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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교칼럼] 우리는 어느날 모두 노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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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12 20:43:45 수정 : 2018-08-12 20: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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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少분단’ 또 하나의 사회문제/ 해결안은 老少가 함께 사는 일/“늙으니 거꾸로 보호받고 싶어/ 부모님의 고독 알아드리세요” 노인문제가 심각하다. 젊은 노인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쉴 시간에 도착한 노인들에겐 불어난 시간만큼의 무수한 문제가 모랫벌처럼 막막하게 펼쳐진다.

며칠 전 있었던 ㄱ양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강은교 동아대 명예교수 시인
ㄱ양: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강의 하나 해주십사하고요.

나: 안 되겠네요, 공교롭게도 며칠 전에 좀 다쳤어요.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군요.

ㄱ양: 어딜 다치셨는데요.

나: 알아맞혀 봐요. 웃을 수 없게 하는 곳. 놀라지 말아요, 갈비뼈예요.

ㄱ양: 어쩌시다가요. 교통사고이신가요.

나: 넘어졌지요. 커튼을 잡아당기러 의자 위에 올라갔다가 미끄러졌어요.

ㄱ양 : 어머. 교통사고가 아니었군요. 불행 중 다행이십니다.

나: 병원에 갔더니, 복대를 하고 가만있는 수밖엔 치료방법이 없다고 해서 입원 대신 딸 집으로 갔지요, 딸이 뼈에 좋다는 홍화씨를 볶고 빻고. 손녀도 자기 방, 책상, 침대를 고스란히 나한테 내놓고, 살살 걸어다니고.

그런데 일주일 넘어 딸 집에서 살다 보니 내 마음에 참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내가 병을 즐기고 있는 거예요. 손녀가 학교에 간 다음엔 딸과 마음껏 이야기도 하고, 마음껏 노트북도 두드리고, 아이들의 과학잡지도 읽고, 딸이 곰국을 끓이는 동안 사위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도 읽고, 읽으면서 요즘 젊은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생각하기도 하고, 쪽파를 써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나는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어요. 조금 뒤 하나둘씩 현관문을 여는 아이들은 할머니 하고 부르며 들어오고. 나는 불현듯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어요. 딸이 결혼과 함께 집을 떠난 이후로 잊고 있던 그 단어를.

ㄱ양: 선생님, 너무 감성적이세요.

나: 젊었을 땐, 아니 어렸을 땐 그렇게 ‘나만의 공간’을 찾아 집이나 가족을 떠나려 하더니. ‘나만의 공간’이란 말은 이제 겨우 일곱 살인 막내손녀의 말이에요. 그런데 늙으니 거꾸로 보호받고 싶어지는 거예요. 젊어선 ‘독립’을 쟁취하느라 야단이더니, 늙으니 ‘비독립’을 쟁취하고 싶은 거라고나 할까. 나의 어머니의 모습도 떠올랐어요. 그래서 말년에 늘 아프셨구나. 병원에 모시고 가면 아무 데도 탈난 곳이 없으니 다시 모시고 가라곤 했었지요. 그러면 어머니는 입원하시겠다고 어린애처럼 나한테 떼를 쓰시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보호받고 싶으셨던 거예요. 고독하고 싶지 않으셨던 거예요. 그때 나는 어머니의 생각과는 반대로, 오히려 시끄러운 ‘당신의 손녀’들이 방해가 될까봐 걱정하곤 했는데.

ㄱ양 : 그러게요. 저희 아버님 생각이 들어요. 저희 아버님도 요즘 들어 자꾸 아프시다고 그러세요. 병원에 모시고 가면 아직 입원하실 단계는 아니고. 당뇨 끼가 있으시니 조심하세요, 해서 약 몇 봉지 들고 돌아온 일이 여러 번 있었어요.

나: 그래요. 잘 전화하지 않던 딸이 이번 일 후로는 잠깐 나갈 때도 전화해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거의 전화하지 않던 사위도 사무실에서 전화를 했더라고요.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아버지께 자주 전화하세요. 아버지의 고독을 만져드리세요.

ㄱ양: 네, 자주 안아드리고 그럴게요.

나: 아녜요. 안아드리라는 게 아니라 그 고독을 알아드리라는 거예요.

그렇다. 노인들은 외로워한다. 남북분단처럼 노소(老少)분단이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문제의 얼굴이 돼 가고 있는 요즘, 노인문제의 해결안은 노소가 함께 사는 일이 아닐까. 대가족제도의 새로운 부활 같은 것이나 함께 살면서 묘하게 분리되는 등 오늘의 주거형태에 혁명적인 변화가 생긴다면 가능한 일일 것도 같다. 그러면 노인의 고독은 물론 집값이 너무 올라 집을 마련하지 못하는 젊은이의 심각한 문제도 해결될 것이고 부모와 함께 사니 맞벌이하느라 벌어지는 온갖 사회적 문제도 해결될 것이고. 꿈일까. 이미 우리 사회는 근대 이후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인가. 아무튼 우리는 모두 어느 날 문득 노인이 된다, 아무리 원하지 않아도.

강은교 동아대 명예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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