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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얼굴은 썩지 않는다”

입력 : 2018-08-02 20:58:40 수정 : 2018-08-02 20:5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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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새 시집 ‘방부제가 …’/ 4대강 등 생태계 파괴 고발
“모든 게 다 썩어도/ 뻔뻔한 얼굴은 썩지 않는다”

최승호(64·사진) 시인이 내놓은 새 시집 ‘방부제가 썩는 나라’(문학과지성사)의 표제시 전문이다. 단 두 행짜리 이 시에서 시인은 방부제를 능가하는 뻔뻔함에 대해 극렬한 반감을 내보인다. 그 뻔뻔함은 식수원으로 활용하는 호수조차 거대한 시궁창으로 만들었다.

“냄새나는 그 물컹물컹한 덩어리를/ 나는 청평호에서 본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그 덩어리들이 불어나면서/ 대청호가 거대한 시궁창으로 변하는 것을/ 악취 속에서 지켜봤다고 한다// 이 괴물체는/ (누구라고 밝히지 않겠으나)/ 부패한 누군가가 우리에게 안겨준 것이다/ 중음의 냄새 나는 중음신들처럼/ 참을 수 없는 악취를 풍기고 있는 괴물// 도처에서 점점 불어나는 이 물컹한 괴물들과/ 둥둥 떠다니는 괴물들의 사체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부패한 그놈은 오늘도 흐물흐물 웃고 있다”(‘큰빗이끼벌레는 그놈의 아바타다’)

환경운동에 몸담았던 시인이고 보면 호수와 강의 부패는 더욱 참을 수 없는 이 시대 뻔뻔함의 표징일 터이다. 수많은 생명이 깃든 생태계의 보금자리를 한갓 돈벌이의 대상으로만 보는 이들을 지켜보는 시인의 마음은 참담하다.

“건설업자에게/ 산이란 모델하우스 같은 것// 대운하의 물길을 따라서/ 산들이 떠내려간다// 화물선을 댐 위로 들어 올리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 골리앗크레인은 백두산도 들어 올린다// 건설업자에게 강바닥은/ 금광 같은 것// 로봇물고기는 녹조라떼를 마시는데/ 죽은 물고기는 모래톱에 빨래를 넌다” (‘대운하’)

강과 호수에만 죽음이 찾아든 게 아니다. “이제는 거대한 콘크리트로 뒤덮인 새만금// 해 진다// 꼬막// 울음소리”(‘꼬막’) 시인은 꼬막이 운다고 썼지만, 물길이 막혀 메마른 개펄에서 이미 죽은 지 오래인 꼬막의 울음은 환청일 따름이다. 바닥을 파면 어디에서나 부패한 생명들의 악취가 올라온다.

“먹고 번식하라/ 종족을 번식시키며 먹어라/ 그것밖에 너희들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괌 과일박쥐 튀김 요리’)

시인이 박쥐 튀김 요리를 붙들고 설파한 이 짧은 시는 사실 인간을 포함한 지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유효한 DNA 명령이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유일한 단서는 ‘먹고 번식하는 그것’ 외에 더 무엇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 과연 작금 인간들에게는 무엇이 더 남았을까. 시인은 두 줄짜리 짧은 시로 일갈한다. “고개를 들면/ 거울이 따귀 때리는 아침”(‘절망은 제 얼굴을 안 보려고 술에 머리를 처박는다’)이라고.

최 시인은 이번 시집을 내면서 2003년 열림원에서 초판을 낸 뒤 절판된 시집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도 문학과지성사에서 함께 복간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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