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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 위기 대형 불화 ‘석가삼존도’ 美 버지니아서 첫 환수 [해외 우리 문화재 바로알기]

입력 : 2018-10-23 06:00:00 수정 : 2018-10-23 00: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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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자리로 돌아온 불교문화재 불교문화재는 대부분 사찰에서 예배의 대상, 혹은 예배 대상을 장엄할 목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사찰의 소유물로서 제자리를 떠날 수 없다. 그러나 과거 혼란한 시기에 사찰을 떠나 흩어지거나, 도난이나 약탈 등으로 없어진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는 국외로 유출되기까지 한 것도 있는데, 환수 문화재 중에 불교미술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다.

적지 않은 불교문화재들이 제자리를 찾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찰에서 남긴 해당 문화재 관련 기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재 자체에 사찰 이름을 써두는가 하면, 보다 구체적으로 봉안되었던 전각 이름이나 제작의 연유와 제작에 참여한 사람, 시주자 이름까지 기록해 두기도 한다. 절에서 불사를 일으킬 때에는 창건기, 중수기와 같은 일종의 공사보고서를 만들었고, 사찰의 소장문화재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사적기를 남기기도 한다. 또 사찰에서 만든 재산목록, 조계종이 1960년대부터 사진을 첨부해 제작한 성보대장도 도움이 된다. 1990년대부터는 사찰 소장 문화재를 종단 차원에서 조사하여 전산관리를 하고 있다.

물론 이런 기록들이 사라진 문화재를 찾으려는 사찰들의 노력과 결합할 때에야 환수라는 ‘해피 엔딩’을 맞을 수 있다. 그렇게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불교문화재의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2015년 3월 미국의 한 경매에 나온 사실이 확인된 ‘동악당재인대선사진영’은 조계종의 불교문화재 도난백서를 통해 도난문화재임이 확인돼 같은 해 6월 국내로 환수할 수 있었다.
◆훼손 위기에 직면해 모습 드러낸 석가삼존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해외에서 처음으로 환수한 문화재는 대형 불화 ‘석가삼존도’다. 2013년 5월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 정보를 검색하던 직원이 미국 버지니아박물관협회에서 만든 ‘위험에 처한 버지니아의 문화재 10선’이라는 동영상을 확인한 게 시작이었다.

동영상에는 버지니아주 노포크에 있는 허미티지박물관에 보존처리가 시급한 한국 불화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재단은 보존처리 지원을 위해 현지조사를 벌였는데, 불화가 18세기의 것으로 파격적인 도상을 갖춘 희귀하고 학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는 걸 확인했다.

보존처리를 하면 불화의 상태가 나아질 것이나 안타까운 점은 허미티지박물관에는 3미터가 넘는 이 불화를 전시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사실이었다. 박물관 수장고에 잘 보관되기는 하겠지만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을 만나고, 학술적 연구에 활용될 여지는 크지 않아 보였다. 물론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적극적으로 활용돼 불화의 존재가 더욱 빛날 것이었다. 재단에서 박물관과의 반환 교섭을 벌인 이유였다. 

1988년 경남 고성군 옥천사에서 도난당한 나한상이 미국의 한 경매사에 출품되었을 당시 도록에 실린 사진.
◆일본 고미술상 통해 유출돼 ‘적산’ 낙인까지

한편으로 석가삼존도의 내력을 조사했다. 불화는 대개 제작 내력을 기록한 ‘화기’(畵記)를 남기고 있어 사찰명, 봉안 전각, 화승의 이름 등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불화에는 남아 있지 않아 원래 어느 사찰에 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미국에서의 이력은 잘 기록되어 있었다.

석가삼존도는 일본 고미술상인 야마나카상회(山中商會)가 보유하던 작품이었다. 야마나카상회는 오사카에서 시작된 고미술상으로서 19세기 말 뉴욕으로 진출한 이후 20세기 전반 보스턴, 런던, 파리 등에 전 세계적인 판매망을 구축하고, 서구사회에 아시아 미술품을 판매했다. 서구 유명 박물관들과 수집가들에게는 아주 유용한 아시아 유물 공급책이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수많은 유물이 제자리를 잃고 전 세계로 흩어져 나가는 통로가 된 셈이다. 유명 박물관과 수집가들의 진열장이 명품 아시아미술로 화려하게 채워지는 동안 유물이 있던 자리에는 폐허만 남았다.

