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정길연의사람in] ‘이반’은 없다

관련이슈 칼럼 , 정길연의 사람in

입력 : 2018-07-20 21:52:09 수정 : 2018-07-23 09:46:2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가까운 지인에게 ‘ㅇㅇ △△△’라 불릴 때가 있다. ‘ㅇㅇ’은 내가 사는 동네이고, ‘△△△’는 특유의 발성과 제스처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되고 하는 여배우다. 재미 삼아 놀리는 것이려니 싶지만, 외모로든 지명도로든 그 배우 근처에도 못 가는 수준이니 어쩌면 노골적인 핀잔일지 모르겠다.

시작은 M이었다. M의 생활 철학은 지극히 ‘보통스러운’ 일상의 구현이다. 평소 나의 자유주의 성향을 살짝 부담스러워했던 M은 내 산책 패션을 꼬집었다. 편한 대로 입은 에스닉 스타일과 차양 달린 모자와 시력보호용 선글라스가 튄다나. 말하자면 이웃의 입에 오르내리기 딱 좋은 조합이라는 것이다. 절간도 수도원도 아닌 마당에, 과연 동네 분위기에 걸맞은 패션이 따로 있는 것일까.

M은 생의 표준 규격을 머릿속에 그리고 산다. 스스로 ‘스탠더드’라고 믿고 있기도 하다. 내 눈에는 스탠더드에 대한 강박보다 고정관념과 편견이 일으킬 오작동이 더 위태로워 보인다. 세상에는 자신의 가치기준과 도덕률을 진검처럼 휘두르는 무수한 ‘일반’이 존재한다. 그들은 비슷비슷, 고만고만하지 않은 사람 혹은 상태를 불편해한다. 단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때로 비난하고, 혐오한다.

아스팔트마저 녹여버릴 기세의 폭염도 버거운데, 온 사회가 수십 개의 벌통을 들쑤셔놓은 것 같다.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주장하고, 대립하고, 충돌한다. 강자와 약자의 갑을 분쟁이 있고, 기득권의 인식 전환을 촉구하는 촛불이 있고, 개인의 취향과 신념을 지키려는 목소리가 있다. 한쪽에서는 난민 체류를 두고 갈라진 공방이, 또 한쪽에서는 무지갯빛 퀴어 축제를 둘러싼 소동이 시끌시끌하다.

M의 스탠더드와 함께 자칭 ‘이반’인 J가 떠오른다. J는 성정체성을 커밍아웃한 최초의 북한이탈주민이다. 난민으로 성소수자로 이중의 고통을 겪었던, 지금도 겪고 있을 J. 사선을 넘게 한 동력은 단 하나, 자기답게 살며 행복해지려는 간절함이었다고 했다. 그는 행복해졌을까.

타인의 권익과 법의 테두리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모습대로 살 권리가 있다. 나와 다르다고 아무렇게나 던지는 시선은, 손가락질은, 무례한 언어는 ‘다름’에 맞서는 또 다른 ‘다름’이 아니다. 폭력이다. 그들이야말로 틀린 것이다. 인간은 어차피 다 다르게 태어났다.

정길연 소설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