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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의음식문화여행] 잘 견뎌온 당신, 맛있는 초밥을 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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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16 22:00:18 수정 : 2018-10-16 22: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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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를 낼 것인가 말 것인가. 그와 계속 만날 것인가, 헤어질 것인가. 오늘도 이 절박한 ○× 퀴즈 앞에서 밤잠 설치는 당신에게 권한다. 생선초밥 한 점.

학교를 졸업하고 조직에 들어왔다. 그 후 내 호흡의 대부분은 헐떡거림이었다. 교감신경계는 스트레스와 공포에 늘 너덜너덜거렸다. 심장 주위 근육은 빨라진 박동수에 숨이 차오르곤 했다. 어떻게든 조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상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끝내 목구멍 속으로 삼키며. 회식 때 불판 위 고기를 열심히 구워가며. 그러다가도 ‘그냥 지구에서 뛰어내려 버려?’ 하고 마음을 먹는 순간, ATM 기계 앞에서 통장 잔고는 늘 나를 좌절시킨다. 어느새 세 자리 숫자로 줄어있는 게 아닌가. 그러다보면 어느새 월급날은 변심한 애인 돌아오듯 다시 찾아와 있다. 사는 것은 잔인할 만큼 반복적인 것이다. 때려쳐, 말아 할 때 심각하게 히스테릭해졌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보려 할 때 회전초밥집 문을 열어 젖힌다.

‘들개이빨’의 웹툰 ‘먹는 존재 - 회전초밥 편’은 지옥의 프로젝트를 끝낸 ‘유양’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드디어 월급이 들어왔다. ‘유양’은 자축하는 심정으로 후후회전초밥집 문을 열어 젖힌다. 눈앞에 ‘열씸히 일한 당신, 먹을 자격 있어’ 하며 콘테이너 위 초밥접시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촛물로 지은 새콤달달한 밥알에다 알싸하게 콧날을 톡 쏘고 도망가는 와사비, 씹을수록 고소해지는 생선살. 한 입 씹어 삼킬 때 쯤엔 지상의 지복에 도달한 듯한 쾌감이 입 안 가득 넘친다.

마구마구 입 속으로 ‘투하’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유양’은 알게 된다. 돌아가는 초밥접시 위에도 계급이 있다는 걸. 회색의 1000원짜리 접시, 연두색의 1500원짜리 접시. 빨강의 2500원짜리 접시, 황금색의 5000원짜리 접시. 먹고 포개놓은 접시는 유양의 얼굴을 점점 가리며 올라가지만 끝내 황금색 접시를 집을 수 없다. ‘아, 여기서도 조직이 있었다니.’ 기껏 자축한다면서 싼 접시만 골라 먹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큰맘 먹고 5000원짜리 참치대뱃살을 집어오는 유양. 입 속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보는 유양. “맛있어” 환각 같은 즐거운 웃음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퍼지는 것만 같다. “그래, 인생 끝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심각해질 필요 없잖아. 참치뱃살 정도는 먹을 자격 있어. 기껏 거대한 참치의 조그만 살점 하나인데.” 세상이 당신의 뺨을 찰싹 하고 싸대기를 갈겨올 때, 조직이 등 돌리며 떠밀어내려고만 할 때, 입 안 가득 혀의 모든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생선초밥이 당신을 부른다.

대학에선 다시 구조조정 소식이 들려온다. 문득 가을 한가운데. 새콤달콤 고소한 콧날 찡한 회초밥 한 알 오물거려본다. 애써 자축하며 중얼거려본다. “잘해왔어, 잘 견뎌왔어.”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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