미국 허미티지박물관이 기증한 석가삼존도를 소개하는 기자간담회가 2014년 1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허미티지박물관에 소장되었을 당시 불화의 상태가 위험하다는 내용을 담은 동영상이 알려지면서 환수할 수 있었다.
2차대전 발발 이후 야마나카상회 미국 지점들의 소장품들은 모두 ‘적국자산관리국’(Alien Property Custodian)에 의해 미국 정부에 몰수되었고, 현금 회수를 위해 경매 처분되었다. 사찰에서 불자들의 예배 대상이었던 석가삼존도가 원래 있던 불전에서 떼어져 일본을 거쳐 미국까지 팔려왔다가 난데없이 적국자산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석가삼존도는 적국자산관리국의 1944년 경매에서 판매되어 허미티지박물관의 소유가 되었다.

석가삼존도 반환을 위한 재단과 박물관의 협상은 성공적이었다. 박물관은 이 불화가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기증을 결심했고, 재단의 문화재 환수사업을 후원하는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게임즈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허미티지박물관에 운영기금을 기부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이렇게 석가삼존도는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현재 석가삼존도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존처리 중이고 수리가 끝나면 그 장엄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김동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조사활용2팀 차장
◆도난백서 통해 환수 가능했던 대선사진영

‘동악당재인대선사진영’(東岳堂在仁大禪師眞影)의 환수는 기록의 중요성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다.

진영의 존재가 포착된 것은 2015년 3월이었다. 미국 한 경매에 한국 고승진영 한 점이 출품된 것을 재단에서 확인하였고, 관계기관에 정보를 제공했다. 문화재청 문화재감정관실에서는 진영이 선암사에서 도난당한 ‘동악당재인대선사진영’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런 추정이 가능했던 것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1999년 도난 불교문화재 정보를 엮어 ‘불교문화재 도난백서’를 발간한 덕분이었다. 국외 유통문화재 모니터링과 도난문화재 확인에 관계기관 간 협조체계도 한몫을 했다.

즉시 경매 출품작과 도난문화재 자료에 대한 상세한 비교 검토작업이 시작됐다. 1969년 국립박물관에서 실시한 불교회화 조사 당시 촬영한 컬러 슬라이드 사진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전문가 검토 결과 도난당한 작품과 동일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문화재청은 조계종의 위임을 받아 경매사에 경매중지요청을 했고, 동시에 협상이 진행돼 판매자 측은 진영을 기증하여 반환하는 데 합의했다. 진영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경매 출품 사실이 알려지고 3개월 정도가 지난 같은 해 6월 26일. 조계종은 7월 21일에 대국민 공개식을 가졌다.

◆도난 정보와 소장자의 선의가 만든 나한상의 귀환

경남 고성군 옥천사의 ‘나한상’도 진영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환수됐다.

2017년 3월 미국의 문화재 유통시장을 조사하던 중 한 경매소에서 출품 직전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 매우 뛰어난 조선후기 나한상 한 점이 눈에 띄었다. 오른손을 머리 위로 올린 독특한 자세, 눈을 가늘게 뜨고 윗니를 드러낸 채 웃고 있는 해학적인 모습이었다. 나한상은 도난문화재 정보에 올라 있는 것이었는데, 1988년 옥천사에서 도난당한 것 중 하나였다.

옥천사에서는 1988년 7구의 나한상이 사라졌다. 이 중 2구가 2014년에 도난문화재를 은닉한 자를 검거하면서 회수되었고, 다른 2구는 2016년 국내 사립박물관이 소장한 나한상들이 도난문화재임을 알고 옥천사에 기증하면서 돌아왔다. 나한상이 미국 경매에 나올 지난해 3월 당시에는 3구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조계종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문화재청은 경매사에 경매중지를 요청했다. 경매사는 소장자와의 협상을 적극적으로 주선하여 주었다. 자신이 구입했던 나한상이 도난문화재임을 알게 된 소장자는 나한상을 무상기증하기로 결정했다. 문화재를 취급하는 기업으로서의 윤리와 고객과의 신뢰를 중시한 경매사, 금전적 이익보다는 명예를 중시하고, 잃어버린 불상을 찾는 사찰의 진정성을 헤아린 소장자의 선의가 결합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사라진 문화재 정보의 정리, 환수의 기초

소개한 사례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 국외로 유출된 문화재와 관련된 정보는 환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 정보를 소장자·소장처와 관계당국이 공유하고, 환수를 위해 적극적인 협력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진영의 귀환을 계기로 문화재청과 조계종이 국외 소재 불교문화재의 정보공유와 환수를 강화하기 위한 협력각서를 체결한 것은 큰 성과였다. 또 체계적인 도난문화재 정보 관리의 필요성과 불교문화재 도난백서의 소중함을 체감해 조계종이 축적된 정보를 업데이트한 ‘불교문화재 도난백서 증보판’을 2016년 발간한 것도 상당한 결실이었다.

이처럼 문화재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을 남기고 도난문화재자료를 성실하게 정리하고 활용하면 제자리를 떠난 불교문화재들을 하나하나 되찾을 수 있고 도난문화재 거래를 방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김동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조사활용2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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