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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氣 살리자] 부모 따라 한국 왔지만…학교도 취업도 ‘캄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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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27 19:05:08 수정 : 2018-06-27 17: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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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갈 길 못찾는 중도입국 청소년들/작년 초·중·고교 재학 7792명/2012년 4288명… 5년 새 1.8배↑/한국어 서툴고 정보 사각 놓여/전문시설 확충 정착 지원해야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는 배를 만들고 싶어요. 제가 사랑하는 두 나라를 운항하는 배가 많아지면 지금보다 (한국과 베트남이) 더 가까워질 수 있겠죠?“

1500도가 넘는 파란 불꽃이 번쩍이면서 몇 차례 철판 위를 오가자 서로 다른 성질의 금속이 하나가 됐다. 지난 15일 충북 제천시 한국폴리텍 다솜고등학교에서 만난 정재호(19)군은 얼굴에 쓰는 용접면이며 작업복, 앞치마, 장갑, 안전화 등을 착용해 흡사 ‘아이언맨’ 수트를 입은 것 같았다. 불꽃과 씨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열 때문에 온몸이 땀에 젖었다. 때로는 불꽃이 튀어 다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재호는 ‘배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다솜고에 입학한 뒤 매주 20여 시간씩 묵묵히 용접 교육을 받고 있다.

재호는 베트남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를 둔 중도입국 청소년이다. 베트남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2011년 한국에 온 재호는 한국에서 초·중학교를 졸업했다. 중도입국 청소년은 재호처럼 외국에서 태어나 부모의 재혼이나 이주 등의 이유로 뒤늦게 한국에 입국한 청소년을 뜻한다. 재호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의 추천으로 기술도 배우고 다문화 배경을 가진 자신의 정체성을 살리고자 다솜고 진학을 결심했다.

2012년 개교한 다솜고는 전국 최초이자 유일한 다문화·중도입국 청소년을 위한 기숙형 기술고등학교다. 13개 국가의 문화적 배경을 가진 132명의 청소년이 재호처럼 전문 기술과 한국어를 배우면서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재호는 “선생님들의 애정 어린 지도 아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리며 꿈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갈 수 있었다”며 “용접으로 서로 다른 금속을 연결하듯이 베트남과 한국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부모의 결혼 또는 취업 목적의 이주 등으로 중도입국 청소년들이 해마다 증가하면서 이들을 위한 지원 기관과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중도입국 청소년 진로·진학 지원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중도입국 청소년의 안정적인 한국사회 정착을 위해서는 학교 밖 중도입국 청소년까지 아우를 수 있는 진로·진학 지원과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학교 밖 중도입국 청소년 현황 파악도 안 돼…진로·진학 지원은 ‘깜깜’

27일 여성가족부와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중도입국 청소년은 7792명이었다. 2012년 4288명에서 5년 만에 1.8배 증가한 수치다. 여성가족부에서 분류한 중도입국 청소년은 한국인과 재혼한 결혼이주여성 등이 본국에서 데려온 자녀를 뜻한다. 국제결혼이 아니라 투자이민과 부모 취업 등의 사유로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정착한 청소년까지 범주를 넓히면 중도입국 청소년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자리 소개·직업기술 훈련 지원해주오” 한목소리


문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학교 밖 중도입국 청소년이다.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과 달리 학교 밖 청소년은 부모가 무관심하거나, 모국에서 학력을 인증할 서류를 가져오지 못한 이유 등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학교 밖 청소년을 담당하는 여가부 관계자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중도입국 청소년 현황은 파악이 안 된다”며 “법무부의 출입국 기록을 통해 추정만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에서 발간한 ‘2017년 12월호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에 따르면 국내에 체류 중인 19세 이하 외국인은 15만7217명이다. 2016년 기준으로 살펴보면 19세 이하 국내 체류 외국인(14만1991명) 중 10∼19세는 6만6734명으로 47%에 달한다. 이 비율을 지난해 국내 체류 외국인 수치에 대입하면 10∼19세 외국인은 7만3800여명으로 추정된다.

