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평양 평원고무공장 노동자로 일하던 여성 강주룡(1901~1931)이 파업을 주동하며 을밀대 지붕에 올라가 농성을 벌인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한겨레출판)을 써서 23회 한겨레문학문상을 받은 박서련(29·사진)을 광화문 인근 음식점에서 만났다.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온 박씨는 강주룡이 “엄청나게 현대적인 인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굳이 남편이 귀엽다고 말한 것도 그렇고, 살아온 궤적을 봤을 때 노동 해방 가치가 쉽게 와 닿지 않았을 텐데 너무나 당연한 듯이 그것도 선봉에 서서 조선 땅에서는 누구도 해보지 못한 일을 해버리기도 하는 그 모습이 오늘 우리와 겹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강주룡은 간도에서 살다가 스무 살 ‘늦은 나이’에 열다섯 살 남자와 급하게 혼인했다. 그 남편은 어리지만 독립군에 뜻을 두고 있었고 급기야 그와 함께 독립군 부대에 들어갔다가 그녀만 먼저 나오지만 남편은 끝내 죽고 만다. 남편을 죽인 살인죄로 시댁으로부터 고발당해 억울하게 중국 정부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다 증거 부족으로 방면돼 친정으로 돌아갔지만, 부모는 다시 그녀를 엉뚱한 남자에게 시집보내려 한다. 사리원에서 가출해 평양으로 가서 그녀는 고무공장 노동자로 취직한다. 그곳에서 평양적색노동조합 결성준비위원회에 가입하게 되고, 일방적인 ‘임금감하’ 조치에 항거해 파업을 벌이다 패퇴하고 만다. 1970년대 말 가발 수출 업체 YH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당시 장면은 이러하다.
억울하고 기가 막혀서 주룡은 을밀대에 올라가 체공녀(滯空女)가 되었다. 승리했지만 단식 끝에 얻은 병으로 죽었다. 박서련은 “인생사 굴곡이 많은 팔자 사나운 여자라기보다 그 시대를 현대적 욕망을 가지고 살았던, 후대 여성들과 다르지 않은 80년 전 먼저 살았던 사람으로 보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처음 글쓰기에 도전할 때는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내고 싶어서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글 쓰는 사람밖에 못 돼서 이상한 것 같다”면서 “여성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 쓸 것 같고, 재미를 느끼는 분야를 한정 짓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것을 소설로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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