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분단 성찰… 현대문학 ‘광장’ 연 시대의 서기

입력 : 2018-07-23 21:19:04 수정 : 2018-07-23 23:50:4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한국문단의 거목 최인훈 작가
“나는 시대를 기록하는 서기의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4·19가 일어난 그해는 역사라는 큰 조명등이 우리 삶을 비추어주었기 때문에 덜 똑똑한 이도 총명해질 수 있었고, 영감이 부족한 예술가들도 일급 역사관이 머리에 떠오르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데올로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남과 북 어디에도 정주할 수 없었던 젊은이의 행로를 그린 ‘광장’의 작가 최인훈. 그가 23일 오전 10시46분 별세했다. 향년 84세. 4개월 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그는 문학교과서에 가장 많이 수록된 작품이자 국내 소설 중 가장 활발하게 해외에 번역 소개된 기념비적인 대표작 ‘광장’의 세 번째 개정판 전집을 발간하고 등단 50주년을 앞두었던 2008년, 자신은 ‘시대의 서기’였을 뿐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최인훈은 1934년 함북 회령에서 목재상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해방과 더불어 밀어닥친 소련군의 진주로 함경남도 원산으로 온 가족이 강제이주를 당했고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피란 수도 부산행 해군함정 LST 편에 몸을 실었다. 다시 환도하는 대학을 따라 서울에 정착해 이후 대학 공부(서울대 법대 중퇴)와 통역장교로 복무한 6년간의 군 생활에 이르기까지, 최인훈은 말 그대로 해방, 전쟁, 분단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해온 표징이었다는 평가다. 그는 1959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광장’을 비롯해 ‘회색인’ ‘서유기’ ‘총독의 소리’ ‘화두’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형식의 소설과 희곡, 평론과 에세이를 발표하며 한국 현대문학의 증인으로 살아왔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생전에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였다고 할 수 있다”고 최인훈과 그의 대표작을 상찬했다. 최인훈은 ‘광장’ 발표 이후 오래 침묵을 지키다가 1994년 장편소설 ‘화두’를 발표하면서 창작 일선에 복귀했다.

그는 이 책을 발간하는 간담회 자리에서 “가혹하게 말하자면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진리가 바깥세계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어느 당근이 맛있을까 기웃거리다 죽어간 인물이지만 ‘화두’의 세계에서 한 인간의 구원과 생존의 열쇠는 바깥세계의 객관적인 조건에 있지 않다”면서 “아무리 세계사적 변동이 급격해도 강인하고 주체적인 정신을 확보한 인간을 죽이진 못한다”고 말했다.

최인훈은 2003년 서간체 형식을 띤 소설 ‘바다의 편지’를 발표했고, 전위적이고 심미적인 미발표 소설들이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동인문학상,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 서울극평가그룹상, 이산문학상, 박경리문학상 등과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영희 여사와 아들 윤구, 윤경씨가 있다. 발인과 영결식은 25일 오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진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