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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누가 화살을 쏘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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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16 23:38:00 수정 : 2018-08-16 23: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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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혁명으로 질주하는 중국 / 적폐 논쟁으로 힘 소모하는 한국 / 기업을 적으로 돌리지 말고 / 일자리 열리는 나무로 가꿔야 상전벽해(桑田碧海)! 중국 혁신의 메카 선전(深?)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홍콩과 맞닿은 선전은 1980년 덩샤오핑의 개방정책에 따라 중국에서 제일 먼저 경제특구로 지정됐다. 선전의 38년은 그야말로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하는 기적의 시간이었다.

인구 3만명의 한적한 어촌은 1300만 거대 도시로 탈바꿈했다. 선전 1곳의 한해 국제특허 출원 건수는 2만건을 넘나든다. 우리나라 특허 건수보다 많다. 연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제품박람회 때엔 선전에서만 652개 기업이 참가했다. 한국의 전체 업체보다 세 배 이상 많았다. 전기자동차 도입에도 세계 어느 도시보다 앞서간다. 지난해 시내버스를 모두 전기버스로 바꿨고, 올해엔 모든 택시를 전기차로 교체한다. 도로에선 AI(인공지능)가 무단 횡단자를 적발해 스마트폰으로 벌금 메시지를 보낸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떠오른 선전의 모습이다.
배연국 논설실장

선전뿐이 아니다. 이런 천지개벽은 중국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이다. 한때 우리에게서 한강의 기적을 배웠던 ‘짝퉁의 나라’가 한국이 주춤하는 사이 추월을 시작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중국이 문호를 개방한 80년대 이후 소중한 민주화의 결실을 이루었다. 그러나 의문이 남는다. 민주화가 꼭 산업화의 희생을 통해서만 이뤄져야 했을까? 둘이 어깨를 겯고 동행하는 길은 없었는가?

요즘 우리 사회의 적폐 청산을 지켜보면서 세계 변화에 고민하기보다는 우리끼리 드잡이하느라 에너지를 탕진한다는 걱정이 앞선다. 공정거래위원장은 정부 회의에 지각하자 “재벌들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기업은 재벌이고 재벌은 적폐라는 인식이 집권층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그 과정에서 멍드는 것이 국가 경제다. 외환위기 이후 상황과 비슷하다는 진단이 해외에서 나오는 판이다. 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꼴이다.

대기업의 병폐를 시정하는 일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병은 고쳐야 한다. 유의할 점은 환부를 수술한답시고 환자의 생명을 되레 위태롭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기업 수술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썩은 부위를 도려내 건강을 회복시키는 것이 수술의 요체다. 여기에 어울리는 비유가 부처의 독화살 예화이다.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았다면 빨리 화살을 뽑아야 한다. ‘화살을 누가 쏘았나, 화살의 깃이 무슨 새의 털로 만들었나, 그 활의 재료가 뽕나무인가’ 하는 문제는 독화살을 뺀 이후에 처리할 사안이다. 만약 이런 일로 시간을 끈다면 그 사람은 온몸에 독이 번져 필시 죽고 말 것이다.”

재벌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부처의 가르침과는 거꾸로다. 지난주 삼성의 투자 발표를 놓고도 청와대에서 ‘구걸’ 논란이 불거졌다. 그 무렵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을 골프클럽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트럼프는 그 자리에서 “3분기 경제 성장률이 연 5%대일 수 있다”고 말했다. 2%대 성장에 멈춘 한국과 대비되는 풍속도가 아닌가.

한국의 집권층은 최악의 ‘세습 적폐’ 김정은을 만나려고 평양으로 달려가면서도 대기업 총수와의 접촉엔 몸을 사린다. 경제 수장 김동연 부총리가 삼성 수장을 만나기까지 꼬박 1년이 넘게 걸렸다. 그것도 대통령이 먼저 금줄을 걷어낸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작년 이맘때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취임 1주일 만에 한국노총으로 달려갔다. 당시 그의 일성은 “정말 친정에 온 느낌”이었다.

대기업을 적폐로 몰면 투자와 생산 활동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기업은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국부의 원천이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이란 나무가 소득과 일자리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도록 물을 주고 벌레를 제거하는 일이다. 기업과 싸우는 짓은 나무를 베면서 그 열매를 수확하려는 것이나 진배없다.

대한민국은 거친 뽕밭을 푸른 바다로 바꾼 나라였다. 그런 기적의 나라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화살을 쏜 범인을 색출하느라 온몸에 독이 퍼지는 줄도 모른다. 스스로 국가 재앙을 재촉하고 있다.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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