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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하는 ‘인랑’…김지운 감독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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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04 13:26:01 수정 : 2018-08-04 14: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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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하자면, 여름 시장에 내놓기 위해 후반작업을 빠르게 진행하면서 영화를 충분히 들여다볼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러닝타임 압박도 있었고요. 돌아보니 스토리에 대한 좀 더 친절한 전달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김지운 감독을 만난 건 지난달 25일, ‘인랑’ 개봉일이었다. 기대와 긴장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이미 많이 지친 모습이었다. 언론시사 후 혹평에 시달린 데다 개봉 당일 ‘인랑’을 접한 관객들의 실망을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기운이 빠진 탓이었다.

‘인랑’은 ‘신과 함께:인과 연’, ‘공작’과 함께 올 여름 3대 한국영화 기대작 중 하나로 꼽혔다. 전 세계에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일본 만화를 2029년 미래 한국을 배경으로 실사화 한다는 점, ‘장르마스터’로 불리는 김지운 감독이 5년 동안 준비한 SF영화라는 점도 기대를 높인 요인이었다.

하지만 공개된 ‘인랑’은 관객들의 기대에 못미쳤다. 원작의 메시지를 충분히 담지 못했고, 극적 재미를 위해 추가한 인물과 설정들이 오히려 극을 어지럽힌다는 반응이 많다. 원작보다 두드러진 멜로라인과 바뀐 결말도 불만을 샀다. 결국 ‘영화가 끝나면 남는 것은 강동원의 멋짐과 한효주의 빨간 코트 뿐’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성적 역시 부진하다. 개봉 10일째인 3일까지 87만여명이 관람해 손익분기점 600만명에 한참 못미친다. 최악의 경우 100만명도 어려울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영화팬들은 ‘김지운 감독 필모 중 최악’, ‘김 감독이 왜 이런 선택을…’이라며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 감독의 생각은 어떨까.

Q.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집단 안에서 각성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한국 근현대사에는 5·18에 시민들을 학살한 군대와 6월 항쟁 당시 백골단 등이 있었다. 그런 단체를 표본화한 게 특기대와 공안부다. 조직의 부당한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상처와 트라우마 균열은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과연 무엇이 이들을 구원할 것인가. 이 영화에서는 임중경이 친구(한상우), 여자(이윤희), 아버지와 같은 상관(장진태)과 차례로 부딪치면서 성숙하는 행로를 그리려 했다. 유독 벽이나 유리를 깨는 장면이 많다. 통일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신의주까지 기찻길도 통하게 된다. 집단의 틀을 깨고 나가는 개인을 의미한다.”

Q. ‘뜬금포 로맨스’가 패착이라는 지적이 많다.

“안타깝다. 나는 셋을 똑같은 크기로 이야기했다고 생각하는데 관객들에게 왜 멜로만 부각됐는지 복기해봤다. 한상우는 악인으로 설정됐고, 장진태는 이야기의 마무리 역할을 하므로 그 인물들에 대해선 관객들이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만 이윤희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처음으로 개인의 감정이 드러나게 되고, 집단의 이야기 중 그 부분만 개인의 이야기로 넘어와 더욱 생동감 있게 전달됐기 때문에 영화의 강조점처럼 크게 보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또 다른 이유는 관객의 기대와 실제 영화 사이의 간극 때문이 아닐까. 관객들은 SF의 본고장인 할리우드의 화려하고 번쩍번쩍한 이미지를 생각했을텐데 그게 아니고 멜로가 등장했을 때 오는 갭 때문에 실망이 더 컸을 것 같다.”

Q. 남산 타워 장면은 어떤 의미가 있나?

“중요한 모티브가 있다. 임중경과 이윤희가 서로 속고 속이다 동요되는 지점이다. 총격전 직전 구미경이 ‘아무도 믿지 말라’고 말하자 이윤희는 불안해한다. 소방호스에 임중경과 몸을 묶을 때도 불안한 표정이다. 그러다 임중경의 얼굴을 보고 시선이 교차하면서 이윤희의 표정이 믿음으로 바뀐다. 탐색의 단계가 믿음으로 바뀐 것이다. 이후 임중경도 이윤희를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떠나라고 말한다. 장진태와 통화하면서 ‘제 일이다.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말한 것도 처음으로 개인의 의견을 표현한 것이다. 집단에 속한 개인의 각성을 나타내기 위해 그렇게 디렉션 했고 의도대로 찍었다. 그런데 혹평을 보니 혼란스럽다. 영화는 대사로 설명되는 것 외에도 배우의 표정, 미술, 음악이 모두 언어로서 전달되는 것인데, 관객들에게 세심하게 찾아달라고 하는 건 무리인가, 더 대놓고 말을 해야하나, 그럼 어느 정도까지 해야하나 스스로 고민이 필요한 지점인 것 같다.”

Q. 원작과 달리 해피엔딩인 이유는 무엇인가?

“인랑은 원작에 대한 오마주와 새로운 해석 공존하는 영화다. 오시이 마모루의 원작은 어둡고 무거운 세계관과 허무주의가 깔려있는데, 실사 영화화 했을 때 대중적 접근과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힘든 일을 겪은 임중경에게 휴식과 위안, 따뜻한 온기를 주고 싶었다. 또 영화의 ‘과천사태’처럼 한국 현대사에도 국민적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들이 있지 않나. 영화를 통해 희망과 구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원작의 오마주를 끌어들여 한국적으로 재해석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Q. 만족스러운 점과 아쉬운 점은?

“이 영화에서는 두가지를 이뤘어야했다. 스토리와 주제가 한면이고, 또 한면은 비주얼적인 부분이다. 애초에 내가 하고 싶었던 게 강화복 액션을 실사화하는 것이었고, 스펙터클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 신에 대한 성취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토리에 대해선 좀 더 친절한 전달이 필요했던 것 같다. 주제의 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아쉽다.”

Q. 주제가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변명하자면, 여름 시장에 내놓기 위해 후반작업을 빠르게 진행하면서 영화를 충분히 들여다볼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다. 러닝타임 안에서 영화적 안배를 고려했어야 했는데, 비주얼적인 부분에 공을 많이 들이면서 인물들의 본성과 감정선들을 살펴볼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됐는지 논의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단축됐다. 나는 구축됐다고 생각했던 부분인데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Q. 늘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다. 다음 영화의 장르는 무엇인가?

A. 아직은 모르겠다. 당장은 홍보 활동에 집중하면서 ‘인랑’에 대해 복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좀 쉬고 싶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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