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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인력 체계적 양성 필요… 입법·재정 지원 뒷받침돼야”

입력 : 2018-10-18 05:30:00 수정 : 2018-10-17 20: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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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피해자 대면 조정위원 역량 중요/심화교육 통해 봉사자 아닌 전문가 키워야/독립 운영하되 결과는 기소·양형 반영/사법협력 바탕… 정부·국회가 제도화를/
어렸을 때부터 갈등 해결법 익히도록/학교 교과과정에 ‘회복적 정의’넣어야
2000년대 들어 국내에 소개된 ‘회복적 정의’는 가해자에게는 진심 어린 반성을, 피해자에게는 진정한 피해 회복을 이끈다. 이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최대한 범죄 발생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사회에 성공적으로 복귀하도록 돕는다.

국내 형사사법 기관들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 위주의 ‘응보적 정의’에서 벗어나 관계 회복을 시도하는 회복적 정의에 점차 관심을 쏟고 있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경찰과 법원에서는 시범단계에 그쳤을 뿐 제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유일하게 제도화한 검찰의 ‘형사조정제도’는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회복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또 검찰 형사조정제도가 회복적 정의 이념을 제대로 구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현장에서 만난 회복적 정의 전문가들에게 답을 구했다. 

◆“기존 조정위원 심화교육 통해 전문가 길러야”

전문가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면하는 조정위원들이 회복적 정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복적 정의 프로세스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제대로 구현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얘기다.

조균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정위원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회복적 정의 이념을 잘 알고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일부 민간단체가 교육을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회복적 정의의 의미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조정위원이 드물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형사조정위원도 대부분 은퇴한 60대 이상이라서 연륜을 내세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며 “(현장에서 활동하는 조정위원들을 대상으로) 회복적 정의 전문가들을 많이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영곤(전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도 “회복적 정의 활성화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운용하는 사람”이라며 “봉사자가 아니라 전문가가 되도록 회복적 정의 심화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캐서린 한 한국비폭력대화센터 대표는 검찰 등에서 독립된 외부기관이 기관별로 흩어진 조정위원을 통합·관리하며 교육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대표는 “조정위원 교육은 일회성 강연 형태가 아니라 단일한 별도 기관을 통해 2∼3년 체계적으로 진행해 그들이 현장에서 회복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검찰이나 법원 등 특정 기관 소속으로 운영하면 그 기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이 기관들로부터 독립해 운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회와 정부 차원에서 입법·재정 지원 필요”

사법기관 내 일부 구성원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58개 지방검찰청에서 이뤄지는 검찰 형사조정제도는 2010년 국회에서 통과된 범죄피해자보호법에 명문화하면서 제도로 정착한 회복적 정의 프로세스다.

반면에 법원 내 민사·소년법상 화해권고제도 조정위원은 물론 검찰 형사조정위원 관련 별도 예산이 없다. 각각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공탁지원금에서 충당한다. 한정된 예산이라서 다른 예산을 줄여야 시범사업이라도 할 수 있다.

2012년 ‘회복을 위한 여정’ 등 교정시설 내 다양한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담당한 김영식 군산교도소장은 “전문 인력이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다”며 “각 사법기관 자체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중앙부처와 지자체, 국회 관심을 통해 재정·인력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캐나다에선 중앙부처 공공안전부 내 부서가 따로 있어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연구도 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고 전했다.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통한 피해자 회복과 범죄 감소로 사회가 이익을 본다는 국가 차원의 인식이 필요하다. 정준영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는 “결국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이어 “판사는 재판 업무를 하고 전통적인 사법 위주로 할 수밖에 없어 판사가 중심이 되는 건 한계가 있다”면서 “정부가 관심을 갖고 법원과 경찰, 검찰, 시민단체가 협력하고 입법적 지원과 제도적 예산이 다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강원경찰청의 ‘위드유’(With You) 도입에 실무를 맡은 백두용 강원경찰청 여성보호계장은 “본래 주어진 업무 외적으로 위드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며 “가해자와 피해자 면담 등 당사자 간 관계회복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개인 시간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정기관 아닌 모든 사법기관 협력 필요”

전문가들은 특정 사법기관이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을 주도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회복적 정의가 아직 활성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도권을 둘러싸고 경찰과 검찰, 법원이 서로 견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013년 인천지법 부천지원에서 진행된 회복적 정의 시범사업도 인천지검 부천지청이 선고 기일 연기에 협조했기에 가능했다.

정 수석부장판사는 “법원 등 특정 사법기관이 회복적 정의를 다 하겠다고 하면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며 “법원과 경찰, 검찰, 교정단계에 모두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사법기관이 회복적 정의 프로세스 결과를 검경은 기소과정에, 법원은 양형에, 교정시설은 가석방 심사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도 “회복적 정의 프로세스가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밑에서 열풍이 불어야 한다”며 “(특정 사법기관 구성원이 아닌) 판사와 검사, 경찰, 교도관, 학자 등 다양한 사법기관 구성원들이 각자 영역에서 관심을 갖고 협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든 사법기관이 협력해 회복적 정의 프로세스를 통해 피해자가 진정한 피해 회복을 이룬 사례를 알리는 것도 응보적 감정만을 추구하는 인식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김 소장은 “모든 사법기관이 협력해 회복적 정의의 좋은 사례를 많이 발굴해 널리 알려야 한다”며 “그래야 정책 입안자와 시민이 회복적 정의 이념에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교·마을 등 민간 차원에서 노력도”

사법체계 외 영역에서 회복적 정의 프로세스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사법기관의 개별적인 노력과 함께 학교와 마을 등 민간 차원에서 회복적 정의를 보급해 응보적 감정을 회복적 정의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이 2014년부터 학생들이 학교 구성원 간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도입했으나 전국으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한 대표는 학교 교육 속에 회복적 정의가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들은 (응보적 감정이 강한) 성인과 달리 금방 배우고 이해한다”며 “중·고교 학생들이 회복적 정의를 경험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 사회 구성원으로 거기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도 “학교폭력 문제 해결책으로 회복적 정의 운동이 확산돼야 한다”며 “학교에서 이를 경험한 이들이 많이 나와야 형사사법 체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마을단계에서도 회복적 정의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지역단위로 회복갈등 위원회 등을 만들어 상대방을 고소하기 전에 그곳을 거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백 계장도 “회복적 정의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하워드 제어 교수의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의 원제는 ‘Changing Lenses’(시야를 바꾸자)”라며 “갈등으로 인해 가·피해자가 생겼을 때 학교와 가정에서 회복적 정의 프로세스를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염유섭·김범수·박진영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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