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가를 ‘너’라고 부른다. / 내 안에서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를 그리움이 손에 잡히는 순간이다. // 불안하고, / 초조하고, / 황홀하고, / 외로운, / 이 나비 같은 시간들. // 그리움은 네가 나보다 내 안에 더 많아질 때 진정 아름다워진다. / 이 책은 그 아름다움을 닮으려 한 기록이다. // 아무리 오랜 시간을 지나더라도….”
시인은 그녀에게 남은 ‘나비 같은 시간들’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황홀하고 외롭다’고 개정판 서문에 썼다. 20여년 전 ‘고대근동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해 훌쩍 독일로 떠났던 시인은 뮌스터에서 홀로 살면서 고향의 추억과 서울의 벗들, 독일생활에서 느낀 단상들을 결 고운 언어로 조근조근 일기처럼 산문집에 담았다. 땡볕이 쏟아지는 유프라테스강 지류에서 발굴작업을 하면서, 터키 시골 마을에서 그곳 사람들과 사소한 정을 나누면서, 수만년 전의 유품들을 땀을 흘리면서 정성스럽게 흙을 털어내고 찾아내는 작업에 몰두하는 키 작은 시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139개 짧은 산문과 지인들에게 쓴 9통 긴 편지가 담긴 이 산문집 개정판에는 김혜순 김사인 시인의 초판 추천사에다, 신용목 박준 시인이 발문을 추가했다.
편집자 김민정은 “시인이 머물고 있는 그곳, 독일의 뮌스터에서 홀로 제 생을 정리하고 싶다며 아주 단호하게 그 어떤 만남도 허락하지 않았다”며 “하는 수 없이 아주 간간 어렵사리 시인과 통화를 하며 책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시인의 당부에 따라 ‘모래도시를 찾아서’(산문집),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동화), ‘혼자 가는 먼 집’(첫 시집)도 새로 편집해 다음달부터 차례로 빛을 쏘일 예정이다. ‘시경’을 읽다가 잠이 든 밤에 꿈을 꾸었다는 시인의 ‘어두움, 사무침’.
“버둥거리다가 잠이 깬다. 깨어나면 어둡고 조용하다. 어디를 가려고 길을 나섰던가. 어디 그 사무친 것이 있다고 믿었기에 길을 나서서는 오래 집으로 가지 않는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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