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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상처 안고 北 고아 품은 폴란드 선생님들에 감명”

입력 : 2018-10-18 21:15:07 수정 : 2018-10-18 21: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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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폴란드로 간 아이들’ 추상미 감독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김일성은 이듬해 전쟁고아들을 모아 동유럽 공산국에 보냈다. 보살핌 속에서 공산주의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발생한 전쟁고아는 10만명으로 추산됐다. 북한 고아는 5만명, 그중 1500명이 폴란드로 갔다. 아이들 몸의 기생충을 역학조사한 결과 출신지는 북한뿐 아니라 남한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전선이 남쪽으로 내려왔을 당시 북한군이 전쟁고아들을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폴란드 남서부 시골 마을 프와코비체의 비밀 시설에서 생활했고, 8년 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추상미는 4년 전 우연히 접한 폴란드의 북한 고아 이야기에 빠지게 됐다. 영화로 제작하기 위해 2년 동안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2016년 인터뷰를 위해 폴란드로 떠났던 그는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먼저 들고 찾아왔다.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추 감독을 만났다.

“원래는 다큐멘터리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죠. 하지만 폴란드에서 양육원 선생님들을 만난 뒤 지금 이분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감독으로 관객을 찾는 추상미는 “자신들의 상처로 같은 상처를 가진 북한 고아들을 보듬은 폴란드 양육교사들의 진심을 접하고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커넥트픽쳐스 제공
추 감독은 폴란드 공영방송이 2006년에 제작한 다큐멘터리 ‘김귀덕’을 접했다. ‘김귀덕, 13년의 생을 살았고, 1955년 9월 20일 세상을 떠났다’는 폴란드의 한 공동묘지 묘비를 추적해 북한 고아 이야기를 밝혀낸 것이었다. “인터뷰에 등장한 폴란드 양육교사들이 눈물짓는 모습이 이상하고 궁금했어요. 보고 싶을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감정이 느껴졌거든요. ‘왜 이렇게까지 그리워하고 눈물지을까, 65년 전 일인데….’ 그 감정의 근원을 알고 싶었습니다.”

프와코비체는 마을 전체가 하나의 양육원이었다. 폴란드도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형제의 나라’에서 온 전쟁고아들을 위해 양질의 식사와 의료, 교육을 제공했다. 교사를 비롯해 요리사, 청소부, 의사 등 직원만 600여명에 달했다. 특히 그중 절반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가족을 잃거나 고아가 된 빈민 출신이었고, 갓 교사 자격증을 딴 열정적인 20, 30대 청년들이었다. 어린 시절 자신들과 비슷한 상처를 안고 있는 북한 고아들을 마음으로 품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다큐 ‘폴란드로 간 아이들’
“제가 폴란드 선생님들을 조명한 이유는 그분들이 자신의 역사적, 개인적 상처를 다른 민족의 아이들을 품는 데 선하게 사용했다는 점에 감명받아서예요. 그리고 같은 상처를 가진 남과 북도 서로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1959년, 희귀병으로 숨진 여자아이 김귀덕을 제외한 아이들 전원이 북한으로 송환됐다. 아이들은 교사들에게 열심히 편지를 썼다.

“저는 언젠가 꼭 폴란드에 다시 가게 될 거라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가끔 폴란드어를 중얼거립니다. 계속 편지 쓸게요. 마마를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2년 뒤 북한에서 오던 편지는 일제히 끊겼다. 폴란드 양육교사들은 더는 아이들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영화 말미 유제프 보로비에츠 당시 양육원 원장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한다. “그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추 감독은 “이 말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추 감독은 2009년 드라마 이후 연기활동이 뜸했고, 두 차례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그사이 육아에 집중하며 산후우울증을 앓았다. 그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모성’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분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성’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옳고 그름만을 따지는 ‘정의’는 자칫 사람을 메마르게 할 수 있지만, 모성이나 연민은 옳고 그름과 상관없거든요. 이 사회에 그런 마음이 많이 녹아들어 서로를 보듬기를 바라서, 저는 앞으로도 모성에 대해 끝없이 탐구하게 될 것 같네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31일 개봉한다. 이를 토대로 한 극영화 ‘그루터기들’은 이르면 내년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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