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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낭자 선전은 강한 정신력 때문”…세계 여자골프 지형 바꾼 ‘원조 여제’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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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20 14:51:38 수정 : 2018-10-20 14: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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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前 리우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 1998년 7월 7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쾰러의 블랙울프런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최고 권위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 최종일. 이제 막 LPGA에 데뷔한 21살의 새내기 박세리는 4일 동안 72홀 경기를 펼쳤지만 동갑인 태국계 미국인 아마추어 제니 추아시리폰과 공동선두를 이뤄 연장에 돌입했다. 당시 연장은 지금과 달랐다. 한 라운드 18개홀을 다시 돌아야 했다. 체력도 정신력도 거의 한계에 이른 상황. 마지막 18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친 박세리의 티샷은 왼쪽으로 휘며 해저드에 빠지는 듯했다. 볼은 가까스로 턱에 걸렸지만 경사는 매우 가파르고 러프도 깊었다. 도저히 샷을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는 양말을 벗었고 검게 탄 종아리와 대조되는 하얀 발이 드러났다. 박세리는 거침없이 물속으로 들어가 트러블샷을 완성했고 두 홀을 더 돌아 20홀째에 6m 버디를 떨궈 한국선수 최초이자 최연소 우승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당시 모든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맨발샷은 세계여자골프의 지형을 바꿔 놓는 ‘위대한 몸짓’이 됐다. 이른 본 ‘세리 키즈’가 무럭무럭 성장했고 최근 10년 동안 한국 선수가 US오픈을 7차례나 제패하는 등 한국 선수의 LPGA 우승은 170승을 돌파했다. 지난해 박성현(25)을 포함해 신인왕에 오른 선수도 11명이다. 
세계여자골프를 ‘한국천하’로 만들어 놓은 박세리의 맨발샷이 어느덧 20년이 됐다. 그는 은퇴했지만 최근 끝난 8개국 국가대항전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명예조직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방송 해설위원 등으로 선수 때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세리의 요즘 호칭은 ‘박 감독’이다. 2016 리우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아 금메달을 따낸 뒤 자연스럽게 박 감독이 공식 호칭이 돼 버렸다. 그를 최근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만났다. 

박세리가 지난 10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2018 LPGA KEB하나은행챔피언십’ 갈라파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대회는 국내 유일의 LPGA 투어 정규 대회로 박세리는 2002년 초대 챔프에 올랐고 2016년 이 대회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LPGA KEB하나은행챔피언십 대회본부 제공
#모든 것을 바꾼 운명의 US오픈

20년 전 모습 그대로인 것 같은데 확실히 피부는 하얗게 바뀐 것 같다며 인사를 건넸다. “그죠? 제가 원래 피부가 하얗답니다. 모습은 20년이나 지났는데 그대로 일리가 있나요. 하하. 그때는 1년에 300일은 필드에 나가 있었으니 까맣게 탈 수밖에 없었죠. 은퇴 뒤 바쁘게 다녀도 햇볕 볼 일 없으니까 다시 하얀 피부로 돌아오네요. 요즘 선수들은 선크림을 열심히 바르던데 저는 피부에 묻고 끈적거리는 게 싫어서 안 발랐더니 더 까매졌죠.”

한참 뜨거운 7월에는 남자들도 18홀을 돌고 나면 녹초가 된다. 더구나 이미 4일 동안 경기했고 당시 코스는 선수들이 18홀을 마치면서 항복한다는 의미로 퍼터에 흰수건을 감고 들어왔을 정도로 공략하기 매우 어려운 골프장이었다고 한다. 체력적인 부담을 어떻게 견뎠을까. “일주일이 1년처럼 길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어요. 코스도 골프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을 정도였죠. 하지만 저는 루키였고 경험을 많이 쌓는다는 각오를 했기에 매 라운드 힘들었지만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아요. 더구나 US오픈은 선수를 그만둘 때까지 꼭 한 번 우승해 보고 싶을 정도로 꿈에 그리던 대회였어요. 기대감과 부담감이 뒤섞이면서 엄청난 압박을 느꼈어요. 연장전을 앞두고 1번홀부터 18번홀까지 머릿속에 코스별로 다 그리느라 한숨도 못잤을 정도니까요. 뭐 정신력으로 버틴 셈이죠.”

