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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직격탄 맞은 편의점] "나는 최저임금을 준수하는 편의점주입니다"

입력 : 2018-07-23 19:40:35 수정 : 2018-07-23 19: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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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6년째 운영, 점주의 항변 / "예측 불가능한 인건비 인상… 뒤통수 치는 격" / 주인의 노력 따른 매출 상승효과 낮아 / 편의점 매출액·운영비는 매년 엇비슷 / 타업종보다 인건비 상승에 민감한 편 / 상당수 점주 버틸 재간없어 문 닫을판 /‘코브라 역설’처럼 부유 점주 확장 기회 / 터도 안 닦고 집 짓나 일의 순서 잘못돼 / 필요하면 관련법 손질, 충격 줄였어야 / ‘서민 돕겠다’는 정책들 대책 없으면 / 되레 곤란하게 해 신중한 접근 필요 / 정부 당장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을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 8350원(10.9% 인상)을 놓고 후폭풍이 거세다. 나는 최저임금을 준수하는 자영업자다. 서울 도심에서 국내 편의점업계 1, 2위를 다투는 대형 A업체의 한 편의점을 운영한다. 올해 최저시급은 7530원이다. 하지만 나는 시간당 7800~8000원을 아르바이트(알바) 직원에게 주고 있다. 주휴수당과 4대보험, 퇴직금도 규정대로 챙겨 주고 휴게시간도 보장해 준다. 자랑하고 싶지는 않다. 1만2000개가 넘는 전국 A편의점 중에 매출액 상위권에 드는 점주라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규정을 지키지 못하는 다른 편의점 점주들을 결코 비난하고 싶지 않다. 그분들이 일부러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지난 6년간 편의점을 여러 개 운영하면서 현실이 간단치 않다는 걸 경험했다.
◆왜 편의점업계만 호들갑일까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르자 수많은 자영업이 힘들다고 하지만, 유독 편의점업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누구는 ‘편의점을 운영할 정도면 먹고살 만한 사람들 아닌가’라고 하고, 어떤 이는 ‘월 매출이 3000만원이나 한다면서 최저임금 때문에 못살겠다고 엄살 부리느냐’고도 한다. 모두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속사정을 알면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음식점 등 다른 업종에 비해 편의점은 주인 노력에 따른 매출 상승효과가 아주 낮은 업종이다. 예컨대 식당에선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 새 메뉴 개발과 재료비 절감, 음식값 인상, 직원이나 반찬 가짓수 축소, 서비스 질 제고 등을 통해 대응할 수 있다. 편의점은 그러기 힘들다. 점주 마음대로 물건값을 조정할 수 없고, 손님이 친절도 등 서비스를 따져 찾는 곳도 아니다. 24시간 문을 여느라 직원 감축도 쉽지 않다.

반면 매출액과 운영비용은 매년 엇비슷하다. 임대료도 일부 악덕 건물주를 제외하면 올라봐야 연 5% 이내다. 점포 운영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그러니 다른 고정비용인 인건비 상승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나도 처음 편의점을 열었을 때는 알바 두 명 급여로 월 250만원이면 됐다. 지금은 350만원이 나간다. 최저임금이 이렇게 올라가면 여유로운 점주들 빼고서는 상당수가 버텨낼 재간이 없다.
예컨대 한 달에 3000만원 매출을 올리는 편의점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와∼’ 하는데 우리 업계에선 ‘개털’로 친다. 답이 안 나오는 편의점이다. 서울에서 편의점 주인이 10시간, 알바 2명이 나머지 14시간을 일한다고 할 때 한 달에 못해도 5000만원 매출을 올려야 한다.

왜 그런지 따져보자. 전체 매출에서 상품원가를 뺀 판매이익이 보통 30%가량이다. 이 이익의 35%를 본사가 가맹수수료(기본 계약서상 배분율 기준, 본사와 점포마다 실제 수수료율과 지원조건 등은 제각각)로 가져간다. 약 1000만원(5000만원*0.3*0.65)이 남는다고 치자. 다시 월 임대료 250만∼300만원에 직원 인건비가 350만∼400만원 든다. 여기에 전기료와 유지관리비 등을 내고 나면 점주는 300만원 안팎을 손에 쥔다. 이 정도 벌이에 만족하면 상관없지만 더 벌려면 결국 인건비를 아껴야 한다. 점주가 더 많은 시간 일하거나 가족을 투입하는 수밖에 없다.

편의점주 입장에선 수수료와 임대료야 사실 해마다 크게 달라질 게 없는 고정변수이지만 예측 불가능한 인건비 인상은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는 충격과 같다. 지금도 점주 10명 중 3∼4명은 일하는 시간을 따졌을 때 최저임금도 안 되는 수입일 것이다. 물론 목 좋은 곳이나 여러 점포를 소유하며 많이 버는 점주는 어마어마하게 번다. 그 정도로 양극화가 심하다. 
◆최저임금 상승과 ‘코브라의 역설’

며칠 전 점주 서너 명을 만났는데 모두 자리 잡고 잘사는 사람들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화제로 올랐는데 그들은 “내년에 좋은 점포 많이 나오겠다”며 기회라고 반기더라. 매출액이 고만고만한 점주들은 직원을 줄이는 대신 본인이 더 뼈 빠지게 일해야 한다. 그러다 더는 못 버티고 점포를 내놓으면 여유 있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그런 곳을 접수해 영역을 확장한다. 부유한 점주들이 요즘 표정관리하는 이유다.

