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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으로 투병 허수경 시인, ‘그대는 할말을…’ 산문집 출간

입력 : 2018-08-17 03:00:00 수정 : 2018-08-20 11: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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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출간 ‘길모퉁이의…’ 새롭게 편집
독일에 거주하는 허수경(54·사진) 시인이 산문집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난다)를 펴냈다. 2003년 출간한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새롭게 편집한 개정판이다. 개정판 출간은 말기암 투병 중인 시인이 편집자 김민정 시인에게 자신의 아픈 안부를 알리면서 당부한 일 중 하나였다. 허수경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세상에 뿌려놓은 제 글빚 가운데 제 손길이 다시 닿았으면 하는 책들을 다시 그러모아 빛을 쏘여달라”고 지난 2월 짧은 편지를 보내왔다.

“내가 누군가를 ‘너’라고 부른다. / 내 안에서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를 그리움이 손에 잡히는 순간이다. // 불안하고, / 초조하고, / 황홀하고, / 외로운, / 이 나비 같은 시간들. // 그리움은 네가 나보다 내 안에 더 많아질 때 진정 아름다워진다. / 이 책은 그 아름다움을 닮으려 한 기록이다. // 아무리 오랜 시간을 지나더라도….”

시인은 그녀에게 남은 ‘나비 같은 시간들’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황홀하고 외롭다’고 개정판 서문에 썼다. 20여년 전 ‘고대근동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해 훌쩍 독일로 떠났던 시인은 뮌스터에서 홀로 살면서 고향의 추억과 서울의 벗들, 독일생활에서 느낀 단상들을 결 고운 언어로 조근조근 일기처럼 산문집에 담았다. 땡볕이 쏟아지는 유프라테스강 지류에서 발굴작업을 하면서, 터키 시골 마을에서 그곳 사람들과 사소한 정을 나누면서, 수만년 전의 유품들을 땀을 흘리면서 정성스럽게 흙을 털어내고 찾아내는 작업에 몰두하는 키 작은 시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139개 짧은 산문과 지인들에게 쓴 9통 긴 편지가 담긴 이 산문집 개정판에는 김혜순 김사인 시인의 초판 추천사에다, 신용목 박준 시인이 발문을 추가했다.

편집자 김민정은 “시인이 머물고 있는 그곳, 독일의 뮌스터에서 홀로 제 생을 정리하고 싶다며 아주 단호하게 그 어떤 만남도 허락하지 않았다”며 “하는 수 없이 아주 간간 어렵사리 시인과 통화를 하며 책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시인의 당부에 따라 ‘모래도시를 찾아서’(산문집),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동화), ‘혼자 가는 먼 집’(첫 시집)도 새로 편집해 다음달부터 차례로 빛을 쏘일 예정이다. ‘시경’을 읽다가 잠이 든 밤에 꿈을 꾸었다는 시인의 ‘어두움, 사무침’.

“버둥거리다가 잠이 깬다. 깨어나면 어둡고 조용하다. 어디를 가려고 길을 나섰던가. 어디 그 사무친 것이 있다고 믿었기에 길을 나서서는 오래 집으로 가지 않는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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