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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디든 상처가 아문다면 거기가 태양 아래 1번지”

입력 : 2018-07-19 21:01:26 수정 : 2018-07-19 21: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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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두번째 시집 ‘울지도 못했다’ 펴낸 김중식 시인 “혁명이 아니면 사치였던 청춘/ 뱃가죽에 불붙도록 식솔과 기어온 생/ 돌아갈 곳 없어도 가고 싶은 데가 많아서/ 안 가본 데는 있어도 못 가본 덴 없었으나// 독사 대가리 세워서 밀려오는 모래 쓰나미여,/ 바다는 또 어느 물 위에 떠 있는 것인가/ 듣도 보도 못 한 물결이 옛 기슭을 기어오르고/ 두 눈은 침침해지고 뵈는 건 없는데// 온다는 보장 없이 떠나는 건 나의 몫/ 신마저 버린 땅은 없으므로 풀잎은 노래한다/ 온몸을 떨었어도 그대 오지 않았듯이/ 더듬어 돌아올 길이 멀어지는 게 두려울 뿐”

혁명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등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대는 오지 않고’에서 시인이 진술한 것처럼 ‘혁명이 아니면 사치였던 청춘’이다. 양자를 절충하는 길은 상상할 수 없었다. 김중식(52) 시인은 그 시절을 건너오면서 시인의 길 또한 혁명 같은 고통의 길이라고 여겼다. 그 수난의 길에서 길어 올린 시들을 모아 1993년 펴낸 첫 시집 ‘황금빛 모서리’는 과연 황금빛이어서 지금까지 16쇄를 찍을 정도로 지속적인 갈채를 받았다. 

25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낸 김중식 시인.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해탈과 혁명의 양안에 머리 찧을 때 나의 시 또한 종교이자 이념이었다”고 썼다.
하상윤 기자
정작 시인은 이 시집을 끝으로 책들과 그동안 써놓았던 시조차 버렸다. 1995년 일간지 기자로 취직해 벌어먹고 살기 위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잠시 짬을 내어 시를 쓰는 일은 시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생업을 유지하면서 시를 쓰는 수많은 이들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은 못했을까. 끝내 궤도에서 이탈해 기자 생활을 10년 만에 그만두고 여러 길을 돌다가, 최근 첫 시집 이후 25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울지도 못했다’(문학과지성사)를 내면서 돌아온 김중식은 “그때는 감히 그분들을 얕보았다”고 말했다. 그가 이번 시집 서문에 “나는 근본주의자였다/ 두 손으로 번갈아 따귀를 맞았다”고 쓴 배경이다.

“이번 삶은 늦었어,/ 급제동하는 순간/ 당신이 옳았다// 당신은 늦었다/ 낮술에 취했든 졸았든 그이를 생각했든/ 뱃가죽으로/ 아스팔트를 움겨쥔 채/ 두 획/ 혈서를 쓴 거다/ 빗길에서도 한 호흡에 폐를 채우는 타이어 타는 냄새// 외눈박이 가로등이 ㄱ자로 허리를 굽혀/ 하직 인사를 하지/ 길이 아닌 것도 아닌데/ 앞만 보고 죽어라 달린 것도 아닌데/ 자꾸 미끄러지는 삶/ 이번 생은 늦었다”(‘스키드 마크’)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길게 검은 자취로 남는 ‘스키드 마크’에 시인은 자신의 생을 대입했다. 생업의 궤도를 이탈해 다른 길로도 달려보았지만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이 생은 이미 늦었다는 통절한 회한이 밀려들곤 했다. 김중식은 기자 생활에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정작 실업의 공간에서는 가장으로서의 책무에 속이 타들어갔다. 그는 “순간의 환각이나 황홀은 찾아들겠지만 경제적 자유가 없는 한 또다시 노예가 될 뿐”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말기 후배의 소개로 국정홍보처에 들어가 노무현 대통령과도 스킨십을 나누면서 봉하마을로 함께 가서 일하자는 제안도 받았다. 그의 특정한 능력은 MB정부에서도 소용돼 대통령 연설비서관실에서 일하다가 이란 대한민국 대사관 홍보관으로 3년여 동안 테헤란에서 살았다. 옛 페르시아 땅을 근거지로 시인은 “안 가본 데는 있어도 못 가본 덴 없었”을 정도로 짬만 나면 떠돌아다녔다. ‘내가 지난 세월에 얼마나 날뛰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울지도’ 못했는데 다시 시가 찾아와 주었다.

“돌아보지 않으면 길이 아니다 지구 반 바퀴를 뜬눈으로 날아야 하는 철새는 긴 목을 가슴에 비빈다. 얼마나 가야 할지를 따지는 것은 몸 밖으로 나간 정신처럼 얼마나 되돌아올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산, 올라갈 땐 괜찮았는데 왼쪽 무릎뼈가 쑤셔 주저앉았다가 한쪽 발로 하산할 때, 나는 내가 지난 세월에 얼마나 날뛰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울지도 못했다.”(‘늦은 귀가’)

이번 시집은 지난 25년 동안 변화한 삶과 생각의 궤적을 순서대로 담았다. 초반부에는 여전히 세상이 지옥이지만 갈수록 사막을 낙타로 건널 수도 있고, 사랑이나 공동체 정신이 그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나아간다. 그는 후반에 이르러 “그 어디든// 상처가 아문다면/ 거기가 태양 아래 1번지”라고 ‘태양 에너지’를 긍정하고, “사막에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사람 없는 곳이 사막인 거”라고 ‘바람의 묘비명’을 쓴다.

출가한 차창룡(북한산 중흥사 주지) 시인이 1966년생 말띠 벗의 귀환을 기리는 발문을 시집 말미에 붙였다. 그는 “김중식은 비관주의자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비관주의자였다가 자연스레 비관주의를 극복했음에 분명하다”고 오랜만에 문단 속세를 향해 말문을 텄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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