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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뉴스? 가짜 뉴스? 저널리즘을 해부하다

입력 : 2018-10-26 03:00:00 수정 : 2018-10-25 20:5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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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 ‘제0호’ / 정치적 야망·돈거래 목적으로 악용 / 뉴스 가공하고 조작하는 황색언론 / 그 속살을 파헤치고 신랄하게 풍자
가짜뉴스가 범람해 언론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는 이즈음에 눈에 띄는 소설이 출간됐다. 팩트가 명백히 왜곡되거나 틀린 가짜뉴스는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분명한 지탄 대상이지만 이른바 정론지에서 ‘진짜뉴스’라는 탈을 쓰고 여론을 호도하는 실태는 어찌할까. 세계적인 석학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마지막 소설 ‘제0호’(이세욱 옮김·열린책들·사진)는 뉴스가 생산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협잡과 왜곡의 실체와 메커니즘을 신랄하게 드러내고 풍자하는 작품이다.


‘콜론나’는 대학도 끝까지 다니지 못한 채 지방 일간지들을 상대로 기사를 썼고 몇몇 출판사를 위해 원고를 대신 읽는 고역을 치렀으며 딴 작가를 대신해 소설을 쓰기도 한 밑바닥 글쟁이다. 그가 ‘도마니(내일)’라는 신문 창간을 앞둔 주필 ‘시메이’의 부름을 받는다. 시메이는 권력자 협박용 보험으로 신문을 창간하려는 재력가의 프로젝트에 고용돼 창간예비 신문인 ‘0호’를 발간하려고 한다.

시메이는 이 신문이 예비 발간호를 통해 권력자들을 향해 시위를 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끝내 창간호는 발간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콜론나’를 불러 그 과정을 책으로 집필해달라고 청탁한 상황이다. 창간 준비만 하다가 발행인의 결정으로 사업이 끝나 버리면 책은 폭탄이 되어 거액의 인세를 안겨줄 것이고, 책이 출간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책을 출간하지 않는 조건으로 돈을 줄 것이라는 계산이다.
마지막으로 집필한 소설에서 뉴스 생산 메커니즘을 풍자한 움베르토 에코. 그는 “이전 소설들이 말러의 교향곡들이라면 이 소설은 재즈에 더 가깝다”고 생전에 말했다.
열린책들 제공

이 소설은 콜론나가 창간 예비호를 준비하는 과정을 기자들 고문 자격으로 참여해 기술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뉴스를 가공하는 백태가 드러난다. 독자들의 ‘정당한’ 반박을 무력화하는 기본 원칙은 물론,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야 하는 기사에서 교묘히 의견을 반영하는 테크닉도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런 경우에 써먹을 수 있는 요령이 있습니다. 먼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진부한 의견을 소개하고, 그다음에 더 논리적이고 기자의 생각에 가까운 또 하나의 의견을 소개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독자들은 두 가지 사실을 정보로 얻었다는 인상을 받으면서도 한 가지 의견만을 더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시메이 주필은 특정인의 약점을 취재해 기사에 암시하는 방식을 ‘협박’이라고 표현하지 말라고 기자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뉴스를 싣습니다. ‘뉴욕타임스’가 말하듯이, all the news that’s fit print를…” ‘인쇄하기에 알맞은 모든 뉴스’라는 문구는 뉴욕타임스 매호 1면 왼쪽 상단에 인쇄돼 있는 이 신문의 사시다. 그는 이 사시를 비틀어, 멀리 있는 큰 사건보다 가까이 있는 작은 사고가 더 큰 뉴스가 되는 간단한 현실을 상기시키면서 “뉴스들이 신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문이 뉴스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론 앞에서는 반박하는 사람의 신뢰성에 관한 의혹을 제기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 극복 방법이라고 제시한다. 그는 기자 팔라티노에게 말한다.

“아무리 청렴하고 공정하다고 해도 백 퍼센트로 그런 사람은 없어요. 그는 아마 소아 성애증에 걸린 사람도 아닐 것이고, 자기 할머니를 살해한 적도 없을 것이며, 뇌물을 받은 적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뭔가 수상쩍은 일을 한 가지쯤은 했을 거예요. 그것도 아니라면,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지만, 그가 매일같이 하는 일을 수상해 보이게 만드는 겁니다. 팔라티노, 당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세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결국 기자 중 한 사람이 무솔리니가 살아 있다는 음모론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정재계 인사들의 커넥션을 알게 되고 등에 칼을 맞은 채 살해되면서 재력가는 신문 창간을 포기하고, 함께 취재 내용을 공유한 기자들도 두려움 속에 몸을 숨긴다. 췌장암으로 생의 마지막을 예감하면서 2015년 이 소설을 출간한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 말미에 쓸쓸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세계는 하나의 악몽이야, 내 사랑. 나는 지금 타고 가는 열차에서 내리고 싶어. 하지만 내릴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어. 우리는 도중에 정차할 역이 없는 직행열차를 타고 있거든. …우리는 그런 세계에 끼어들지 말고 우리 식으로 살자고. …다른 사람들은 지옥에나 가라고 하지 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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