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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무의미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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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15 21:13:57 수정 : 2018-10-15 21: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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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과 희망 줄어든 ‘무민세대’/‘소확행’ 반어적 태도, 새 숙제 던져
“한 마리의 참새가 떨어지는 것에도 특별한 신의 뜻이 있다”고 한 이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였다. ‘햄릿’의 이 구절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인간은 오랫동안 의미 지향의 존재였다. 어떤 사태나 사물 앞에서 멈춰 서게 된다면 그 안에 깃든 의미 때문이다. 꽃이 피어나도 그 앞에 멈춰 서 바라보고 발견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

가을 단풍의 황홀경도 마찬가지다. 의미를 발견하고 심화하기 위해 멈춰 성찰하는 것, 그 의미에의 의지가 곧 삶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그것을 통해 삶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을 발견하기도 하고 목적이 이끄는 삶의 희망을 알기도 했다.

“산다는 것, 그것이 예술입니다”라고 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한때 삶에 대한 회의가 깊었던 시인이다. 그러다 그는 삶을 사랑하는 길로 접어들며 존재 탐구의 시인이 된다. ‘피렌체 일기’에서 그는 “이제 나는 어찌 되었든 삶을 사랑할 것이다. 그 삶이 풍요롭건 가난하건, 광활하건 협소하건 내게 주어진 양만큼 삶을 부드럽게 사랑하고 내가 가진 모든 가능성이 내 내면 깊은 곳에서 성숙하도록 만들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행복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목적의식이 있는 일을 통해 스스로 일하기 시작하는 힘을 일깨울 때 느껴지는 이런 고단한 행복을’ 발견하고 거기서 의미에의 의지를 추동했다. 삶 자체가 힘든 것이기에, 더 힘든 일도 덜 힘든 일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힘든 일을 사랑하는 것이 삶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꼭 그런 의무를 질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가령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박민규가 내세운 야구미학도 그런 경우다. “프로는 끝없이 자신을 개발한다. 프로는 능력으로 말한다. 프로는 잠들지 않는다. 프로만이 살아남는다”며 당연히 우승을 목표로 사투를 벌이는 다른 팀과는 달리 삼미 슈퍼스타즈 팀은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야구처럼 소설의 주인공도 힘들지 않게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먹으며 살겠다고 말한다. 그는 한때 가정을 버려야 직장에서 살아남는다는 약육강식의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가정과 직장 모두를 잃게 된 인물이다. 이 삼미 팬은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라고,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2003년에 박민규가 그린 이 캐릭터는 이른바 ‘무민세대’의 초기 형상이었던 것 같다. 무(無)와 의미(mean)를 합성해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는 세대’를 일컫는 무민세대에 대해 우리는 결코 쉽게 말할 수 없다. 가능성과 희망이 많이 줄어든 상황, 좋은 일자리는 별로 없고, 아무리 ‘노오력’해도 취직할 가능성도 희박하고, 설령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했다고 하더라도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 많고, 그러니 대충 살며 ‘소확행’을 챙기자는 반어적 태도에서 새로운 인생의 숙제를 발견한다. 견딜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내려놓고 가볍게 탈주하려는 무민세대 앞에서 우리는 오래 멈춰 서게 된다. 그 무의미의 의미를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성찰해야 하겠기에 말이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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