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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개인, 가족, 가국(家國), 국가(國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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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20 21:30:32 수정 : 2018-08-20 21: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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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식인들 보혁 모두 / 기존의 이데올로기에만 충실 / 국민 전체 아우를 철학 없이 /‘가국’ 수준서 당쟁에만 몰두 한국인은 과연 근대적 의미의 개인, 자유시민이 되었는가. 지난 50여년간 우리는 산업화·민주화를 통해 근대적 개인의 삶을 어느 정도 성취해왔고, 또 그러한 삶의 울타리로서 국가도 만들었다고 자부해왔다. 그런데 이기주의가 아닌 건강한 개인주의를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동양인은 과연 근대적 개인이 되었는가. 이에 대해서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건강한 자의식을 가진 개인을 기초로 가족을 구성하고, 개인은 자유를 누리는 것과 함께 사회적 책임과 권리의무를 다하면서 사회복지를 구현한다면 근대적 의미의 민주국가가 될 수 있다. 사회주의국가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기초로 민주주의가 성립되기보다는 특정 당파·계급적 이익을 중심으로 사회를 구성하였다. 집단주의는 항상 전제주의나 전체주의에 빠질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아시아자본주의의 성공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을 운운할 때는 유교적 자본주의가 회자되긴 했지만 지금은 개인주의를 기초로 쌓아올린 산업화와 민주화가 아니면 구조적으로 허약하다는 사실을 역사는 반증해주고 있다. 물론 개인주의를 기초로 사회를 구성해야 반드시 ‘좋은 사회’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참으로 오랫동안 ‘가족’이라는 준거집단을 통해 삶을 영위하고, 인구를 번창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류역사는 서구가 주도한 15세기 문예부흥, 16세기 종교혁명, 17세기 과학혁명, 18세기 시민혁명, 19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가족보다는 개인을 앞세우는 삶이 ‘선진적 삶’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근현대인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떠나서 개인의 삶을 영위할 만큼 강해졌고, 그렇게 살도록 산업문명 속에서 길들어 왔다.

산업문명은 개인을 기초로 사회를 구성했고, 이에 비해 농업문명은 가족·마을공동체라는 집단주의를 통해 사회를 구성해왔다. 과거 농업사회에서는 개인은 가족과 집단 속에 매몰되었다. 개인이 너무 두드러지면 도리어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그런데 근현대는 개인이 가족을 구성하고 있긴 하지만, 그 기초는 개인이다. 개인은 가족과 집단 속에 매몰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인은 진정한 근대적 개인이 되었는가를 반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로는 근대국가를 만들었지만 아직도 과거 농업사회 때의 가족·족벌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공사를 구분하지 못해 종종 인정이 부정이 되고, 부패의 원인이 되기 일쑤였다. 근대적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가족·농업사회의 인간성을 개인·산업사회의 인간성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근대의 서구는 자유·자본주의와 공산·사회주의를 탄생시켰다. 전자는 개인을 중심으로 근대산업국가를 완성시켰고, 후자는 과거 농업시대의 집단주의를 부활시켰다. 사회주의는 오늘날 농민과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사회운동과 혁명을 주도하고 있지만, 생산성 부족으로 자본주의와의 체제경쟁에서 뒤지면서 대체로 전체주의로 회귀하고 말았다. 말하자면 자유·자본주의와 공산·사회주의는 개인주의 대 전체주의의 대결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러시아와 중국이 대륙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시아는 개인주의가 도태될 위험에 처해 있다.

근대적 개인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남의 말을 들어줄 아량을 가져야 하고, 그리고 양자의 합의를 통해 새로운 통합(통일)을 만들어내는 역사적(변증법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과연 우리는 그러한 역사적 인간이 되었는가.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남의 흉내를 내는 것만 수두룩하다. 수많은 대중철학 및 인문학강좌를 보아도 하나같이 지식자랑 수준에 분주할 뿐, 이 땅에 뿌리내린, 이 땅을 통일시킬 철학은 찾기 어렵다.

인류문화의 상생과 평화를 위해서는 동양은 서양의 개인주의의 자유와 책임을 배우고, 서양은 동양의 가족주의의 효(孝)와 정(情)을 배움으로써 더 높은 차원에서 자기문화를 보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고급(상류)문화 속에 우리 고유의 것은 드물다. 그저 민중과 여성, 그리고 민속이라고 천대받은 문화 속에 고유한 것이 묻혀 있을 뿐이다. 이 흙속의 진주를 발견하여 세계문화로, 세계적 보편성으로 끌어올리는 우리의 세계적 지성은 아직 없었다.

한국철학의 대명사인 퇴계선생이나 율곡, 다산의 경우도 주자학의 틀과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한민족이 오늘날도 당파싸움을 계속하고 분단 상태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아직 국가나 국민 전체를 통합하고 아우를 만한 철학과 사상이 탄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라통일의 사상적 토대가 된 원효(元曉)의 화쟁(和諍)사상 이후 세계적 보편성의 수준에서 우리의 말로 우리 철학을 내보이고 자유자재한 철학자는 없었던 것 같다.

오늘날 한국의 지식인은 좌파든, 우파든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기존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할 뿐이다. 조선조 지식인들이 성리학적 위선과 명분에 빠졌듯이 오늘의 민주주의도 바로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산업화와 민주화세력을 하나로 묶는 철학의 완성 없이는 우리의 미래는 암담하다.

우리는 아직 근대적 개인이 되지 못했고, 가족·족벌주의(집단이기주의)에 머물러 있으며, 조선왕조가 해체된 후 가국(家國)의 수준에서 여전히 당쟁 중이다. 아직 근대민주국가를 완성하지 못했다. 국가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위정자나 국민이 있는 한, 그것은 바로 근대의 미완성을 의미한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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