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제작에 등장하는 부부는 ‘기만과 냉소로 아슬아슬하게 관계를 지탱해가는’, 무늬만 부부인 ‘쇼윈도 부부’이다. 아내는 낯선 청년으로부터 남편의 외도 사실을 듣는다. 그 청년의 여자친구와 남편이 만난다는 사실에 접한 아내는 청년을 만나 굳이 그 여자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역으로 청년과 외도를 벌인다. 아내는 계피 향이 다 날아가버린 막대로 커피를 휘저으면서 청년과 대화를 나눈다.
“그냥 스틱으로 쓰는 거야. 에스프레소와 우유 거품이 골고루 섞이도록… 향이 날아가버려도 이렇게 쓸모는 있어. 폼 잡고 휘저으면 멋있기도 하잖아? 커피라는 게 꼭 맛으로만 먹는 게 아니니까.”
“이 결혼처럼요? 향기가 날아가버렸지만 겉으로는 멀쩡한… 이 결혼도 처음엔 향기로웠겠죠? 사랑해서 결혼했나요?”
두 사람의 이 대화에 표제작의 메시지가 응축돼있다. 이른바 ‘디스플레이 커플’ 혹은 ‘위장 부부’의 스산한 삶이다. 이들은 왜 이처럼 난간을 걷는 듯한 위태로운 관계를 지속해나가는 걸까. 남편이 여자를 집 안으로 불러들여 외도를 벌이는 현장을 아내가 발견했을 때, 남편은 “지금 저 안방에는 아무도 없어. 그렇게 믿으면 현실이 되고, 믿지 않으면 모든 게 끝장”이라고 말했다. 아내는 판도라 상자를 덮었고, 남편이 청년과 자신의 관계를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으면 현실이 되고, 믿지 않으면 모든 게 끝장”이라고 남편이 던졌던 주사위를 되돌려준다. 이들은 나란히 판도라의 상자를 닫고 돌아선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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