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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위해 자신 미래 희생… 어린 여공들 삶 기억해야

입력 : 2018-08-18 03:00:00 수정 : 2018-08-17 20: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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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욱 지음/이후/1만3000원
우리들의 누이/홍정욱 지음/이후/1만3000원


1970년대를 이야기할 때 노동자 전태일을 빼놓지 않는다. 그러나 전태일이 차비를 털어 붕어빵을 나눠 주었던 어린 여공들의 삶은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빠의 진학을 위해, 남동생의 공부를 위해 당연히 희생했던 딸들이다. 그녀들의 마음속에 솟아나고 사그라들던 아픔과 슬픔은 대상화되고 객체화되긴 했지만 결코 주인공이거나 중심인 적은 없었다.

홍정욱의 소설 ‘우리들의 누이’는 어려운 시절 희생만 했던 여공이 주인공이다. 겨우겨우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결국 졸업을 못 하고 집과 학교를 떠나 공장에서 일하게 된 이구남의 일생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구남의 언니 희남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취직했다. 동생 구남이가 중학교라도 졸업할 수 있도록 힘껏 도우려 하지만, 연달아 찾아온 불행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장손 복이와 국이, 덕이까지 줄줄이 딸린 동생들 공부도 시켜야 한다. 몸져누운 할아버지 생각도 해야 하고, 수레에 깔려 운신을 못하는 아버지 생각도 해야 한다. 결국 구남이는 학교를 포기했고, 개고개를 넘어 고향을 떠났다. 너무 어린 나이라 나이를 속였고, 이름도 바꿨다. 공장에서의 삶은 고되고 힘들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 울고, 집에 가고 싶어 울었다. 그렇게 몇 년을 일한 뒤 갈빗집으로 옮겨 조리사 자격증을 땄고, 일식집에서 자리도 잡았다. 결혼으로 고단한 삶이 따뜻해지나 싶더니, 남편은 중병으로 곧 죽고 만다. 홀로 남은 구남씨는 일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불어난 계곡물에 차가 휩쓸려 생을 마감하게 된다.

작품의 감동은 디테일한 묘사에서 나온다. 작가가 겪지 않으면 알 수 없었을 세세한 묘사가 많다. 그런 시대, 그런 장소에서 살아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일하는 어린이가 흔했던 시대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 낸다.

요즘은 누구도 가족을 위해 내 생을 뒤로 물리는 것을 당연하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우리 언니들은, 누나들은 그렇게 한사코 착하기만 했다. 공장에 일하러 와서도 “이제 소죽은 누가 끓이지?”를 걱정하는 것이 누이의 마음이었다. 누이들을 일찌감치 어른으로 만들어 버렸던 시대의 이야기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들의 삶이 그렇게 살다간 이들의 삶을 딛고 있다. 그런 누이의 삶을 한 사람이라도 더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잊었지만, 누구나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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