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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와 마주할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입력 : 2018-10-04 20:44:52 수정 : 2018-10-04 20: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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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백’ 11일 개봉/어릴 때 엄마에게 버림 받은 여성/부모 폭력 시달리는 소녀와 인연/경찰 신고해도 부모에 돌려보내 3년 전 겨울, 인천에서 처참한 몰골의 여자아이가 맨발로 돌아다닌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한겨울에 반바지와 얇은 긴소매 티셔츠를 입은 소녀는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아빠는 온종일 게임에 빠져 살며 수시로 매질을 했다. 빨래 건조대용 파이프까지 휘둘렀다. 동거녀와 동거녀의 친구도 폭행에 가담했다. 소녀는 일주일 넘게 밥을 굶을 때도 있었다. 그날도 배가 고픈 나머지 2층 창문을 넘어 가스 배관을 타고 집을 탈출했다가 동네 마트 주인에게 발견됐다. 아이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이 공개되자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영화 ‘미쓰백’은 여러 면에서 2015년 인천 아동학대 사건을 연상시킨다. 다만 영화에선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설정을 통해 피해자인 아이에게 해피엔딩을 선물한다.

주인공 백상아, 미쓰백은 어린 시절 엄마에게 학대당하고 버림받았다. 거기까지만이었다면 삶이 좀 나았을까. 고교 시절 성폭행 위기에서 저항하다 가해자를 다치게 한 뒤 ‘살인미수’라는 죄목을 쓰고 전과자가 됐다. 미쓰백이 스스로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키고, 누구와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어른아이’가 된 까닭이다. 밝게 탈색한 머리, 붉게 칠한 입술, 가죽점퍼와 호피무늬 셔츠, 누구에게나 뾰족한 말투 등은 강하게 보여 자신을 지키려는 갑옷이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영화 ‘미쓰백’은 어린 시절 가정과 사회에서 버림받고 마음의 문을 닫은 여자가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아이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CJ E&M 제공
그런 미쓰백에게 동네에서 가끔 보는 소녀 지은은 신경 쓰이는 존재다. 한겨울에 얇은 원피스만 입고 맨발로 거리에 나와 있는 아이. 깡마른 체구에 헝클어진 머리, 몸의 멍 자국…. 어린 시절 자신을 자꾸 떠오르게 한다. 결국 포장마차에서 지은과 인연을 맺게 된 상아. 깊숙이 가지 않으려 했지만, 학대 상황을 직접 목격하면서 더는 외면하기 힘들게 됐다. 지은을 구하고 싶은 미쓰백은 어떤 선택을 할까.

‘미쓰백’은 이지원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감독 자신이 동네에서 학대가 의심되는 아이를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게 마음에 맺혀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혔다.

영화는 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안타깝게 여기면서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거나, 적극적인 성격이라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일반적 반응일 것이다. 미쓰백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직접 나선다. 듣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 단어가 ‘엄마’였고 평생 엄마가 될 마음이 없었던 미쓰백은 두렵지만 그 길을 택한다.

무모하다. 관객 입장에서는 관련 기관이나 경찰인 남자친구(미쓰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도망쳐버리는 미쓰백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미쓰백은 엄마에게 버림받고 경찰에 의해 부당하게 범죄자로 낙인찍힌 사람이었다.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는 사회에서도 보호해주지 않는 현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뚜렷한 계획도 없이 지은과 함께 그저 멀리 가는 것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미쓰백’은 보는 내내 답답하고 불편하다. 들어 알고는 있지만 마주 보고 싶지는 않은 현실을 굳이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상아의 손을 잡고 경찰서에 갔던 지은은 경찰의 손을 잡고 다시 집으로 간다. “적당히 훈육하시라”는 경찰의 경고는 지은의 아빠와 동거녀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한다. 아동학대 사실이 드러나 조사를 받게 된 지은 아빠는 “아이를 진짜 죽일 셈이었냐”는 질문에 소리친다. “나도 그렇게 맞고 살았는데 안 죽었잖아. 이 꼴 보고 자란 걔 인생도 나랑 뭐 크게 다르겠어요?” 실제 아동학대 가해자 중 상당수가 어린 시절 학대 피해자였다는 불행의 악순환을 꼬집는 대목이다.

아동학대를 소재로 한 만큼 자극적인 장면보다는 메시지 전달에 초점을 맞췄다. 가혹한 장면이 몇몇 등장하지만, 직접적인 폭력은 장면을 전환하거나, 암시를 주어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식으로 피해갔다는 것이 감독의 설명이다. 촬영 때는 아역배우 김시아가 받을 수 있는 충격을 고려해 아동정신과전문의가 전담 케어했다.

미쓰백을 연기한 배우가 한지민이라는 사실은 놀랍다. ‘청순미’의 대명사인 한지민은 어둡고 상처 많은 여자 백상아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쭈그리고 앉아 연신 담배를 피워대고, 늘 까칠하게 타인을 대하는 여자. 세련미보다는 강해보이려 ‘애쓴’ 백상아의 스타일링부터 엄마에 대한 알 수 없는 감정을 터뜨리는 격렬한 울음, 지은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까지 기존의 아름다움은 완전히 내려놨다. 최근 개봉 영화배우들 중 ‘파격 변신’이란 수식어에 가장 걸맞다. 한지민은 인터뷰에서 “‘변신’이 목적인 작품은 아니었다”며 “시나리오를 읽고 백상아라는 인물에 너무 마음 아팠고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고 ‘미쓰백’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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