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놀트 판 더 라르 지음/제효영 옮김/을유문화사/1만9800원 |
16세기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의 전쟁터서 잠을 청하던 한 군의관은 환자들의 비명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총상 환자를 치료해 본 경험이 없었던 그는 어느 책에서 화약의 독성을 없애려면 상처 부위에 끓인 기름을 부어야 한다는 내용을 보고 피로 범벅이 된 환자의 살에 기름을 떨어뜨린 참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밤새 그토록 괴로워했던 환자들이 끓는 기름으로 치료를 받은 병사들이었다는 사실을 안 그는 두 번 다시 상처에 끓인 기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상식’이 ‘전통’에 가려졌던 암흑기를 넘어 현대적인 외과 수술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딛는 순간을 잘 보여 주는 이 일화는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앙브루아즈 파레(1510~1590)의 이야기다.
네덜란드 현직 외과의사인 저자는 ‘메스를 잡다’에서 인류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발휘했던 수술의 역사를 소개한다. 실제 일어난 일들을 28개의 이야기로 엮어 이른바 ‘서전(surgeon)’들의 수술사를 흥미롭게 보여 준다.
‘역사 자료’ ‘인터뷰’ ‘언론 보도 내용’ ‘해당 인물의 전기’ 등을 바탕으로 외과의로서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더해 수술의 역사서로서도, 한 인간이 겪은 인상적인 순간에 대한 기록서로도 손색이 없다. 한편으로는 외과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못된 지식과 신중하지 못한 태도로 오히려 환자들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했던 의사들에 대한 자조도 담겨있다. 단순히 수술의 역사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몸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그리고 그 기능이 유지될 수 있도록 외과 의사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에 관한 내용도 담고 있어 우리 몸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