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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구의일상의경제학] 결론 없는 실험만 하는 입시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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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16 23:34:53 수정 : 2018-08-16 23:3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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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 꾸지람에 과외 효과·평준화 등 논문 써 / 수십 년간 학생들 실험 대상 돼 안타까워
미국 하버드대서 유학할 때 지도해주었던 은사를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은사께서 자녀를 모두 명문대에 입학시키신 것을 이야기하다 의외로 아이들에게 과외를 많이 시키신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그러면 과외가 명문대 진학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시느냐”고 물었고, 이에 대한 은사의 답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답변 뒤의 한마디가 충격적이었다.

그는 “한 교수도 경제학자이니 잘 알겠지만 과외가 효과가 있는지 증명하려면 과외를 모두 금지해야 할 텐데 그러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는 “한국은 한때 과외를 금지한 적이 있었다”는 답변을 드렸다. 그러자 그는 “그렇게 좋은 사례를 가지고 왜 논문을 쓰지 않았느냐”는 질책이었다.

은사의 조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만일 어떤 새로운 약이 개발돼 그 효능이 궁금할 때 과학자들은 실험용 쥐를 이용한다. 실험용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눈 후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하되 한 그룹에는 새로 개발한 약을 먹이고, 다른 그룹에는 그 약을 먹이지 않는 것이다. 이때 두 그룹에서 건강이나 수명에 차이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새로운 약의 효과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어떤 약의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 약을 투여하는 집단과 투여하지 않는 비교 집단이 필요하다.

과외의 효과를 증명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 집단의 학생에게는 몇년간 과외를 하도록 하고, 다른 집단에는 못하도록 한 후 두 집단을 비교해야 정확한 과외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1980년대 과외가 금지됐다. 그러다가 90년대부터는 다시 허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80년대에 비해서 90년대에 학원이 집중돼 있고, 가정의 소득이 높은 학생이 대학 입시에서 더 좋은 결과를 냈다면 과외가 효과가 있다는 것이 확실히 증명되는 것이다.

은사의 꾸지람을 들은 후 해당 자료를 모아 허겁지겁 논문을 썼던 기억이 난다. 이를 계기로 평준화와 비평준화가 학생 성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를 했다. 이 역시 중학생들이 시험을 봐서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비평준화 지역이 하루아침에 추첨을 통해 무작위로 고등학교에 배치되는 평준화로 바뀐 후 성적 변화를 비교함으로써 정확한 분석이 가능했다.

학자로서는 사회적인 실험을 통해 세계에 유례가 없는 데이터를 제공해준 우리 정치권이 역설적으로 감사(?)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수십 년간 우리 학생들이 입시 교육의 측면에서 마치 실험용 쥐와 같이 실험 대상이 돼 온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실험용 쥐들은 자신들의 희생으로 더 나은 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위안이나마 얻을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의 입시제도는 수십 년의 실험을 거듭하면서도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는 느낌이다.

논란이 되는 학생부 전형이 과연 고소득 가정의 학생에게 유리한지, 아닌지는 학생부 전형이 없었던 10여 년 전의 입시 결과와 학생부 전형이 존재하게 된 최근 입시 결과를 비교하면 결론이 날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시도하지 않고 결론 없는 실험만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경제학자로서 안타까운 심정이다.

한순구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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