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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공은 둥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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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20 21:52:12 수정 : 2018-07-20 21: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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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축구공 완벽한 조화 의미 / 다루는 사람따라 결과 달라져 / 물리학적으로 둥글다 단언해도 / 철학의 역설은 성찰·실천 독려 월드컵이 끝났다. 결승전 승자가 가려진 지 며칠이 지났지만, 꼬박 한 달 동안 야간 중계 경기를 시청했을 축구 팬들에겐 ‘고∼올’ 소리가 아직 귓가에 여운처럼 남아있을 터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 축구 문화의 발전을 위한 성찰의 시간을 가질 때다.

게임 형식을 갖춘 모든 스포츠의 동작은 자연적이지 않다. 따라서 문화적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자연적 동작은 운동 경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빨리 달리기 위해서는 보폭을 유지하며 발을 딛고 박차고 나가는 모든 비자연적 동작을 개발해서 체화해야 한다. 공놀이에서는 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기본 자세를 연습해서 체화해야 한다. 신체라는 자연의 바탕 위에서 비자연적 동작을 문화적으로 길러내는 것이 스포츠이다. 예술이 문화라는 말과 밀접한 것 이상으로 스포츠는 문화의 본질적 의미와 밀접하다. 전통적 창작 예술이 대상물이라는 작품을 구성해가는 것이라면, 스포츠는 인간 신체의 동작을 창의적으로 구성해가는 것이다.
김용석 철학자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서 잊고 있지만 스포츠 문화 분야에서도 축구는 유별나다. 다른 구기 종목에서는 손을 사용한다. 나아가 야구, 테니스, 하키처럼 도구를 활용해 손의 능력을 확장한다. 하지만 축구는 공을 다루기에는 아주 부자연스런 발을 사용한다. 직립동물인 인간에게는 손으로 다루는 것이 자연적인 데도 말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얼른 보기에 투박하고 원시적이며 누구나 쉽게 할 것 같은 축구가 사실은 오랜 문화화 과정을 거쳐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축구의 역설이 있다.

축구의 이런 문화적 특성과 연관해서 우리가 상기해야 할 축구의 명언이 있다. ‘공은 둥글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많이 쓰인 이 말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유래한다. 당시 세계 최강 팀은 헝가리 팀이었다. 우리나라에 9대 0 참패를 안겨주었지만 조별 리그에서 독일도 예외 없이 8대 3으로 대파했다. 하지만 결승에서 헝가리를 다시 만난 독일은 2대 0으로 지다가 3대 2로 역전승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듯 공은 둥글다는 말은 축구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뜻한다. 공이 구체이기 때문에 이런 비유를 한 것인데, 여기서 우리는 공을 형성하는 기하학적 도형인 구(球)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각진 입체도형과 달리 구의 표면에는 직선과 단면이 없다. 구는 완벽한 곡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는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의미한다. 그 조화는 무한히 지속되는 원주율(π)처럼 무한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공은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이미 제공하고 있다. 그런 가능성 가운데 무엇이든 붙잡는 건 사람의 능력이다.

공의 조화가 제공하는 가능성을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을 다루는 사람도 균형과 조화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곧 자신이 조화로운 공이 돼야 한다. 그러면 둥근 공이 제공하는 가능성이 보인다. 그러지 못하면 공은 더 이상 둥글지 않고 모난 물체가 된다. 예술적 개인기를 지닌 선수에게 공은 잘 어울리는 춤 파트너와 같다. 서로 조화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선수에게 공은 상대를 무시하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선수는 ‘공의 방종’을 제어하지 못한다.

손과 팔이 아닌 신체 부위로 공을 둥글게 다루려면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몸의 균형과 동작의 조화 수준을 고도로 끌어올려야 한다. 나아가 한 팀의 선수 사이에서도 균형과 조화가 잘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공은 각각의 선수와 팀, 나아가 그 팀을 뒷받침하는 축구계의 시스템이 조화의 최고 수준에 이를 것을 요구한다. 그 수준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선수, 팀, 축구계는 공이 제공하는 무한 가능성 가운데 무엇이든 붙잡을 수 있다.

축구의 물리학은 공이 둥글다고 단언하지만, 축구의 철학은 ‘공은 둥글지 않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철학의 역설은 성찰과 실천을 독려한다. 공을 둥글게 만드는 것은 공의 상징을 실현하고자 하는 현명하고 부단한 노력이라고. 우리나라 축구 문화의 발전도 이에 달려 있다.

김용석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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