여가부·교육부에서 파악 중인 학교 내 중도입국 청소년 7792명과는 9.5배가량 차이가 난다. 두 통계의 간극을 통해 학교에 다니지 않는 중도입국 청소년이 훨씬 많다는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중도입국 청소년의 한국 정착을 지원하는 김수영 서울온드림교육센터장은 “학교에 다니는 중도입국 청소년은 그나마 학교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학교 밖 중도입국 청소년은 한국어 능력도 낮고 진학·취업과 관련한 정보를 얻을 길이 없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중도입국 청소년도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당연히 교육받을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말했다.

◆중도입국 청소년 중 니트족 37.7%… 후기 청소년 맞춤 진로 지원 필요

2015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체류 외국인 및 이민자 노동시장 정책과제’에 따르면 15∼24세 중도입국 청소년의 니트(NEET)족 비율은 37.7%에 달했다. 니트족이란 교육과 직업훈련을 받지도 않고 취업하지도 않은 청년을 뜻한다. 이는 한국에서 성장한 다문화 자녀의 니트족 비율인 11.2%보다 3배가량 높은 수치로, 중도입국 청소년의 만성 니트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 센터장은 특히 후기 청소년(17∼24세)에 초점을 둔 진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5년 개소 이후 서울온드림센터를 이용한 522명의 중도입국 청소년 중 66.1%(301명)가 17세 이상 청소년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모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거나 졸업한 뒤 한국에 입국했다. 나이 차이와 부족한 한국어 능력 등을 이유로 고등학교로 재입학하기보다는 학교 밖에서 취업과 진학을 준비하다 보니 서울온드림센터를 찾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중도입국 청소년의 진학에 맞춰 다문화·외국인 입시전형 지도나 진로 지도를 할 전문가가 부족하다”며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관련 기관을 통해 직업체험 교육도 하지만 아이들 수요를 모두 맞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난해 9월 입국한 최정미(18)양은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한국어도 안 되고 입시 정보를 얻을 길이 없어서 처음에는 너무 막막했다”며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않더라도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하려는 친구들이 많은데 서울온드림센터가 아니면 체계적으로 도움받을 곳이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중도입국 청소년 직업 교육·특별 채용으로 사회 진출 장려해야”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학교 수업 외에 일자리 소개와 직업기술 훈련이 가장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체류 외국인 및 이민자 노동시장 정책과제’에 따르면 중도입국 청소년은 학교 수업 외에 필요한 지원으로 일자리 소개(62%)와 직업기술(60%)을 꼽았다. 한국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응답(38%)보다 20%포인트가량 높았다.

다솜고에 따르면 누적 입학생 315명 중 중도입국 청소년은 175명(55.6%)으로 다문화 청소년(140명)보다 많았다. 수준별 한국어 수업과 기술 교육은 물론이고 귀화 필기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는 ‘법무부 사회통합 프로그램’도 이수할 수 있어서 학교 차원에서도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중도입국 청소년의 입학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1∼4기 졸업생 165명 중 취업에 성공한 학생은 71명(43%)으로 대학에 진학한 48명(29%)보다 1.5배 많았다. 이들은 재학 중 컴퓨터응용선반기능사, 용접기능사, 전기기능사 등의 자격을 취득해 기계·설비·전기 관련 업체로 취업했다. 전기과 3학년인 손우훈(18)군은 “한국에 정착하려면 ‘평생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솜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했다”며 “삼성과 현대, 한국전력 등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취업해 중도입국 청소년도 얼마든지 제 몫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권대주 한국폴리텍 다솜고등학교 교장은 “중도입국 청소년에게 맞춤한 진로 지원은 학생들의 자아 실현과 더불어 다문화 인구 100만명 시대에서 사회통합을 위해 꼭 필요한 투자”라며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능력 있는 중도입국·다문화 청소년 채용을 확대해 직업교육과 취업이 선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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