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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역경 딛고 혁명 이어간 中 전쟁영웅

입력 : 2018-10-06 03:00:00 수정 : 2018-10-05 19: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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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대장정·국공내전 승리 견인 / 한국전쟁 판세 뒤집은 전략가 / 마오쩌둥에 직언 했다가 반당 몰려 / 문화혁명 때 홍위병에 온갖 고초 / 마오쩌둥에 쓴 편지·자술서 등 담아
펑더화이 지음/이영민 옮김/앨피/1만8000원
나, 펑더화이에 대하여 쓰다/펑더화이 지음/이영민 옮김/앨피/1만8000원


중국공산당 대장정과 국공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한국전쟁 판세를 뒤집은 전략가 펑더화이 자서전이 국내 출간되었다. 그는 1950년대 후반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중국 경제가 파탄나고 수천만 명이 아사하는 참사를 겪는 상황에서, 마오쩌둥에게 직언했다가 반당으로 몰려 국방부장에서 해임된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벌어지면서 어린 홍위병들에게 붙잡혀 베이징으로 압송되어 온갖 고초를 겪는다.

이 자서전은 억울한 누명을 쓴 직후인 1962년 마오쩌둥에게 쓴 8만 자의 편지와 이후 문화대혁명 기간 손자뻘 홍위병들에게 둘러싸여 눈물로 작성한 자술서 등이 담겨 있다. 진정한 혁명가이며 전쟁영웅 펑더화이라는 인간이 처절한 역경을 딛고 민중 혁명을 어떻게 이어갔는지를 보여 준다.

문화대혁명에서 악명을 떨친 홍위병들의 심문은 모욕적이었다. 펑더화이는 혁명가 이전에 인간으로서 기본 자질마저 의심받았다. 그러나 심문조의 악랄한 모욕과 치욕적인 강압도 펑더화이라는 인간이 지닌 기개는 꺾지 못했다. 펑더화이는 안타까울 정도로 담백하고 강직한 사람이었다. 펑더화이 사망 4년 후인 1978년 중국공산당은 펑더화이에게 씌워진 누명을 벗기고 정중한 추도회를 거행했다.

펑더화이는 군사 업적 면에서 어느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탁월한 이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참된 군인으로 지금까지도 중국 인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명성과 중국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을 이끌고 내려온 인물, 북진통일을 방해하고 1·4후퇴로 수많은 이산가족을 만든 장본인 정도로 알려져 있다. 실제 그는 중국군 총사령관으로 북한의 남일, 미국의 클라크와 함께 휴전협정을 조인한 당사자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참전은 그의 화려한 군사 업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그의 이름은 중국공산당사는 물론이고 중국 현대사에 넓고 깊게 새겨져 있다.
김일성(오른쪽)과 펑더화이가 한 기념식에 참석해 건배하면서 웃고 있으나, 실제 두 사람은 전시 중에 만나기만 하면 말싸움을 벌이곤 했다.

실제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에서 미군의 참패는 잘 알려 있지 않다. 이렇다 할 화력을 갖지 못했던 펑더화이는 올가미 작전으로 미 10군단을 궤멸 직전까지 몰고갔다. 낮에는 울창한 개마고원 숲속에 숨어 있다가 야간에만 남하를 거듭해 장진호 일대를 포위했다. 압록강 혜산진까지 진격한 국군과 미군은 펑더화이의 올가미에 걸려 궤멸될 뻔했다.

비극적인 흥남철수작전은 펑더화이의 전략에 따른 결과였다. 미국에 ‘초신전투(combat of Chosin)’란 이름의 참전군인 모임이 있다.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남은 미군 장병들이 만든 모임으로, 매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 당시 활로를 뚫은 미해병 1사단 병사 중 살아남은 자가 10명 중 1명이었다. 초신은 장진의 일본식 발음이다.

마오쩌둥은 애초 한국전쟁에 린뱌오를 보내려 했다. 그러나 “기관총으로 대포를 이길 수 없다”는 린뱌오의 거절에 펑더화이를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펑더화이와 김일성은 앙숙이었다. 서울을 점령한 중국인민지원군이 더 이상 남하를 거부하고 철수를 결정했을 때, 김일성은 펑더화이 집무실에 달려와 멱살을 잡고 집기를 때려부수며 온갖 욕설을 퍼부어댔다. 서로 권총을 빼들기 일보 직전이었다.

책에는 펑더화이가 한국전쟁 참전을 반대한 이유와 당시 군사 대결상, 국제 정세와 관련된 미공개 자료들이 담겨 있다. 중국현대사에서 펑더화이는 유방의 한신이나 유비의 관우, 송나라 충신 악비에 맞먹는 전략가이자 애국자로 평가받는다. 미군과 싸워 승리한 인물이어서 요즘 한창 영화와 TV드라마 인물로 형상화되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등에 영향받은 결과로 풀이된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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