박 감독은 지금도 당시 맨발샷 장면을 볼 때마다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흥분된다. 20년 동안 끊임없이 TV 등에 나오는 모습이라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무슨 생각을 하며 양말을 벗어던졌을까. “꿈의 무대였기에 우승 열망이 매우 간절했던 것 같아요. 맨발샷은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죠. 성공 확률이 너무 희박했는데 정말 겁없이 도전한 거예요. ‘이런 샷도 경험해야 다음에 두번 다시 실수하지 않을 수 있다. 경험이 쌓여야 나중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뭐 그런 맘으로 도전했던 거죠. 제가 우승도 많이 했었지만 그때가 제 인생의 최고의 샷감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샷감을 그때 이후로는 다시 느끼지 못했답니다.”

박 감독은 너무 힘들어 다음 3일 뒤 열리는 제이미 파 크로거 클래식을 기권하려 했으나 대회 스폰서 측이 간곡히 요청해 출전했는데 2라운드 11언더파 61타로 한 라운드 최소타 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그해 7월에만 4개 대회에서 세 차례 우승하며 데뷔 첫해에 4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US오픈 우승 뒤 굉장히 많은 게 변했죠. US오픈에 우승하고 나니까 자신감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모든 샷이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되더라고요. 원래 공격적인 성향이지만 더 자신감 있게 공격적으로 샷을 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우승이 쌓이더군요.”

#슬럼프 극복하려면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이처럼 잘 나가던 박 감독이 2004년부터 슬럼프에 빠진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쳤는데도 자꾸 최면을 건 것 같아요. ‘나는 괜찮아. 안 지니까. 힘들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힘들어져’라고 주문을 외우며 여가시간 없이 계속했던 거죠. 기계도 계속 돌리면 어느 순간 녹슬어 기름질하거나 새것으로 갈아야 하죠. 심지어 사람인데 쉬지 않고 계속 연습하고 경기에 출전한 것은 정말 바보같은 짓이었어요. 어느날 한순간 모든 의욕이 없어지면서 싫어지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슬럼프는 1년반이나 이어졌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뒤에야 알게 됐다. 자신은 완벽주의자이고 관리를 너무나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최악으로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을 더 아끼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었어요. 훈련과 쉬는 시간을 잘 구분했어야 하는데 그것을 몰랐던 거죠. 나중 깨달았죠. 집, 친구, 지인이 있는데도 이들과 마음 편하게 커피 한 잔을 못했다는 사실을 말이죠.”

박 감독은 이런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 슬럼프일수록 뒤를 돌아보고 천천히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첫 슬럼프가 오면 운동선수에게는 진짜 내 삶의 모든 것이 몽땅 무너지는 것처럼 정신적인 타격이 정말 커요. 문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집착에 빠져 슬럼프를 극복하겠다며 더 열심히 하게 되는데 결국은 나를 아끼기보다 반대로 더 혹사시키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몸과 마음 모든 것을 다 잃게 돼요. 슬럼프 극복은 시간이 필요해요. 제일 좋은 처방전은 뒤로 돌아가서 잠시 모든 것을 잊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거죠. 내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답니다.” 

