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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거수기' 전락 방추위… F-X '굴욕외교' 논란 초래

입력 : 2018-08-20 19:09:54 수정 : 2018-08-20 22: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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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의중에 ‘춤추는 의사 결정’/ 장관이 위원장 겸해 반대의견 제시 못해 / 철매-Ⅱ는 宋국방 의중에 축소 가능성도 / 국방부, 잇단 지적에 “원안 추진” 수습 나서 / 과다한 상정 안건도 의사결정 방해요인
우리 군의 무기 도입을 결정하는 최고 의결기구인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가 흔들리고 있다. F-35A 스텔스 전투기, A-330 MRTT 공중급유기 등 조(兆) 단위 무기 도입 사업은 물론 국내 국방과학기술 연구와 방위사업정책 결정에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국방부 장관의 의중에 따라 정책 결정이 놀아나는 ‘거수기(擧手機) 위원회’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장관 의중’에 춤추는 의사 결정

2006년 방위사업청 개청과 함께 출범한 방추위는 지난 6월까지 113회에 걸쳐 무기 도입 사업의 최종 의사 결정을 도맡아 왔다. 방추위의 활동 근거가 되는 법령인 방위사업법 제9조는 방추위 직무 범위에 대해 ‘국방부 장관 및 방위사업청장이 위원회의 심의·조정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방추위 위원장을 겸하는 국방부 장관의 의중이나 정무적 판단에 따라 방추위 안건 상정→논의→의사 결정이 일사천리로 이뤄질 수 있는 단초를 열어놓은 것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2012년부터 5년간 1600억원을 들여 개발한 탄도미사일 요격용 ‘철매-Ⅱ’ 개량형은 이르면 이달 말 송영무 장관 주재로 열릴 제114회 방추위에서 당초 계획인 7개 포대 확보에서 4개 포대 수준으로 축소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지난 2월 제109회 방추위에서 생산규모가 7개 포대로 결정됐으나 지난 5월 제112회 방추위에서 송 장관이 “계획대로 전력화하는 게 맞느냐”며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사업 규모 축소 논란이 일었다.

표면적으로는 4개 포대를 먼저 생산하고 3개 포대 생산은 추후 결정할 수 있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지만 방산업계에서는 사실상의 생산 축소라는 시작이 적지 않았다.

철매-Ⅱ 개량형 생산에는 한화시스템, LIG넥스원 등 680여개 방산기업이 참여한다. 업체들은 당초 예정됐던 규모를 기준으로 설비투자, 자재 확보 등 생산을 준비해 왔다. 해외 협력업체에 물품 발주도 완료했다. 물량 축소가 현실화되면 업체들은 700억~800억원대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 당국은 매몰비용을 보상해 주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행 규정상 정부가 보상해야 할 의무는 없다.

계약 전 업체들은 ‘방사청의 물량 변경 또는 취소 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감수하고 어떠한 형태의 보상 요구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수는 있지만 승소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서는 철매-Ⅱ 개량형 생산을 지난 2월 방추위에서 결정된 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 같은 지적이 잇따르자 국방부는 21일 철매-Ⅱ 개량형 생산계획을 원안대로 추진하는 방안을 발표하는 등 수습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장관의 정무적 판단에 따라 무기 도입 정책이 뒤바뀐 대표적인 사례는 차기전투기(F-X) 사업을 꼽을 수 있다.

8조3000억원을 투입해 5세대 전투기 60대를 도입하려던 F-X 사업은 방위사업청 협상 결과 2013년 8월 미국 보잉 F-15SE가 단독 후보로 선정됐으나 같은 해 9월 24일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주관한 방추위에서 부결돼 이듬해 미국 록히드마틴 F-35A로 기종이 변경됐다.

방추위 부결 당시 김 장관이 “정무적 판단으로 결정해야 될 사안”이라며 기종 변경을 주도한 것이 알려지면서 뒷말이 무성했다.

김 장관의 정무적 판단으로 군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컸다. 예산은 1조원이 줄어들었지만 도입 대수는 20대나 줄면서 오히려 대당 단가는 상승했다. F-35A 도입을 놓고 록히드마틴과 수의계약을 체결하면서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에 필요한 25개 기술 이전을 약속받았지만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등 4개 기술을 이전받지 못하는 등 ‘굴욕 외교’ 논란도 초래했다.

절충교역(군수품 수출국이 수입국에 기술 이전이나 장비 제공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교역)의 일환이었던 군사 통신위성 제공 역시 당초 일정보다 지연됐지만 록히드마틴에 지체상금은 물리지도 못했다.


◆반대 목소리 ‘미약’… 거수기 오명 벗을 대책 필요

방추위가 국방부 장관의 거수기 역할에 머무르는 원인에 대해 군 안팎에서는 방추위 내부 환경의 한계를 지적한다.

방추위 위원 23명 중에는 국방부 장관의 통제를 받는 군 내부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방위사업법에 규정된 방추위원 중 국방부 차관과 전력자원관리실장, 방위사업청장과 차장·계약관리본부장·사업관리본부장,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육·해·공군 참모차장과 해병대 부사령관, 국방과학연구소장, 국방기술품질원장, 한국국방연구원장은 모두 국방부 장관 예하에 속해 있다. 장관 의중에 반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놓기 어려운 인사들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오히려 소요 제기나 전력화 시기 등을 조정해 장관 의중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와 국회에서 파견한 위원 3명, 방위산업진흥회 상근부회장을 포함한 민간인 위원 2~3명이 있지만 수적으로 열세다. 그나마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딴지만 걸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국방 관련 경력이 많거나 관련 이슈에 밝은 사람을 방추위원에 임명하면 투명성 논란, 국방과 관계없는 사람을 임명하면 전문성 논란이 발생한다”며 “군과 이해관계가 없으면서 전문성을 갖춘 민간위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방추위에 상정되는 안건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효과적인 의사 결정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현재 방추위 상정 기준은 일반적으로 총사업비 3000억원 이상이다. 현대 무기체계에서 고가의 전자장비 비중이 높아지면서 무기의 가격 상승이 지속되는 추세를 감안하면, 대부분의 무기 도입 사업이 방추위 상정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군 소식통은 “소소한 수준의 장비 개발 또는 도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들은 대부분 방추위 심의 대상이라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방위사업법상 방추위 심의 대상이 아닌 무기체계개발 기본계획과 구매계획이 공정성과 투명성 강화를 이유로 방추위에 상정되고 있는 것도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방추위 심의 부실로 이어져 국방부 장관의 의도대로 안건이 통과되거나 정책 결정이 지연돼 방위사업 추진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방사청의 결정을 별다른 이의 제기 없이 승인하는 거수기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실제로 방사청이 방추위에 상정하는 안건 중 체계개발 협상대상업체 선정 결과의 경우 방추위 심의 과정에서 협상대상업체가 바뀐 적이 거의 없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방추위 구성원과 의사결정 구조, 관련 시스템 등에 대한 전면 재검토와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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