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강의 내용도 흥미롭고 풍성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간 듯 생생하게 펼쳐 놓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전체적인 지형도와 해박한 지식 속에서 호명되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전공자만이 할 수 있는 통찰력 있는 견해는 저녁 시간과 수강료를 투자한 것이 아깝지 않을 만큼 충분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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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미 시인 |
반대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깃든 오래된 향교에서 문화재활용사업의 일환으로 펼쳐지는 1박2일 향교 인문학 프로그램과 정부 산하기관에서 진행하는 ‘고급경영컨설턴트 과정’ 중 90분짜리 인문특강에 시인으로서 초청받아 많은 사람 앞에 서서는 진땀 꽤나 흘렸다. 내가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라면 모를까, 나보다 연배도 연륜도 훨씬 고매하신 어르신과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아 높은 임원의 지위까지 오른 분 앞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앞이 캄캄했다. 애당초 못한다고 했으면 좋았을 걸 실력도 안 되면서 앞뒤 분간도 못하고 호기롭게 하겠다고 해놓고는 막상 그분들 앞에 서니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무슨 이야길 해야 하지? 학부 때 듣는 둥 마는 둥 해서 나 자신조차 헷갈리는 직유법이니 은유법이니 환유법이니 하는 시 창작기법을 주워섬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부장님 개그나 한시 한 수를 멋들어지게 읊을 수 있는 재주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 근사한 것이 있는 양 사람을 혹하게 하는 화술도 없고.
문제는 이번에도 역시 나 자신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모르는. 다행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는 충분히 무식했기 때문에 용감해지기로 했다. 일반 독자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일반 독자가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한 그분들 앞에서 시에 대해 내가 여러분보다 더 특별히 많이 안다거나 더 잘 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다고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말씀드리자고 결심했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시에 대해 여러분보다 좀 더 오래 생각해 왔고 더 많이 느끼려고 노력해 온 것 같다고. 그런 아주 작은 차이 때문에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말씀드려도 된다면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고. 주관적인 경험과 느낌밖에는 근거가 없는 그 믿음 때문에 지독했던 가난도 처절했던 슬픔도 감당하기 싫었던 고독도 이게 다 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웬만해선 견딜 수 있다고.
다시 문제는 나 자신이다. 1974년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은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라는 논문을 내면서 느낌과 의식은 ‘주관적’ 경험이기 때문에 다른 생물이 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결코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지만 저질 체력과 자꾸 해이해지려고 하는 정신력과 싸우며 그 아름드리나무들이 울창한 산책길을 오르며 나는 묻고 또 물었다. ‘소설을 초과한 소설’을 쓴 톨스토이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잡계급 출신으로서 세계적인 문호가 된 도스토옙스키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라고.
안현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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