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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대에 오른 국민연금] 국민연금 개편 논의, 청년층은 왜 참여하지 못하나

입력 : 2018-08-20 19:34:53 수정 : 2018-08-20 19:3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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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사회적 합의만이 해법이다 / 미래세대에 일방적 희생 강요 앞서 종합적 논의 필요 / 제도 도입 20년 되도록 미성숙 수준 / 정부, 가입자 반발 의식 소극적 논의 / 15년간 보험료율 9% 제자리 머물러 / 연금제도 개편에 통상 5∼10년 소요 / 시간 갖고 다양한 주체 의견 수렴 땐 / 여론 무시 못해 구체적 대안 나올 것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공적연금의 목표를 크게 두 가지로 제시했다. 은퇴 후 소득 상실로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것과 노후에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최근 국민연금 4차 재정계산 결과를 놓고 각종 논란과 국민적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노후에 대한 우리 국민의 커다란 불안,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국민연금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는 현실 등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공적연금 주축인 국민연금제도의 내실을 기하고 미래 상황에 맞게 개선해 나가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근본적으로는 다층적이고 체계적인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여러 제도가 맞물리고 국민 전체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과거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사회적 합의 절차를 밟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공적연금 강화국민행동 소속 회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18년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제도 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 반복된 입법 실패

20일 연금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 국민연금제도는 도입 20년이 되도록 미성숙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번 4차 재정계산에 앞서 국회를 중심으로 사회적 논의가 3차례 있었지만 모두 실패한 탓이다.

과거 선진국들 사례를 살펴봐도 국민연금제도에 손을 댄 정부의 말로는 정권 재창출 실패였다. ‘역린을 건드렸다’,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 등의 말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다. 1997년 1차 연금개편 당시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12.65%까지 올리는 정부안이 나왔으나 가입자들 반발을 의식해 논의조차 제대로 못했다.

1차 재정계산 때인 2003년에는 15.9%까지 보험료를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50%로 낮추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2004년 출범한 17대 국회에서 여야 간에 지루한 공방전만 펼치다 2007년 부결됐다.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대신 초안이 무색하게 보험료율은 9%를 유지하면서 소득대체율만 60%에서 40%로 점진적으로 낮추는 안이 채택됐다.

2013년 정부는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13∼14%까지 올리는 다수안과 9%로 묶는 소수안의 복수 개편안을 선보였다. 그러나 성난 민심의 벽을 넘지 못했다. 보장성 확대를 위해선 보험료율을 높여야 하지만 대국민 설득에 실패했다. 그나마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지급보장 명문화라도 해야 했지만 이번엔 재정당국이 반발했다.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짐에도 15년간 보험료율이 9%에 묶인 배경이다.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대명제는 어느새 사라지고 ‘보험료율을 올리느냐 내리느냐’는 소모적 논쟁만 공회전했다.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 필요

이러한 측면에서 국회를 넘어서는 폭넓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산하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에서 진행 중인 논의가 대표적이다.

사회안전망개선위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4대 보험제도와 각종 사회서비스를 포괄하는 사회안전망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는 것이 목표다. 여러 제도 간의 연계성을 높이기 위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장지연 사회안전망개선위원장(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은 “근로빈곤과 노인 빈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 사회서비스 강화 등 다양한 제도들에서 원칙을 짚고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사노위는 노사는 물론 청년, 여성, 비정규직,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고 있다. 자연히 과거와 다른 차원의 사회적 합의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도 그만큼 크다.

이처럼 높은 수준의 사회적대화는 대명제에 집중해 진행되는 만큼 현안에 부딪혀 교착상태에 빠지는 상황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가령 은퇴 이후나 노후의 소득 보장을 위해 국민연금제도에 관해 논의하면서 실업급여나 일자리 지원, 의료·주거 지원 등 다른 제도들이 어떻게 서로 보완하고 중복을 없애 효율성을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 논의가 이뤄지는 셈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합의안이 도출된다면 국회 입장에서 무시하기 힘들어진다.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도 보다 수월해질 수 있다.
◆청년층 참여 등 논의 구조 변해야

기존 논의 구조의 한계도 주요 개선사항으로 지적된다. 선거 때마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노인층 표심 잡기에 혈안인 정치권과 주도적으로 나서길 꺼리는 행정부, 현실적인 대안 제시와 거리가 먼 전문가 등에게만 맡겨서는 제대로 된 합의에 이르기 힘들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도 어렵다.
정부가 국민연금 개편에 나선 것은 노인 빈곤율이 45.7%(2015년 기준)로 OECD 평균치인 11.5%의 4배에 이를 만큼 악화한 상황이 일조했다. 이를 방치하면 저출산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더 이상 감당이 안 된다는 위기감이 고조된 것이다.

기금 소진으로 언젠가 선진국들처럼 부과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예고된 수순이라 해도 당분간 이를 부담하는 주체는 젊은 세대일 수밖에 없다. 남찬섭 동아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선진국에서 연금 보험료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의료비나 교육, 보육 등 다른 분야에 대한 가계 부담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2030세대에게 고부담을 요구하기에 앞서 보험료를 인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노후소득 보장을 최종 목표로 삼아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를 수렴하면서 국민연금제도를 중심축 삼아 여러 사회적 장치의 유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이용하 국민연금연구원장은 “과거 우리나라나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연금제도를 개편하기 위해서는 통상 5∼10년이 걸리기 마련”이라며 “이번 4차 재정계산을 시작으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폭넓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獨 공적 연금, 직군·직종 따라 세분화

독일은 비스마르크 시절인 1889년 국민연금을 도입해 세계 최초로 사회보험 중심의 노후보장 체계를 구축했다. 이는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의 연금제도의 설계에 영향을 미쳤고, 이후 국가별로 인구구조 및 경제·사회 사정에 맞게 노후보장 체계를 발전시켰다.

독일의 공적연금은 사회계층에 따라 맞춤식으로 운영되는 게 돋보인다.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기초보장제도를 기반으로 주요 연금이 직군·직종에 따라 세분화돼 있다.

제도 도입 초반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가치를 보장하는 장치가 없어 1·2차 세계대전 이후 엄청난 인플레이션 탓에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후 보완을 했고, 1970년 무렵 일반 국민에게 국민연금 가입이 대폭 개방됐다. 2000년 초반 개혁 이후 낮아진 국민연금 수준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리스터 개인연금(공사혼합형)이 더해지며 다층적인 노후보장 체계가 확립됐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유럽 화폐 통합과 본격적인 고령화 진행 등에 따라 국고 보조 확대 등 재정안정화 대책이 추진됐다. 2004년에 직종에 따른 구분을 폐지하고 관리조직을 통합했으며, 이후에는 연금 지급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67세로 늦추는 방안을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연금제도의 선구자’격인 독일에서도 연금 급여의 적절성을 놓고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공적연금 중심에서 ‘공사혼합형’으로 바꾸면서까지 대응 중이지만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1961년에 전 국민 연금시대를 시작한 일본은 고령화로 인해 2004년부터 공적연금의 급여 수준을 낮추는 개혁을 추진했다. 2012년에야 마무리됐지만, 재정안정책의 일부는 보류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재정 안정을 위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보험료 납부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노후소득보장체계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공적연금 체계인 OASDI와 퇴직·개인연금으로 이뤄진 사적연금으로 구성된다. 다만, 공적연금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사적연금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발달했다. OASDI 재정은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나 저출산 고령화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회보장 지출을 감당하지 못해 2010년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했고, 이대로 가다간 2034년에 재원이 고갈된다는 전망도 나왔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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