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우울증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영원한 청춘은 없고 끝자락은 노인”/ 인생 의미·삶·죽음에 대한 철학 담겨 “노인답게 고고한 도락을 즐기며 삶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그리할 에너지를 무엇에서 어떻게 얻는가. 노인에게도 성적인 사생활이 있을 수 있는가. 소외로 인한 노인성 우울증과 고독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추한 죽음과 아름다운 죽음은 어떤 모양새인가. 죽음을 극복한다는 것과 초월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소설가 한승원(79)이 노년의 사랑과 죽음에 관해 성찰한 장편소설을 펴냈다. ‘도깨비와 춤을’(위즈덤하우스)이 그것인데, 작가 자신의 분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노년의 삶을 돌아보는 형식이다. 현실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노년의 행복 찾기에 관한 판타지에 가깝지만, 욕망에 대한 솔직한 태도와 죽음을 맞이하는 철학이 깊다.
북을 잡고 노래를 부르는 근년의 한승원. 그의 예술적 광기를 부추기는 분신인 ‘도깨비’는 여전히 젊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음유시인 한승원의 눈빛이 결핍으로 가득한 이유는 아내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상실의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다시 생기를 회복하고 생의 마지막을 향해 어떤 자세로 나아가는지, 소설가 한승원에게 내내 설명하는 과정이 이 장편의 중심축이다. 실제로 소설가 한승원은 시집을 6권이나 상재한 시인이기도 하다. 결국 자신의 욕망을 분신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토로하는 셈이다. 그 분신은 수시로 한승원이 썼던 시를 인용한다.
1990년대의 젊은 한승원 |
그는 “남녀 간에 깊이 사랑한다는 것은 깜깜한 허무의 바다를 외로운 등불 하나 밝히고 건너가기와 다름없는 거”라면서 “서로의 몸에서 신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야합이며, 신성한 사랑 행위는 서로를 위안하고 치유하는 구원이고 신의 뜻”이라고 설파한다. 노년에도 몸으로 사랑을 나누는 황홀경이 외설스럽지 않게 시처럼 흐른다.
현실의 소설가 한승원은 “노인은 건조하게 살다가 막판에 고려장이 되듯 어두운 곳에 유폐됐다가 폐기처분돼야 하고, 다만 죽음을 피동적으로 기다리는 존재여야 하는가”라고 묻고, “영원한 청춘은 없고 이 책을 손에 든 당신도 당신 삶의 끝자락에서 노인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자답한다. 그는 “이 소설은 나의 참모습 찾기와 다름없다”면서 “글을 쓰는 일은 우주의 율동, 자연의 섭리 혹은 신의 뜻을 깊이 읽어 독자들에게 누설하는 것, 천기누설일 터”라고 후기에 썼다. 이번 장편은 팔순에 이른 소설가 한승원이 작심하고 쓴 ‘실버 판타지’라 할 만하다. 노인을 위한 문학은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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