 7명 중 6명이 높은 점수를 줬지만 방식을 놓고 기존 보육시설 확충과 마을의 돌봄 기능 강화로 의견이 반반씩 나뉘었다.

일부 전문가는 농어촌을 위한 새로운 돌봄 유형을 제시했다. 박선권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지역의 수요와 공급을 고려한 다양한 형태의 보육·돌봄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며 독일의 아이돌봄제도를 언급했다. 국내에도 여성가족부가 제공하는 아이돌봄서비스가 있지만 독일의 운영 방식이 더 다양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아이돌봄서비스는 돌보미가 만 12세 이하 아동의 가정을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용자 가정이 도서, 산간벽지에 있을수록 돌보미가 방문을 꺼리며 일부 아동이 서비스에서 소외되고 있다.

반면 독일의 아이 돌보미는 자기 집에서도 최대 5명까지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 이용자 욕구에 맞춰 어린이집처럼 종일반 또는 주간반 등을 운영하며 다양한 활동과 교육적 과제도 수행한다.

올해 초 여가부는 일반 가정에 파견되는 돌보미가 이웃 가정 아이까지 포함해 두 명까지 돌보는 ‘1대 다(多) 서비스’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돌보미 파견을 전제로 한다.

박 조사관은 “수요와 공급이 모두 부족한 농어촌은 일률적인 공급으로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며 “돌봄제도의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시 중에 마을의 돌봄문화(마을공동체 복원)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곳으로는 대도시 구도심(4그룹)이 꼽혔다. 현재 복지부가 추진 중인 ‘다함께돌봄’이 성과를 거둘 만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다함께돌봄은 주민자치센터, 복지관 등 공공시설이나 아파트센터에 공간을 마련해 초등학생을 돌보는 사업으로 현재 전국에 12곳이 있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구가 줄고 있는 대도시 구도심과 소규모 중소도시는 수요가 지리적으로 분산돼 있고 시설 접근성도 떨어져 지역의 일정 시설을 기반으로 한 지역돌봄서비스 모델을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저출산 대책에 성평등 관점 중요

전문가들은 향후 저출산 대책에 전폭적으로 반영돼야 할 가치로 ‘성평등’을 제시했다. 정부가 11월 중 발표할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 재구조화 방안에 전면적으로 담겨야 할 핵심가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제1∼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대해 “성평등 관점이 일관되게 결여된 것이 지난 계획의 결정적 한계였다”며 “앞으로는 여성의 경력단절, 독박육아, 노동시장에서의 성별임금격차 등으로 인해 발생한 출산기피 현상에 대해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도 “저출산 문제는 (청년실업, 결혼에 대한 인식 변화 등) 사회구조의 결과인데도 이를 출산장려 정책과 인구 정책으로 대응하려고 한 게 문제”라며 “삶의 질과 성평등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부처를 막론하고 범정부적 대응을 해야 하지만 현재 부처 간 연계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 직속으로 꾸려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위상에 비해 실제 권한은 크지 않다.

박선권 입법조사관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조정과 결정에 따른 정책의 실현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미·김준영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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