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기자와 만납시다]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90분 …'속마음버스'는 사랑을 싣고∼

입력 : 2018-09-29 14:30:00 수정 : 2018-09-29 13:31:1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힐링토크’ 탑승자 만나보니 평일 두 번, 토요일에는 세 차례로 나눠 서울 여의도역을 떠나 자유로를 거쳐 1시간30여분 만에 출발지로 돌아오는 버스가 있다. 커튼으로 가려진 둘만의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 보며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속마음버스’다.

카카오와 서울시의 도움을 받아 사단법인 공감인이 운영 중이며, 상대방 속마음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입소문을 타면서 발 빠르게 신청해도 2주는 지나야 버스에 오를 수 있을 만큼 인기가 높다. 페이스북에서는 데이트코스의 하나로 언급되기도 한다. 속마음버스 관계자에 따르면 운행 중인 버스는 약 10년 전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으며, 곧 새 차량으로 교체해 시민들을 맞이하게 된다. 지난 20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속마음버스를 이용한 네 사람을 만났다. 지난 20일 함께한 두 사람은 가수라는 꿈을 지닌 친구이며, 나머지는 오랫동안 교제해온 커플이다. 서로 다른 이유로 버스를 탔지만 그들과 대화를 나눠 보니 ‘타길 잘했다’는 공통된 생각이 말에서 묻어났다. 이들은 어떻게 속마음버스에 오르게 됐을까.

속마음버스 내부. 회차마다 두 팀(모두 4명)이 탈 수 있다.
◆“친구의 진심을 알게 됐어요”

가수가 되려고 같은 학원에 다니는 두 친구는 알게 된 지 3개월이 조금 지났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도 함께 타기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속마음버스를 신청했다니 놀라웠다. 신청자는 친구를 보고서 처음의 자기 모습이 생각났다면서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고 신청 이유를 밝혔다.

‘속마음버스를 함께 타자’는 신청자의 제안에 상대방은 먼저 신기했다고 한다. 친구와 마주 보고 앉는다는 생각에 그냥 웃고 지나가는 시간이 되리라 예상했는데, 진심이 담긴 친구의 메시지를 듣고는 코끝이 찡했다고 덧붙였다. 제3자인 목소리 기부자의 입에서 나온 친구의 속마음을 들으며 집중했고, 오롯이 그 마음을 가슴에 담게 됐다고도 했다.

신청자는 앞서 어머니와 탔던 속마음버스가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고 전했다. 엄마의 위로에 마음이 따뜻했던 게 생각나 친구도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는 것.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천금의 기회를 통해 서로 진심을 알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들은 오후 8시20분 여의도역 2번 출구에서 출발하는 버스편을 이용했다. 출발지로 돌아온 시각은 오후 10시쯤. 늦은 시간 인터뷰에 응한 두 사람에게 “나중에 공연장에서 만나요”라고 인사했다.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라 본다.

◆예민했던 커플, 따뜻한 포옹으로

추석 연휴가 본격 시작한 22일 오후 5시50분쯤 두 선남선녀를 버스 앞에서 만났다. 이들은 토요일 첫 번째 출발시간인 오후 4시쯤 버스에 올라 여의도역을 출발해 마포대교와 자유로 등을 거쳐 조금 전 출발지로 돌아왔다.

속마음버스 신청자는 여자친구였다. 이유를 묻자 오랫동안 사귀면서 느낀 권태기와 예민한 점들을 ‘대화’로 해결하고자 오르게 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들은 버스에 올라타 3분짜리 모래시계를 책상에 올려두고, 시간이 다 지나갈 동안 대꾸하지 않은 채 상대방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규칙을 지켰다. 자기 차례가 오면 똑같이 3분간 속마음을 털어놨고 상대는 경청했다고 한다. 아울러 방금 전, 앞 사람이 한 말에 대해서는 어떠한 지적도 할 수 없다는 규칙에도 잘 따랐다.

여느 날이면 카페에서 데이트를 했을 법도 하다. 카페와 속마음버스의 차이가 있는지 물었더니 “말꼬리를 끊을 수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사람이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하면서 다른 이가 화난 상태였는데, 카페였다면 서로 말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목소리만 높이고 자리를 떴겠지만 오히려 버스를 탄 덕분에 감정을 추스르고 상대 말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음에 같이 타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질문했다. 남성은 아버지와 타고 싶다고 했으며, 여성은 친구나 어머니를 초대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처럼 가깝지만 그렇게 대하지 못했던 이들과 진실한 대화를 하고 싶다면 속마음버스를 권하고 싶다. 인터뷰가 끝난 뒤 상대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두 사람을 우연히 멀리서 발견했다. 이 정도면 속마음버스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글·사진=kimcharr@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