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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문학이란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의 가장 섬세한 변주 양식”

입력 : 2018-07-09 20:54:05 수정 : 2018-07-09 23: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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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김현, 따듯하게…’ 펴낸 평론가 박철화
“처음부터 문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선생 글을 접하면서 문학 병에 감염된 거죠. 공부는 둘째치고 내가 살 수는 있으려나 싶었는데 선생이 연구실에 들르라 했을 때, 그건 정신적인 구원 같은 것이었어요. 드디어 어떤 출구가 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 있던 나에게 누군가 이리로 와라 불러준 거죠.” 

예리하고 풍성한 감성의 촉수로 당대 한국 문학을 감별하고 한 지형을 선도했던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의 ‘마지막 제자’ 박철화(53)의 말이다. 박철화는 서울대 불문과 학생으로 김현을 만나 그가 작고하기까지 마지막 3년 동안 따듯한 교류를 통해 가르침을 받으며 가까이서 지켜본 제자였다. 그 스승으로 인해 문학의 길로 온전히 들어서서 평론가의 길을 걸어온 그가 선생이 작고한 지 28년 만에 그와 나눈 내밀한 풍경들을 ‘김현 따듯하게 타오르는 말’(에피파니·사진)이라는 자전적 고백 형식의 단행본에 담아냈다.


신병에다 시대 분위기가 겹쳐 공부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박철화가 오랜만에 강의에 들어가자 김현은 그를 연구실로 불렀다. 사랑을 다룬 텍스트로 리포트를 써오면 그동안의 결석을 봐주겠다는 그의 말에 박철화는 박완서의 ‘나목’을 읽고 제출했고, 이후 스승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연구실에 들를 것을 주문했다. 박철화를 온전한 문학의 길로 이끈 스승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처음 연구실에 불러서 너는 글을 안 쓰고는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을 때 한편으로는 많은 가능성 앞에서 너무 단정하는 것 아닌가 싶었고, 또 한편으로는 내 안에 이런 소리를 들을 능력이 있나 싶었지요. 선생을 만난 이래 내 삶의 중심은 늘 좋은 글을 쓰는 일이었고, 못 써서 괴롭지 내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괴로운 건 아니었습니다. 삶의 이유를 찾도록 해주신 것에 대해 늘 감사하는 마음이고 그만큼 성실하게 못해서 죄책감을 느낄 따름입니다. 선생을 만난 건 엄청난 선물이고 행복이었습니다.”

스승 김현과의 인연을 자전적 고백 형식으로 펴낸 문학평론가 박철화. 그는 “스승의 말은 한마디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고 썼다.
남정탁 기자
박철화는 김현의 추천으로 1989년 ‘현대문학’에 황지우론을 발표하면서 등단했지만 김현은 이미 투병 중이었다. 곁에서 선생의 마지막을 지켜보다가 이듬해 여름 그 스승을 떠나보내야 했다. 이제 갓 부화시킨 제자를 두고 스승이 서둘러 떠나버린 셈이다. 그 스승은 떠나기 전에 박철화 세대의 언어를 모으는 무크지 ‘비평의 시대’를 지지했고 선생은 그 동인들(권성우 류철균 이광호 우찬체 박철화)에게 술 한 잔 사겠다는 약속을 결국 지키지 못했다. 박철화는 무크지 첫 호가 나오는 것을 보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6년 만인 1997년 귀국했다. 그는 비슷한 처지에서 교수로 가려는 선후배 30여명과 경쟁을 포기하는 대신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남아 활발한 비평 활동을 벌였다. 

박철화가 이번 책에서 강조한 스승의 비평 언어는 ‘사랑의 말’이다. 그는 “진정한 비판은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의 진경을 보여주는 일”이라면서 “그럴 수 있는데 그러하지 못함이야말로 가장 아픈 비판”일 것이라고 썼다. 그는 “‘상대가 무덤에서라도 울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적은 질 들뢰즈의 입장 역시 비판에 대한 같은 맥락에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나는 선생의 비평 언어가 그러한 사랑의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종합하자면 “문학이란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의 가장 깊고 다양하며 섬세한 변주 양식”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이전의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태어나게 하는 겁니다. 어떤 말을 통해서 전율과 같은 경험을 하면서 존재가 변환되는 게 아니라 신념을 재확인하고 자신을 단지 강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문학은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닐 수 있죠. 그건 오히려 정치적 프로파간다나 신앙이 훨씬 더 잘하는 기능이지요. 낯설고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그런 언어를 만나면서 강렬한 전율과 함께 내가 다른 존재로 변하도록 이끌어주는 말, 그 폭발의 에너지가 내 안에서 나를 변화시키는 체험이기 때문에 문학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의 양식인 거지요.”

박철화는 사랑의 비평을 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편이다. 그는 “지나친 개인주의적 성향으로 사람들 틈에 끼기를 싫어하는 나를 문학의 판으로 이끌려는 선생의 섬세한 흉계(?)이자 배려였을 것”이라거나 “나의 서투른 일처리와 사회적 친화력 없음이라는 원죄”를 고백하기도 하고 “나는 게으른 몽상가이지 성실한 이론가는 아니다” 혹은 “나는 잘해야 B급 글쟁이”라고 발설하기도 한다.

“사실 선생 앞에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죠. 문학은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즐겁게 하는 건데 저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고 우리 세대 판을 만드는 것도 못했고 선배들과도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선생은 나에게 좋은 걸 알려주셨는데 내가 여러모로 부족했다는 걸 고백한 거죠. 젊은 날 성정이 성말라서 유머러스하게 공격하지 못하고 거칠게 비판하는 글도 썼습니다. 제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표현된 겁니다.”

박철화는 뒤늦게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들어갔다가 자유로운 글쓰기를 위해 2014년 10년 만에 물러났다. 이번 책은 젊은 날의 관성적인 글쓰기로부터 벗어나 이제야말로 본격적인 자유로운 글쟁이로 살겠다고 스승에게 신고하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 투병을 하면서도 죽음 앞에서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스승의 모습이야말로 허무를 극복하고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고 즐겁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귀한 가르침이었다고 술회한다.

“비평이나 비판이라는 것이 ‘비(批)’라는 의미 때문에 따지고 지적하는 것으로 규정되는 측면이 있는데, 나뭇잎 흔들리는 파란 하늘, 화단의 예쁜 꽃, 날아드는 나비와 벌, 이런 것만으로도 생은 충분히 행복한 것이고 우리 또한 그런 감각적 즐거움을 통해 존재의 행복을 누려야 할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지적, 논리적 삶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첫 책 제목도 ‘감각의 실존’이라고 지었습니다. 문학에서건 삶에서건, 이 태도를 지금까지 유지하려고 애썼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박철화는 “지난 시대 비평은 근대를 빨리 따라잡아야 하는 환경에서 손쉬운 정답을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면서 “이제는 대중으로부터의 소외와 고독을 감내하면서 정말 어떤 작품이 왜 좋은지, 그 작품의 언어가 어떠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드러내는 문학적 전위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 스승이 앞에 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그는 “당신으로 인해 온전한 정신적 존재가 된 것 같아 고맙고 감사하다”면서 “좀 더 많은 것들을 배울 가능성을 잃고 혼자 좌충우돌하다 보니 실수도 많이 하고 한참 성숙해야 할 때 부딪치고 상처받느라 힘들었는데 왜 그리 서둘러 가셨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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