국가대항전인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명예조직위원장을 맡은 박세리 감독(가운데)이 7일 이 대회 첫 우승을 일군 한국팀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천=연합뉴스
#영광의 올림픽 감독, 그리고 UL 조직위원장 데뷔

2016 리우올림픽 얘기를 안 꺼낼 수가 없다. ‘골프여제’ 박인비(30)가 올림픽을 앞두고 손가락 부상을 당해 출전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박 감독은 대표팀 감독으로 ‘맏언니’ 리더십을 발휘하며 박인비의 금메달을 일궈냈다. “출전을 한다 안 한다 말이 많았고 출전을 결정한 뒤에도 힘들어 하는 인비의 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었죠. 더구나 골프 금메달은 영순위라고 여길 정도로 워낙 주변의 기대가 컸어요. 하지만 우승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에요. 이 때문에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선수들의 부담감은 정말 엄청났어요. 그래서 감독이 아닌 매니저처럼 편안하게 소통하는 데 주력했죠.”

리우올림픽에서 여자골프대표팀을 이끈 박세리 감독이 금메달을 따낸 박인비와 포옹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박 감독은 선수들 아침 식단부터 잠자리까지 최대한 편안하게 대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만 만들어주면 최상의 컨디션 속에 최선을 다할 것으로 믿었다. 또 골프는 개인 경기이지만 한 팀으로 여기고 서로 의지하면 분위기가 완전히 좋아질 수 있다고 여겼는데 다행히 소통이 수월하게 됐고 선수들이 편하게 잘 따라줘서 금메달로 이어졌단다. 박 감독은 박인비의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눈물을 터뜨렸다. “사실 금은동 다 따는 줄 알았어요. 선수들이 너무 고마웠죠. 특히 인비가 마지막 퍼팅을 하고 두 팔을 들었을 때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대에 못 미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금메달 땄기에 그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죠. 그 순간 제가 더 울컥했어요. 선수는 울지 않는데 저만 더 많이 울어서 나중에 제가 좀 민망했죠. 하하.”

박 감독은 이달 초 인천에서 열린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명예 조직위원장을 맡았는데 성공적인 대회를 치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2년마다 8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들만 출전하는 대회라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답니다. 준비과정이 매우 어렵고 힘들었지만 골프팬들의 뜨거운 관심과 한국팀의 우승으로 보상을 다 받았네요. 특히 UL과 LPGA 측은 한국 골프팬들의 열정과 대회운영, 선수들의 실력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다시 한 번 한국에서 대회를 하고 싶다고 전했으니 대성공이겠죠. 저 또한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하는 계기가 됐답니다.”
#한국 선수들 선전은 강한 정신력 덕분

골프는 보통 멘털 게임이라 한다. 그만큼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중요하다. 박 감독은 한국 여자골프가 화수분처럼 계속 스타 선수를 배출하는 원동력은 강한 정신력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외국처럼 공원에 나가서 운동하듯 코스에서 연습을 충분히 할 여건이 전혀 안 됩니다. 이런 환경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을 끊임없이 배출하는 것은 정말 대단합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선수들의 정신력은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골프는 물론 체력도 중요하지만 정신력이 60∼70%는 차지하는데 멘탈이 강하다 보니 중요한 순간에 외국 선수들보다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골프 선수로서의 모든 것을 이룬 박 감독. 그는 요즘 무슨 꿈을 꿀까. “별거 없어요. 저는 운동선수 출신이잖아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죠. 지금처럼 후배들을 위해서 골프뿐만 아니라 운동선수들이 최적의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계속 발전시켜서 후배들의 기량 향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답니다. 그거면 충분하죠 뭐. 다만 혼자서는 힘드니 많이 도와 주세요.”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박세리 감독은 …

△1977년 대전 출생 △금성여고 △숙명여대 정치행정학 석사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명예조직위원장 △2016 리우올림픽 여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 △2007년 아시아 선수 최초 LPGA 명예의 전당 입회 △2007년 KLPGA 명예의 전당 입회 △2003년 시즌 최저타수상 수상 △1998년 LPGA US오픈 한국인 최초·최연소 우승·신인상 △LPGA 통산 25승(한국인 LPGA 투어 최다승 기록)·메이저 5승 △KLPGA 투어 통산 14승 △1996년 KLPGA 투어 신인상·상금왕 △통산 상금 1258만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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