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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일 놓을 수 있나요"…누군가에겐 더 가혹한 폭염

입력 : 2018-07-23 18:46:32 수정 : 2018-07-24 07: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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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노동자들 숨이 턱턱 / 근로 현장 ‘더위와의 사투’
“덥다고 일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짬짬이 쉬어가면서 하는 수밖에요.”

전국이 불한증막을 방불케 할 정도로 무더웠던 23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 건설현장에서 만난 작업반장 황모(53)씨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쳤다. 하루 중 가장 덥다는 오후 2시보다는 그나마 조금 나아졌지만 기온은 여전히 34도를 웃돌았다.

지난 주부터 전국 대부분 지역에 발령된 폭염특보(주의보·경보)는 이날도 이어졌다. 폭염주의보는 하루 최고 기온이 33도, 경보는 35도 이상인 날이 이틀 넘게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된다. 건설현장 등 야외에서 일하는 이들은 더위와 ‘사투’를 벌여야 한다.

◆폭염에도 일해야 하는 사람들

마포구 건설현장에서는 황씨를 포함해 근로자 열댓 명이 한창 일을 하고 있었다. 공사장에서 으레 들리는 큰 소음마저 더위에 지친 듯 길게 늘어졌다. 황씨는 “날이 이렇게 더우면 아무래도 작업 속도가 더뎌지고, 같이 일하는 사람끼리 다투는 경우도 종종 생기기 때문에 힘들다”고 털어놨다.

같은 시각 홍익대 앞 삼거리에서는 환경미화원 박모(61)씨가 길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쓰레받기에 쓸어 담고 있었다. 박씨의 형광조끼 속 티셔츠는 물을 끼얹기라도 한 것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오후 3시부터 10시까지 일한다는 그는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웃어보였다.

실내 근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날 동대문구에 있는 홈플러스 동대문점 주차장에서 만난 이모(68)씨의 근로 환경은 열악했다. 주차장은 차량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이씨는 구석에 나뒹구는 카트를 모으며 “차 시동을 켜 놓고 장 보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 가이드라인 효과 ‘글쎄’

폭염은 야외 근로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발생한 온열질환자 6500명 중 약 40%가 낮 12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 실외에서 일하다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올 들어선 이달 21일까지 온열질환자가 1043명 나왔고, 그중 10명이 사망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폭염특보가 발령된 날 야외 근로자에게 반드시 휴식시간을 주도록 산업안전보건 규칙을 고쳤다. 사업주는 근로자들이 쉴 수 있는 그늘진 장소를 마련하고 물과 소금 등을 비치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5년 이하 징역형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8일 발표한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가이드라인’은 좀 더 구체적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업주는 폭염특보 발령 시 1시간당 10분(주의보)∼15분(경보)의 휴식시간을 줘야 한다. 폭염경보 단계에서는 오후 2∼5시 작업은 가급적 중단하고 시원한 물 등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이 준수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얼마 전 20대 근로자 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정부가 더위나 미세먼지 같은 악천후에 대비해 내놓은 정책들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는 응답은 33.9%에 불과했다. 전재희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정부가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기 식히는 쪽방촌 서울과 강릉 등 곳곳이 111년 만에 가장 더운 아침을 맞은 23일 서울 영등포소방서 현장대응단 소방관들이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을 찾아 조금이나마 열기를 식히기 위해 호스로 골목길에 물을 뿌리고 있다.
남정탁 기자
◆무더위에 더욱 취약한 쪽방촌

폭염이 두려운 건 근로자뿐만이 아니다. 제대로 된 냉방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고 위생상태도 좋지 않은 낙후 주거지역 주민은 무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취재진이 지난 19일 찾아간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이 대표적이다. 마을 전체가 마치 찜통에 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쪽방촌 골목의 한 방문을 열자 열기와 함께 진한 땀냄새가 물씬 풍겨나왔다. 6.61㎡(약 2평) 남짓한 방에서 집주인 손모(57)씨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었다. 손씨는 “우리 집에는 씻을 수 있는 화장실이 있어 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열기 식히는 쪽방촌 서울과 강릉 등 곳곳이 111년 만에 가장 더운 아침을 맞은 23일 서울 영등포소방서 현장대응단 소방관들이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을 찾아 조금이나마 열기를 식히기 위해 호스로 골목길에 물을 뿌리고 있다.
남정탁 기자
골목 한편에서는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부채질로 겨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으로 고초를 겪은 김옥순(89) 할머니도 그중 한 명이다. 김 할머니는 “이렇게 날이 더우면 집보다 골목 그늘에 나가 앉아 있는 게 차라리 낫다”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주민 대부분은 인근 교회에서 열리는 예배를 빼먹지 않는다. 설교를 듣는 두 시간 남짓이나마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어서다. 얼마 전부터 쪽방상담소가 주민에게 하나씩 나눠주는 얼음물 페트병도 큰 힘이 된다. 그러나 더위와 함께 기승을 부리는 악취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

김주영·김청윤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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