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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현장+] "쓰는 사람도 못 봤는데요" 예고된 사태 '따릉이 헬멧'..무료대여로 사라진다

입력 : 2018-07-29 11:00:23 수정 : 2018-07-29 12: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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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따릉이 헬멧 대여소…‘높아가는 분실률’ / 찾아보기 힘든 헬멧 이용자 / 시민의식 탓하기에는 무리 / '탁상행정' 비판도 / 예고된 사태라는 지적도 / 헬멧 착용을 의무화 자체가 문제로 지적 / 자전거 확산 가로막는다는 비판도

26일 서울 여의도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1번 출구 앞 따릉이 관리 요원이 굵은 땀을 흘리며 바구니에 든 헬멧을 정리하고 있다. 헬멧은 보관함이나 자전거 바구니에서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다.

“깨끗해도 쓰는 사람들이 드문데, 망가지고 깨지고 지저분한 느낌이 들면 누가 쓸려고 하겠어요? 그리고 이 폭염 속에서 조금만 타도 땀이 나는데, 남이 쓴 것을 또 쓰고 싶은 사람이 있겠어요?”

서울시가 공공 자전거 ‘따릉이 헬멧’ 무료 대여한 지 일주일 만에 55개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일부터 25일까지 영등포구 여의도 따릉이 대여소 30곳에 안전모 1,030개를 비치했다. 그러나 26일 전수 조사 결과 55개(5.3%)가 분실된 것으로 확인됐다.

따릉이 헬멧은 오는 9월 28일부터 헬멧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자전거 이용자들을 위해 준비 했다. 시범운영 중인 ‘따릉이 헬멧’이 이용자는 없이 분실 사고만 잇따르면서 예고된 사태라는 지적이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1번 출구 앞 따릉이 대여소에 비치된 헬멧이 군데군데 비어 있다. 헬멧은 보관함이나 자전거 바구니에서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다.
 
지난 3월 행정안전부는 자전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자전거 운전자와 동승자가 헬멧 등 안전장비를 착용하도록 도로교통법을 고쳤다. 계도 기간을 거쳐 시행을 앞둔 상태다. 헬멧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벌금 부과 등의 처벌 규정은 없다. 그러나 ‘공공 자전거’를 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헬멧을 비치하지 않을 경우 '위법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6일 찾은 여의도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인근 따릉이 대여소는 대체로 한산해 보였다. 따릉이와 헬멧 보관함은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따릉이 앞 바구니에는 헬멧이 들어 있거나 비어 있기도 했다.

잠시 뒤 따릉이 대여소에 한 시민이 찾아왔다. 헬멧 보관함을 살펴보기만 했다. 한 시민은 “헬멧을 쓰면 머리에 땀 냄새가 배 쓸 생각이 없다”고 했다. 헬멧을 쓰지 않은 채 그 자리를 떠났다.
26일 서울 여의도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1번 출구 앞 따릉이 대여소에 헬멧이 자전거가 비치되어 있다.

현재 시행 중인 따릉이 헬멧 무료 대여 서비스다. 헬멧도 따릉이를 빌려 타는 것처럼 쉽게 이용할 수 있어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시민의식을 믿고 시작한 따릉이 헬멧 무료 대여 서비스를 시작 일주일만 사라지는 등 분실률이 높아지면서 예상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시는 당초 시범운영 기간 중 헬멧 이용률, 분실·파손 수준, 시민 만족도와 안전성 등을 따져본 뒤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할지를 신중히 검토할 방침을 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높아가는 분실률에 시범 사업을 종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다.

여의도에서 직장을 둔 이 모씨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라며 “따릉이야 눈에 띄어 가져갈 수 없겠지만, 헬멧을 누구나 쉽게 가져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강공원을 찾은 한 연인은 헬멧 보관함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한참 만지더니 쓰지 않은 채 헬멧이 바구니에 든 따릉이만 빌려 갔다. 이날도 여의도 공원에서는 따릉이 헬멧을 쓴 사람을 보지 못했다.

시는 헬멧에 태그를 부착해 위치 추적과 신원 확인이 가능한 대여·반납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고려했었지만, 시스템 운용비용이 헬멧 구매 비용보다 훨씬 크다는 결과로 별도 장치 없이 운영하기로 했다.

한강공원에서 만난 한 시민은 “깨끗한 것만 골라 쓸려고 해서 일회용으로 전략 할 수도 있어요. 누가 쓴지도 모르는 헬멧을 다시 쓰고 싶어 하겠어요”라며 “소독한다고 해서 바로 소독되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라고 지적했다.
26일 서울 여의도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1번 출구 앞 따릉이 관리 요원이 굵은 땀을 흘리며 자전거를 옮기고 있다.
26일 서울 여의도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1번 출구 앞 따릉이 관리 요원이 굵은 땀을 흘리며 바구니에 든 헬멧을 정리하고 있다. 헬멧은 보관함이나 자전거 바구니에서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다.

따릉이를 상징하는 녹색, 흰색, 회색을 적용한 디자인으로 제작된 따릉이 헬멧은 약 250g이 된다. 헬멧 뒷면에는 반사지가 부착돼 야간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여름철 헬멧이 땀과 비에 젖으면 위생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시에서는 위생을 위해 주 3회 이상 소독하고, 악취가 심한 헬멧은 회수해 탈취·소독할 계획을 밝혔지만, 이용자인 시민들은 땀에 젖은 헬멧을 재사용하기에 망설여지게 한다.

서울시가 마련한 헬멧 가격은 1개에 1만 4,000원 정도다. 현재 2만 대인 따릉이 대수와 이용률을 고려할 때 3만 개의 헬멧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헬멧을 서울 전역에서 무료 대여할 경우 헬멧 구매 비용으로만 4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각종 비용을 세탁·교체·유지·보수와 인건비도 추가한다며, 한 해 따릉이 헬멧 운영에만 예산 10억원가량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26일 서울 여의도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1번 출구 앞 따릉이 대여소에 헬멧이 바구니에 담겨 있다. 외부에 노출된 헬멧이 비가 올 경우 쉽게 젖을 수 있어 사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따릉이 이용자가 헬멧을 갖고 다니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아 의무화가 시행될 경우 공공 자전거 이용을 꺼릴 수도 있다. 정작 시민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중으로 예산 낭비로 이어진다는 문제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가까운 거리 상점이나 시내를 이용하는데도 헬멧을 착용까지 의무화하면 생활형 자전거 이용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헬멧 착용 강제가 아니라, 안전교육이 우선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덴마크의 경우 성인에게 안전모 착용을 강제하지 않지만 2015년 기준 OECD 국가 중 자전거 사망률이 가장 낮다. 자전거 친화적 도시 설계는 물론 자전거 교육에 철저하기 때문이다. 자전거 이용률이 높은 유럽 나라들 대부분은 안전모 착용을 의무화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보다 현실에 맞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헬멧 의무 착용보다는 자전거 전용도로 등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도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한결같이 강조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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