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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는 그날의 고통… 외출도, 잠들 수도 없다 [범죄, 처벌만이 끝 아니다]

[1회 범죄 그 후…남겨진 피해자들] 이별범죄가 앗아간 행복/ 사귀던 남자가 던진 불이 붙은 페트병/ 온 집안 태워 언니 숨지고 동생 3도 화상/ 병원 오가며 수술·치료비만 수억원 들어/ 기초생활자 전락…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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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07 18:54:36      수정 : 2018-10-07 23:08:12
2000년대 들어 국내에 소개된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다. 이는 범죄 피해자를 최대한 ‘범죄 발생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려면 가해자의 사죄, 육체적·심리적 상처 치유 등이 선행돼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형사사법 시스템은 가해자 처벌에만 신경 쓰고 피해자는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세계일보는 ‘회복적 정의’를 구현할 방안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양산 아파트 밧줄 절단 사건’ 유족 권모씨 같은 사례는 우리 주변에 수없이 많다. 대부분의 범죄피해자들은 범죄 후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사회의 관심에서 잊히고 방치된다.

세계일보는 양산 사건처럼 사회적 충격이 컸던 10건의 대표적 강력범죄사건 피해자를 만나 심층면접했다.

그들은 범죄 이전과 너무나 달라진 삶을 어렵게 이어가고 있었다. 가해자는 이미 복역을 마치고 풀려났으나 피해자는 범죄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기나긴 화상치료 병원비로 가족이 모두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고, 충격과 스트레스로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이 일어난 사례도 있었다.

이들은 무엇보다 가해자한테서 사과 한마디조차 듣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소외된 범죄피해자와 가해자가 문제 해결 전면에 나서 관계를 회복하는 ‘회복적 정의’가 필요한 이유다. 범죄에 가담하거나 방조하지 않았지만,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공동체가 나서 피해자가 사회와 일상생활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번의 사과도 받지 못했는데….”

의류 디자이너를 꿈꾸던 박모(30·여)씨는 친언니를 앗아가고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 그날을 잊지 못한다. 2014년 7월13일 오전 4시15분 중랑구 한 주택에 사는 박씨는 언니와 같은 방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날이 더워 반쯤 열어둔 창문 틈새로 갑자기 불이 붙은 페트병이 날아 들어왔고 잠시 뒤 온 집안이 화염에 뒤덮였다.
 

어떻게 집 밖으로 나왔는지 기억도 안 났다. 어머니는 본 듯도 한데 언니 모습이 없었다. 비명을 지르며 언니를 구하러 불바다 속으로 다시 들어가려 하는 어머니 뒷모습이 흐릿해지며 박씨는 정신을 잃었다. 중환자실에서 눈을 떠보니 살갗이 송두리째 뜯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언니는 어디 있어요, 언니는 괜찮아요?” 간호사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신체 70%에 3도화상을 입은 박씨도 3개월 동안 사경을 헤맸다.

박씨가 그 사람, 정모(35)씨를 만난 건 사건이 벌어진 그해 초였다. 둘은 연인 사이가 됐지만 정씨는 유독 집착이 강했고 스토커 같은 행각을 보였다. 박씨 휴대전화를 빼앗고 일도 그만두게 했으며 친구와도 못 만나게 했다. 어쩌다 정씨가 불같이 화를 낼 때면 꼭 다른 사람 같았다.

정씨의 방화는 이별을 고한 박씨에 대한 보복이었다. 경찰에 자수한 정씨는 살인과 방화죄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하지만 박씨는 정씨는 물론 그 가족 누구한테도 진심어린 사과를 받지 못했다.

사건 발생 후 1년2개월 만에 퇴원한 박씨는 건강 악화로 2개월 만에 다시 병원 신세를 졌다. 그렇게 4년간 집과 병원만 오갔다. 그동안 받은 수술 횟수는 30여 차례, 치료비만 3억2000만원 이상이다. 화상 여파로 박씨는 왼팔이 오그라들었다. 한동안 일어서 걷지도 못했다. 많은 비용이 드는 재활치료는 언감생심이었다. 9개월 넘게 스스로 재활훈련을 한 끝에 기적처럼 겨우 걸을 수 있게 됐다.

박씨는 지금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에어컨을 켜도 피부 깊숙이 파고드는 작열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눈을 감으면 화마의 환영이 떠오른다. 장시간 외출도 할 수 없다. 자외선에 이식받은 피부가 손상을 입으면 다시 수술해야 한다.

살림이 힘들어져 박씨 모녀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화상 치료에 앞으로 얼마나 돈이 더 들지 모른다.

“그 사람이 사형을 받을 수 있을까요? 너무나 억울해요, 어떤 사과도 받지 못했다는 게….”

화상으로 갈라진 목덜미 사이로 박씨의 눈물이 흘렀다.

◆충격으로 알츠하이머 증상에 시달려

연쇄강간과 강도 행각으로 중랑구 일대를 공포에 떨게 한 일명 ‘면목동 발바리’가 이모(60·여)씨 집에 침입한 건 2010년 7월2일 오전 3시45분이었다. 잠자던 이씨는 불현듯 들리는 딸의 비명 소리를 듣고 눈이 번쩍 떠졌다. 고개를 돌리니 옆에서 자고 있던 딸을 깔고 앉아 흉기를 들고 있는 남자 조모(35)씨가 보였다.

순간 딸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씨는 그대로 조씨한테 달려들었다. 그러나 조씨가 휘두른 흉기에 가슴과 복부 옆구리 등을 찔렸다. 이씨는 곧바로 딸도 흉기에 수차례 찔려 쓰러지는 모습을 봐야만 했다. 비명을 듣고 옆방에서 자고 있던 아들 권씨가 뛰어나와 조씨와 격투를 벌였다. 아들도 허벅지를 수차례 베였지만 조씨를 일단 집 밖으로 몰아냈다. 조씨가 달아난 뒤 이씨와 딸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씨 부상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하대정맥 파열, 횡격막 파열, 폐 자상…. 조씨가 할퀴고 간 상처는 컸다. 딸은 신장 한 쪽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됐다. 두 달 가까이 수술과 치료를 받은 끝에 이씨는 퇴원할 수 있었다.

‘이웃 주민이 조금만 일찍 신고했어도 이 정도로 다쳤을까.’ 이런 생각이 이씨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돌았다. 이씨는 비명과 다툼 소리에 함께 잠에서 깬 이웃 주민이 창문을 통해 범행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던 것을 잊지 못한다. 도움은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서운함이 들었다.

“○○엄마, 내가 사실은 (범인이) 담을 넘어 ○○이네 집에 들어가는 걸 봤어.” 뒷집의 할머니가 퇴원한 이씨에게 위로랍시고 던진 말이다. ‘그럼 왜 그때 신고하지 않았어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다 그냥 삼켜졌다.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무책임한 위로는 잊히지 않는다.

사건 이후 이씨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사교성 좋던 성격은 어두워졌다. 사건 현장이었던 집에 들어갈 때마다 조씨의 환영에 시달린다.

명치부터 배꼽까지 이어진 폭 1㎝의 선명한 흉터는 지워지지 않았다. 사건 당시 충격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뇌 손상으로 이어지면서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도 나타났다. 기억력이 떨어지고 비슷한 말을 반복하기 일쑤다.

조씨는 한 달 만인 2010년 8월 경찰에 붙잡혔다. 법정최고형인 징역 22년6개월이 선고됐다고 이씨는 전해들었다. 그는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고 싶지 않다. 그저 ‘범인이 내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웃 주민이 서둘러 경찰에 신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만 머릿속에 떠오른다고 했다.

김범수·박진영·배민영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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