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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냉소 가득한 사랑과 결혼의 증강현실

입력 : 2018-10-05 03:00:00 수정 : 2018-10-04 20:4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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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주, 소설가 등단 23년만에/두번째 소설집 ‘시나몬 스틱’ 내
계피 막대는 계피 향을 내고 싶을 때 가루를 넣으면 맛이 텁텁해지는 걸 피하기 위해 활용하는 용품이다. 이른바 ‘시나몬 스틱’이 그것인데, 소설가 고은주(51·사진)가 등단 23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소설집 표제이기도 하다.

표제작에 등장하는 부부는 ‘기만과 냉소로 아슬아슬하게 관계를 지탱해가는’, 무늬만 부부인 ‘쇼윈도 부부’이다. 아내는 낯선 청년으로부터 남편의 외도 사실을 듣는다. 그 청년의 여자친구와 남편이 만난다는 사실에 접한 아내는 청년을 만나 굳이 그 여자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역으로 청년과 외도를 벌인다. 아내는 계피 향이 다 날아가버린 막대로 커피를 휘저으면서 청년과 대화를 나눈다.

“그냥 스틱으로 쓰는 거야. 에스프레소와 우유 거품이 골고루 섞이도록… 향이 날아가버려도 이렇게 쓸모는 있어. 폼 잡고 휘저으면 멋있기도 하잖아? 커피라는 게 꼭 맛으로만 먹는 게 아니니까.”

“이 결혼처럼요? 향기가 날아가버렸지만 겉으로는 멀쩡한… 이 결혼도 처음엔 향기로웠겠죠? 사랑해서 결혼했나요?”

두 사람의 이 대화에 표제작의 메시지가 응축돼있다. 이른바 ‘디스플레이 커플’ 혹은 ‘위장 부부’의 스산한 삶이다. 이들은 왜 이처럼 난간을 걷는 듯한 위태로운 관계를 지속해나가는 걸까. 남편이 여자를 집 안으로 불러들여 외도를 벌이는 현장을 아내가 발견했을 때, 남편은 “지금 저 안방에는 아무도 없어. 그렇게 믿으면 현실이 되고, 믿지 않으면 모든 게 끝장”이라고 말했다. 아내는 판도라 상자를 덮었고, 남편이 청년과 자신의 관계를 알았을 때도 “그렇게 믿으면 현실이 되고, 믿지 않으면 모든 게 끝장”이라고 남편이 던졌던 주사위를 되돌려준다. 이들은 나란히 판도라의 상자를 닫고 돌아선다.

고은주는 ‘인간의 욕망을 변질시키는 결혼 제도에 대해 역설적인 질문을 던졌던’ 첫 소설집 ‘칵테일 슈가’ 이후 이번 소설집에서도 ‘마스카라’ ‘이식’ ‘카메라 루시다’ ‘불현듯이’ ‘표류하는 섬’ ‘너의 거짓말’ 등 표제작을 포함한 7편의 단편으로 같은 주제를 변주했다. 그녀는 “우리 삶을 지배하는 절대적 관계인 부부 중심의 가족을 냉정히 해부해 보였으니 독자들은 이제 사랑과 결혼의 증강현실을 경험하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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