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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존엄'이 인정한 '교시유적', 정권정통성의 상징 북한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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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7-08 10:26:59 수정 : 2018-07-08 10:2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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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벽화고분 중 하나인 안악3호분의 무덤 주인 초상화.
“굉장한 벽화입니다. 고분 자체도 그렇지만 이 벽화는 고구려 역사를 연구하는데서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입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황해도에 있는 ‘안악3호분’을 두고 했다는 말이다. 안악3호분은 고구려에 망명해 관리를 지낸 ‘동수’(冬壽)라는 인물의 무덤이라고도 하는 데 무덤 주인의 초상과 고구려의 생활 풍속을 보여주는 벽화로 유명하다.
'대성산 고구려 무덤떼'는 3∼7세기 조성된 것으로 국보유적 12호로 지정되어 있다. 평양 북동부에 위한 대성산에는 대성산성, 안학궁터 등 많은 고구려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이 무덤은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중요하다고 평가한 이른바 ‘교시유적’ 중 하나다. 낙랑유적, 동명왕릉, 공민왕릉, 대성산 고구려고분군, 안악 1·2·3호분 등이 포함된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의 절대적 위상을 고려하면 교시유적이 학술연구나 보존사업에서 우선 대상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의 관심과 언급은 곧 문화재를 대하는 북한의 태도나 지향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5일 국립문화재연구소·한성백제박물관 주최로 열린 국제학술심포지엄 ‘고구려 고분벽화-남북의 소중한 세계문화유산’에서 발표자로 나선 정경일 중국 연변대 교수, 박윤희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북한 최고지도자들은 유물, 유적에 대한 많은 교시를 남겼다. 김일성 주석은 1985년 7월 11일, 주석 명령 제35호로 ‘문화유적유물 보존관리사업을 강화할 데 대하여’를 내놓았다. 그는 여기서 유적, 유물을 보존관리할 사업체계와 대책 등을 세울 것을 명령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남한의 국방부에 해당하는 인민무력부를 대책을 세울 ‘해당 기관’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에서 군의 역할이 문화재 분야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김정일은 문화재를 북한 정권의 타도 대상인 ‘봉건유교사상’의 산물로 보고 보존관리에 소홀한 것을 질타한 적이 있다. 2003년 2월 10일 ‘당 군대책임일군’과의 담화에서다.

“…적지 않은 일군들이 역사문화유적유물들과 지난 시기의 것을 허무적으로 대하는 데 그것은 당의 의도와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봉건사회가 남겨놓은 낡은 사상 잔재이지 역사문화유산 그 자체가 아닙니다.…이 땅 위에 이룩해놓은 역사문화유적유물과 전통은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할 재보입니다.”

김일성, 김정일은 고구려 벽화고분에 대한 관심이 꽤 컸던 모양인데 “인민들의 생활 풍습을 반영한 그림으로서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의 무덤임을 강조”하는가 하면 “무덤 내부에 빗물이 스며드는 것과 오염된 공기가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침은 선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문화재를 매개로 한 남북학술교류 등 대외협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2014년 10월 24일 담화에서 “학술대표단을 다른 나라들에 보내여 견문을 넓히도록 하고 다른 나라 역사학자들과 유산부문 인사들과의 공동연구, 학술토론회도 조직해야 한다”며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민족 중시의 입장에서 역사문제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가지며 민족문화유산과 관련한 학술교류도 많이 하여 단군조선의 역사를 빛내이는 데 이바지하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군조선을 말한 김정은의 언급이나 고구려 유적이 많은 교시유적에서 보듯 북한의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고조선, 고구려와 개성에 수도를 두었던 고려에 쏠린 경향이 뚜렷하다. 2006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행한 ‘사진으로 보는 북한의 국보유적’을 기준으로 하면 193건의 국보유적 중 고구려 유적이 56건, 고려 유적이 59건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정시기가 빠른 것(1∼50호) 중에는 고구려의 것이 29건이어서 이른 시기부터 관심이 집중된 것으로 해석된다. 기본적으로 지금의 북한 지역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왕조이고, 관련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화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한 북한 정권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도 보인다. 
북한은 동명왕릉을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의 무덤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면 1993년 5월으로 대대적으로 조성했다.
북한에서 단군과 단군 부인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는 단군릉은 1994년 모습을 갖추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북한의 해방 이후 정권의 정통성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민족문화유산의 계승’을 강조했다. 1950년대에 이미 고구려가 평양에서 세운 안학궁터의 복원, 고구려 유적이 산재해 있는 대성산에 대한 연구를 강조했다. 비교적 최근인 1990년대 이후엔 “민족사의 정통성이 평양에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평양을 중심으로 유물, 유적 발굴과 복원노력을 강화했다”고 한다. 고구려 사찰 광법사 복원(1990), 동명왕릉(1993), 단군릉(1994)의 개축, 복원이 이뤄지기도 했다. 1996년 11월∼1997년 5월 평양시 화성동에서 고조선 시기의 제단 유적 2기를 새로 조사해 국보유적(188호 ‘화성동제단’)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의도가 강하게 반영되다 보니 ‘역사적 팩트’라고 하기 힘든 것들이 ‘북한 정권의 정통성 확립의 표석’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군과 단군부인의 무덤이라는 단군릉의 복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의 단군조선이 5000년전 평양을 중심으로 대동강유역에 세워진 세계 최초 고대국가의 하나로 청동기 문화에 기초해 형성된 선진문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에 위치한 단군릉 조사는 김일성의 교시로 1993년 2월 시작되어 단군의 유골까지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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