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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쟁취한 영국… ‘팍스 브리태니카’ 이루다

입력 : 2018-09-15 03:00:00 수정 : 2018-09-14 19:3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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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나라가 제국 되기까지 원동력 해부 / 출발은 왕권 제한… 가장 자유로운 국민 탄생 / 국가는 민간활동 지원… 무역으로 부 쌓아 / 세계 해상권 장악하며 사상 최대 제국 건설 / 영국사 대가 박지향 교수 정년퇴임 기념작 / "제국주의 조류 합류했지만 덜 사악했다" 평가
박지향 지음/21세기북스/2만5000원
제국의 품격/박지향 지음/21세기북스/2만5000원


“자유는 서양에서 태어났습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당신네 작은 섬에서 태어났지요. 즉 중세 잉글랜드에서 출현했고, 거기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1941년 한 러시아 학자가 영국인 지인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평생 영국사를 연구한 서울대 박지향(사진) 교수가 정년 퇴임 기념으로 역작을 출간했다.

18세기 초반 영국을 여행한 몽테스키외, 볼테르 등은 그들의 조국 프랑스와 비교해 선진화된 영국에 감탄했다. 당대 석학이며 계몽주의 정치철학자인 몽테스키외는 “영국은 유럽의 다른 어떤 지역과도 닮은 점이 없는 나라”라고 평했다. 그는 “법으로 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데 성공한 영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국민”이라고 찬탄했다.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구속한 유럽 각국과 닮은 점이 없다는 의미였다. 볼테르 역시 수년 동안 영국에 머물면서 영국 예찬자가 되었다. 그는 영국을 ‘자유의 땅’으로 부르며 프랑스의 절대 왕정과 비교했다. 볼테르는 영국의 자유와 부, 권력의 상호 관계를 제대로 파악했다. 즉 무역은 영국인들을 부유하게 만들고 그들의 부는 그들을 자유롭게 만들며, 그렇게 얻은 자유는 상업을 확대시키고, 무역으로 번 돈은 해군력을 강화시켰다. 이를 기반으로 영국은 전 세계 해상권을 장악했다.

국민들이 자유로워지려면 왕권의 제한이 필수적이었다. 대륙과 달리 영국에서는 어떻게 일찍 왕권이 약화되었을까?

이 개념은 존 로크(1632∼1704)에 의해 가장 잘 표현되었다. 로크는 자유를 자신에게 허용된 법의 한도 안에서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관리할 자유로 정의했다. 국민이 스스로 정부 아래 두는 가장 중요하고 주된 목적은 ‘사유재산의 보호’다. 반면 다른 나라의 왕들은 무제한 절대 권력으로 시민들의 소유를 왕과 권력층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었다. 로크의 이 철학은 20세기 초까지 영국 역사가 실제로 나아간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영국에서 사회와 국가는 공존했지만, 둘 가운데 사회가 더 큰 생명력과 추진력을 보였다. 물론 여기에는 지정학적 이점도 있었다. 섬나라이기에 대륙의 나라들처럼 전쟁에 시달리거나 긴장된 국가나 사회가 아니었다. 그 결과 봉건제가 상대적으로 일찍 붕괴되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왕권이 제한받으면서 의회가 발달했다. 영국 의회는 ‘모든 의회의 어머니(Mother of all the parliaments)’로 불린다. 그 별칭이 말해주듯 의회제도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먼저 발달했다. 의회의 전신인 ‘정기자문회의’는 앵글로색슨 시대의 유물이었고, 게르만부족 시대의 유물이었다. 그 전통이 유럽 대륙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섬나라 잉글랜드에는 남아 전승되었다.

의회는 양식있고 부유한 지주들로 구성된 시민사회 속에서 성장했다. 시민의 역동적인 힘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원동력이 되었다. 적어도 20세기 초까지 영국에서 국가는 시민사회보다 하위에서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세계를 주름잡던 나라의 정부는 이처럼 최소한의 기능만 수행하려 애썼다.

이로 미뤄볼 때 영국이 이룬 업적은 대부분 민간에서 나온 역동적 힘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 더 중요했다. 개인의 역량을 해방시켜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만들어주는 사회가 가장 좋은 사회라는 사실을 영국 역사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시민사회는 명예혁명 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시민사회에서 인간은 절대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었다. 반대로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 편의에 따라야 하는 부수적 제도일 뿐이라는 원칙이 확립되었다.
시민 사회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애덤 스미스는 역작 ‘국부론’을 통해 시민사회의 역동성과 인간의 자유를 정리하고 이론화했다. 동상은 스코틀랜드 애든버러 시내 성 메리 성당 앞에 서 있다.

17세기 사상가 베이컨은 “과학이 추상적이 아니라 실용적이어야 하고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보탬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영국 시민사회는 베이컨의 생각을 좇아 과학과 기술의 융합에 힘을 쏟았고, 그 결과는 산업혁명으로 나타났다. 산업혁명을 통해 영국은 다른 나라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대국이 되었다.

1688년 명예혁명 후 “예술을 찾으러 이탈리아에 가듯 이상적 정부를 보려면 잉글랜드에 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잉글랜드 정치제도는 이상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다. 명예혁명 후 잉글랜드는 대륙 유럽과는 확실하게 다른 길을 걸었다. 유럽 국가들에서는 절대 왕정이 구축되었지만 잉글랜드에는 의회 우위가 확립되었고 정치안정 토대 위에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며 시민사회가 발달했다.

박 교수는 퇴임 기념 역작을 끝내면서 “평생 영국사에 천착한 이유는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배우자는 목적”이라면서, “영국 역시 19∼20세기 제국주의라는 세계적 조류에 합류해 동양을 공격하고 빼앗아갔지만, 다만 덜 사악한 제국주의”였다고 평했다. 박 교수는 “제국주의라는 큰 틀에서 보면 영국도 별반 다를 게 없어보이지만, 단점보다는 장점을 부각하려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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