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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에서 건져올린… 사랑·인생 그리고 문학

입력 : 2018-08-10 06:00:00 수정 : 2018-08-09 2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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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병철 에세이집 ‘낚 ; 詩’ 아버지는 시인을 어린 시절부터 낚시터에 데리고 다녔다. 너무 어릴 때라 기억도 나지 않는 풍경들이 오래된 사진에 박혀 있다. “아버지와 함께 고무보트를 타고 노을이 엎질러진 강물 위를 미끄러져 가면 물 냄새와 고무보트 냄새, 노 젓는 소리, 역광의 석양으로 새가 날아가는 풍경까지 세상이 온통 아름다웠다.” 아들은 대를 이어 민물과 바다, 어종을 가리지 않는 낚시 풍류객이 되었다. 그를 시인으로 키운 바탕도 아버지가 자연에서 길러준 감성이 밑밥이었을지 모른다. 문학평론도 겸하는 그 시인 이병철(34·사진)이 자신의 다양한 낚시 경험을 사랑과 인생과 문학에 비끄러맨 낚시 에세이 ‘낚 ; 詩’(북레시피)를 펴냈다.

55개 꼭지에 나뉘어 담긴 이야기들이 부제 ‘물속에서 건진 말들’처럼 흥미롭게 흘러간다. 시인은 사랑을 놓쳤던 기억이 아프다. 프로 낚시꾼들이 물고기를 잡았다가 놓아주는 이른바 ‘캐치 앤 릴리즈’(catch and release)를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물고기에게는 관대했지만 당신에게는 그렇지 못했다는 뒤늦은 회한을 고백한다.

“나는 당신에게서 커다란 행복과 마구 뛰어오르는 환희들, 빛나는 순간들을 붙잡아 내 마음에 넣어두었지. 처음에는 크고 아름다운 기쁨들만 챙겨왔는데, 시간이 갈수록 나는 당신의 사소한 실수와 잘못들,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다름들, 작은 서운함과 별것 아닌 다툼들, 조금 엎질러진 말들, 찰나의 찡그린 표정들까지 전부 마음에 담아두는 감정의 사냥꾼이 되어버렸어.”

인간관계에 낚시를 대입하면 선명하게 보이는 게 많다. 일상에서 우리는 모두 낚시꾼의 숙명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어떻게 살피느냐에 따라 사랑의 성패가 좌우되는 것은 당연하다. ‘쇼크리더’란 ‘낚싯줄에 가해지는 장력을 분산시켜 채비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덧매는 줄’인데, 어렵사리 파도치는 악조건에서 간신히 매었다가 한 번 실수로 정작 ‘원줄’을 잘라버린 시인은 다시 헤어진 연인을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 다른 곳에서 뻗어 온 두 줄이었어. …마침내 결코 끊어지지 않을 만큼 단단히 묶였다고 믿게 되었을 때, 내 실수로 우리의 매듭은 끊어져버렸고, 나는 당신을 영영 놓치고 말았네.” 쇼크리더 하나에서도 상처를 되새기는 시인은 “아흔아홉 번의 최선이 아예 없던 것으로 흩어져 버리던 그 여름의 강가에서, 나는 다시 쇼크리더를 맨다”고 쓴다.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 서기장 하응백(문학평론가)은 “이병철 시인에게 낚시와 연애와 문학은 같다”면서 “모두 설렘과 황홀과 절망이기 때문”이라고 책 뒤에 붙였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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