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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역사] (7월23∼29일) ‘열월(熱月)’에 꺼진 대혁명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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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22 21:13:05      수정 : 2018-07-22 21:13:05
1794년 7월27일 프랑스의 국민공회에서 ‘테르미도르 반동’이 일어나 프랑스혁명이 막을 내린다. ‘테르미도르’란 혁명력으로 ‘열월(熱月)’이었으니 대혁명의 불길이 하필이면 열월에 꺼진 모양새다.

그 바람에 혁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만 명을 살해했던 막스밀리앵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이 단두대에 올랐다. 그가 피에 굶주린 살인마인가, 약자인 민중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 쓰러진 정의한인가 하는 논쟁에는 아직도 정답이 없다. 젊은 시절 “사형을 구형해야 할까봐 두려워” 검사를 마다하고 변호사를 택한 그는 혁명이 발발한 이후에도 제헌의회에서 줄곧 사형폐지론을 주장했다.

그러던 로베스피에르가 루이 16세의 사형 여부로 논란이 일자 “조국이 살아야 하므로 루이는 죽어야 한다”고 주장해 이를 관철시켰다. 그것을 시작으로 혁명동지들마저도 단두대로 보냈으니 너무 비극적인 삶의 역전이었다.

그런 로베스피에르를 제대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그가 사라지고 난 무대에서 그의 면모를 더듬는 것이 쉬울 수 있다. 그와 동료들이 단두대에서 사라지자 그 단두대는 국민들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로베스피에르가 최후의 순간까지 주창했던 가난한 국민들의 투표권 등 권익도 사라졌다.

그래서 대혁명은 고작 귀족들이 지배하는 나라를 부르주아들이 지배하는 나라로 바꾼 것으로 끝난 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테르미도르 반동파’들이 부패로 악명을 날리게 된 것도 시간 문제였다. 실은 그들이 자신들의 부패 사실이 로베스피에르에게 들키자 서둘러 선수를 친 면도 없지 않았다.

그 반동의 주역이라 할 수 있는 폴 바라스는 툴롱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백 명의 주민을 학살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등 각종 비리로 로베스피에르에게 소환된 상황이었다. 그를 도왔던 조제프 푸셰는 정보를 팔아먹는 데 눈을 뜬 최초의 정보담당자(경찰총장)로서 악명을 날렸다. 그는 로베스피에르뿐 아니라 나폴레옹을 몰락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양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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