한마디로 거칠게 얘기하면 정부가 가진 사람들만 더 잘살게 해주는 꼴이다. 코브라의 역설(Cobra Paradox)이 따로 없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시절 맹독성 코브라가 많아 인명 피해가 잇따르자 코브라의 머리를 잘라오면 상금을 주기로 한 정책을 내놓았다. 시행 초기 코브라가 줄다가 다시 늘었다. 이유를 알아봤더니 사람들이 포상금을 노리고 아예 코브라를 사육하고 있었다. 포상금을 없애자 코브라가 아무 데나 버려지면서 그 수가 정책 시행 전보다 훨씬 늘었다고 한다.

서민들을 돕겠다고 한 최저임금 정책이 너무 대책 없이 질주하면 오히려 서민을 더 힘들게 내몰 수 있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 영향을 받는 업주들은 발빠르게 직원 감축과 원가 절감, 가격 인상 등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나도 별수 없었다. 24시간 열지 않지만 매일 2인 근무시스템으로 운영하던 다른 곳 편의점을 얼마 전 상시 1인으로 줄였다. 결국 해당 점포는 2년도 안 돼 상시 근무자가 3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 남은 직원은 힘들겠지만 잘린 두 사람에 속하지 않는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일할 것이다. 매장이 좀 어수선해져 매출은 줄겠지만 기껏 5%나 줄어들까? 그래 봐야 매출 순이익을 감안하면 한 사람 인건비의 절반도 안 된다. 그러니 손쉽게 직원을 내보내는 쪽을 택한다. 우리 점포의 인력 운용시스템을 매번 선진화시켜 주는 정부에 고개 숙여 감사라도 드려야 할 지경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어려운 사람만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편의점 알바 등을 통해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해 온 가난한 대학생들을 봐라. 그 젊은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겠나. 편의점업계만 해도 이제 웬만하면 대학생을 채용 안 한다.

◆국가는 통계 밖의 사람들 삶을 살펴야

이 업계에 뛰어든 지 6년째인데 초창기 때와 알바 채용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에는 알바를 하겠다고 찾아온 사람을 그냥 썼다. 요즘은 지원자가 몰려 가려 뽑는다. 최근 새로 직원 2명을 뽑는데 30명이나 몰렸다. 대부분 서울에서 편의점 알바 경험이 있었다. 특히 과거와 다르게 대학생과 취업준비생뿐 아니라 고학력에 번듯한 직장과 자영업 경력을 가진 40대 중·후반 구직자가 적지 않았다.

솔직히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직원을 고를 수 있어서 좋지만 알바 자리마저 절실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급여가 두 달치 밀리거나 점주가 최근 들어 부쩍 여러 사정을 대며 급여를 깎으려 했다는 이유로 일하던 편의점을 그만둔 사람이 수두룩했다. 지원자들에게 편의점 근무 당시 조건을 들어보니 거의 모두 최저시급을 받았단다. 그러나 4대 보험 가입자는 절반에 그쳤고, 주휴수당을 규정대로 받은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본사의 직영점급 점포를 제외한 일반 가맹점의 알바 직원에겐 4대 보험이나 주휴수당이 먼 나라 얘기다. 짐작하건대 최저시급을 주는 편의점도 서울권을 벗어나면 10곳 중 5곳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꽤 진보적 성향의 점주도 알바직원에게 4대 보험을 안 주고 있다. 일종의 깨어 있다는 사람도 그런 현실이다.
◆최저임금 인상 순서가 잘못돼 탈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집을 지을 때도 터를 닦은 뒤 기둥 세우고, 벽 만든 다음 지붕 올리고 하잖나. 최저임금 인상은 일종의 기둥을 세우는 것인 만큼 먼저 자영업자들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터부터 제대로 닦았어야 한다.

먼저 정부가 관계 부처를 비롯해 프랜차이즈 본사, 신용카드 회사 등과 협의해서 필요하면 관련 법도 손질하고 충격파를 최소화할 기반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편의점업계의 경우 담배 판매만 하더라도 카드 수수료와 소득세를 면제해 준다든지 하면 최저임금 인상분을 상쇄할 여지가 생긴다.
편의점 매출이 1억원이라고 하면 다들 놀라는데 이 중 40%가 담배 판매분이다. 하지만 4500원짜리 1갑 기준으로 카드 수수료 등을 빼면 이익이 200원도 안 된다. 많이 팔아도 남는 게 없는 ‘뻥매출’이다. 담배를 매출액에서 제외해 주면 카드 수수료 구간이 낮아지고, 소득세 혜택에다 영세업자로 인정받는 것도 수월해져 인건비 상승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그나마 가맹 본사들이 진입 문턱이 낮은 편의점업계의 제살 깎아먹기식 과당경쟁을 초래했던 ‘타 브랜드 근접 출점’을 제한키로 하고 정부와 협의하기로 한 점은 반가운 소식이다.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영세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바짝 마른 가슴에 단비가 돼 줄 실효성 있는 정책들을 마련했으면 한다.

*서울에서 6년째 편의점을 운영하는 A(46)씨와의 인터뷰 내용 등을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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